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혜주 수필가

“ 할아버지 소주 외상 더는 안돼요 ” 하면서도 가게 아주머니는 두부와 라면은 선뜻 외상으로 내 놓는다.
“ 허참 그러지 말고 딱 한 병만 주시게.” 그러나 아주머니는 ‘두부 한모 1.100원 신라면 3개 1.800원’ 이라고 철판에 적으며 살짝 눈을 흘긴다. 그때마다 연신 헛기침으로 아쉬움과 민망함을 달래는 할아버지와 유독 소주 외상값만 타박 하는 아주머니. 이들의 이 소소한 일상의 실랑이는 이를테면 내 이웃들의 염려와 관심의 안부 같은 것이다.

한 사람이(돌할배) 있었다. 그 사람 곁으로는 수없이. 정말이지 수없이 많은 사람들이 머물렀다. 뿌리 깊은 나무에 무성한 잎이 있어 그늘이 짙듯. 돌할배의 인생도 그러했다. 어떤 사람은 그 그늘 아래 길게 머물렀고, 어떤 사람은 짧게 머물렀다. 그리고 또 어떤 사람은 깊은 상처를 남겼지만 어떤 사람은 스치듯 향기만 남겼다. 그리고 틀림없는 것은 그 모든 사람들이 사라져갔다는 것이다.

이웃들이 할아버지를 돌할배 라 부르는 것은 그가 어릴 때부터 석수장이로 잔뼈가 굵은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가난한 농부의 둘째로 태어나 입하나 덜어보자고 무작정 잡은 돌망치가 천직이 되어 버렸다. 자그마한 키에 다부진 체격. 과묵한 성격에 성실함 하나로 일찍이 그 바닥에선 인정을 받았다. 돌에 관한한 남다른 재능까지 겸비해 석공으로써는 상(上)급의 대우를 받으며 돈을 벌었다. 그의 뛰어난 기술을 배우고자 아름아름 사람들이 찾아오면서 많은 이들이 그의 돌을 찾았다. 마침내 수요(需要)보다 공급이 딸리자 공장을 지어 본격적인 사업의 길로 나섰다. 때마침 건설 붐을 타고 공장은 확장을 거듭해 여러 개의 공장을 소유한 명실상부 석물계의 대부로 우뚝 섰다.

덕분에 고생하는 부모님께 효도하고 없는 형제들을 먹여 살렸다. 고생이라는 단어도 알기 전 자식 셋을 등 떠밀어 외국유학길 비행기를 태운 것도 그였다. 뿌리 깊은 나무가 이룬 짙은 그의 그늘엔 돈을 벌기위해, 기술을 배우려는 사람으로 북적거렸다. 바야흐로 돌할배의 전성기였다. 그리고 그는 그들 위에 제왕처럼 군림했다.

그러나 그에겐 삶의 지혜가 부족했다. 돈 버는 지혜보다 쓰는 지혜를 터득해야 할 오관을 넓게 열지 못했다. 그래서 마음으로 깨달아야 비로소 얻어지는 지혜로운 삶을 살지 못했다. 무작정 쥐어주기만 한 돈은 형제나 자식들이 살아갈 앞날에 도움이 되지 못했던 것이었다.

삶이란 논리적으로 포착되지 않는 무수한 우연과 충동적인 욕망과 미묘한 느낌의 연쇄 고리일수도 있다. 살다보면 그런 것들이 어느 순간 사소한 느낌으로 우리의 생을 뒤흔들어 존재의 전환을 가져 순식간에 교통사고처럼 오기도 한다. 그도 예외는 아니었다. 욕심이라는 고삐를 달고 달리기만 하니 제 풀에 넘어지고 돌 턱에 걸리고 만 것이다. 더 넓은 곳으로 뻗어가려는 그의 야망은 중국진출로 성공가도를 달리는 듯 보였다. 그러나 엄청나게 투자한 석산이 떡돌 산으로 판명나면서 한 순간 뿌리 깊은 나무는 속수무책 흔들렸다. 고삐라는 길들여짐의 욕심을 내려놓지 못한 게 화근이었다. 한 순간 생을 뒤흔든 존재의 전환으로 흔들리는 뿌리, 맥없이 떨어져 내리는 무수한 잎, 짙은 그늘이 사라진 곳엔 미련 없이 날아가는 가랑잎보다 더 가벼운 인심이었다.

산다는 게 얼마간은 고통스럽고 다소간은 눈물겹다고 한다. 돌할배에게도 영원할 것 같았던 부(富)도, 손 내밀며 웃어주던 혈육도, 남부러울 것 없이 단란했던 가정도 모두 사라져 버렸다. 충격은 컸다. 아픈 상처의 심연 제대로 다스리지 못한 마음에 아수라만 쌓였다. 고뇌는 돌보다 무거웠다. 바래지는 풀잎처럼, 쓰러지는 눈발처럼 저리고 아쉽기만 해 술로 보내는 후회의 나날이었다. 더구나 혼자라는 외로움은 피폐해진 영혼에 날을 세워 온화한 그의 성정까지 변하게 했다. 그러나 무일푼으로 바람찬 밤거리로 내몰리던 그를 손잡아 준 이는 형제도, 자녀도 아닌 이웃이었다.

다 놓아야 비로써 오는 게 있다. 모든 걸 잃은 뒤에야 얻는 게 있다. 바로 깨달음이다. 소박한 깨침이 온 우주를 들썩이게 할 만큼 신선한 충격을 줄때도 있고 생의 근원을 뒤바꿀 수 있는 큰 깨달음이 있다면 팔순의 돌할배가 얻은 깨달음은 무엇일까.

인생의 석양 길에 들어선 노년이라는 이름. 누구는 일출보다 일몰이 더 아름답다고 한다. 그러나 그건 사람마다 다른 해가 뜨고 질 때의 장엄함과 주위 환경의 아름다운 농도의 차이와 그것에 대한 표현일 뿐이다. 온 동네를 기웃거리며 몇 시간은 좋이 모았을 빈 박스와 신문지, 그리고 유리병이 실린 작은 손수레를 끌고 허청허청 골목으로 사라져 가는 내 이웃의 돌할배. 목숨 줄을 이어가기 위해, 지독한 외로움을 이기기 위해 끊임없이 움직여야 하는 그의 어깨가 오늘따라 지는 석양에 더욱더 구부정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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