‘러시아령’ 명시, 작성 주체도 불투명… 트럼프 종전안, 미·우크라 막판 조율
미·우크라 제네바 협상 진전… 트럼프 “최종 제안 아냐” ‘러시아령 인정’ 초안에 우크라 반발… 안보 조항은 불투명 국내 정치 위기 겹친 젤렌스키… 워싱턴행 검토하며 조율 시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제안한 우크라이나 전쟁 종전안 초안을 놓고 미국과 우크라이나가 제네바에서 협상을 시작했다. 초안이 러시아 입장을 대거 반영했다는 지적과 작성 주체를 둘러싼 의혹까지 겹치며 협상은 민감한 국면에 접어들었다.
미 국무부는 23일(현지시간) “양국 대표단이 미국 측 제안을 바탕으로 평화 프레임워크를 정교화했다”고 밝혔다. 협상에는 마코 루비오 국무장관, 안드리 예르마크 우크라이나 대통령 비서실장, 트럼프 대통령 특사 스티브 위트코프, 재러드 쿠슈너, 댄 드리스콜 육군장관 등이 참석했다.
루비오 장관은 “쟁점 상당 부분에서 진전이 있었다”며 “우크라이나가 다시 침공당하지 않으리라는 확신이 핵심”이라고 말했다. 젤렌스키 대통령도 “우리 목소리가 트럼프 대통령팀에 닿고 있다는 신호가 있다”고 밝혔다.
그러나 초안 핵심 조항은 여전히 논란이다. 21항은 크림반도와 도네츠크, 루한스크를 ‘사실상 러시아령’으로 인정하고, 도네츠크 내 미점령 지역은 비무장지대로 설정하되 러시아 영토로 본다고 명시했다.
안보 조항도 모호하다. 러시아의 침공 중단은 “예상된다”고 표현하고, 우크라이나의 나토 가입은 헌법과 조약으로 금지토록 했다. 병력 감축, 나토 비주둔, 전투기의 폴란드 배치도 포함됐다.
작성 주체에 대한 의혹도 커지고 있다. 앵거스 킹 무소속 상원의원과 마이크 라운즈 공화당 의원은 “초안은 러시아와 협의해 작성된 것”이라고 주장했고, 루비오 장관이 이를 시사했다는 말도 나왔다.
국무부는 “명백한 허위”라고 반박했지만, 러시아어 표현이 초안에 담겼다는 분석도 있다. 도날트 투스크 폴란드 총리는 “참여에 앞서 작성자가 누구인지부터 밝혀야 한다”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초안이 최종안은 아니라고 밝혔지만, 미국은 우크라이나와 러시아에 27일까지 수용 여부를 통보하라고 요구했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조건 수정을 목표로 협상에 나섰지만, 국내 정치적 입지는 흔들리고 있다. 과거 동업자 티무르 민디치가 연루된 1억달러 규모 부패 스캔들로 정치적 압박이 커졌기 때문이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정치적 위기에 처한 젤렌스키가 트럼프에 쉽게 굴복할 가능성은 낮다”고 분석했고, 드미트로 쿨레바 전 외무장관도 “국민이 원하지 않는 합의를 수용하는 건 정치적 자살”이라고 말했다.
국내 여론 역시 종전안에 부정적이다. 전쟁 피로감은 있지만, 러시아에 유리한 조건을 수용하면 더 큰 안보 위협을 자초할 수 있다는 우려가 크다. 안드리 자고로드뉴크 전 국방장관은 “이 제안은 평화가 아니라 러시아의 재무장 시간을 벌어주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로이터통신은 젤렌스키 대통령이 이르면 이번 주 워싱턴DC를 방문해 트럼프 대통령과 종전안을 직접 논의할 가능성이 있다고 전했다. 영토 문제 등 민감한 조항들이 정상 간 주요 의제가 될 것으로 보이며, 구체적 일정은 정해지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