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연태 포항테크노파크 기업지원협력관

도쿄의 츠키지 시장, 밴쿠버와 샌프란시스코엔 피쉬맨 마켓, 포항엔 죽도 시장이 있다. 일본에 주재할 때 츠키지 시장에 자주 갔었다. 도쿄를 방문하는 인사들이 대부분 가 보고 싶어하는 인기 관광지이기 때문이다. 직접 안내한 손님 중에 뉴칼레도니아 북부 주 프레지덴트가 있었다.

‘President’를 주지사로 번역할 지 대통령으로 부를 지는 그 때 그 때 달랐던 것으로 기억되는데 본인은 Mr. President(대통령 각하)를 선호했던 것 같다. 남태평양의 프랑스령 국가 대통령이 포스코와 합작 협상 일정 중에 항공편 연결로 도쿄에 들렀다. 1박 2일간 후지산 일대를 안내하는 스케줄이었는데 당초 예정에 없는 도쿄 츠키지 시장을 보여달라고 한다. ‘마구로(참치)를 대량 양식 해서 동포들을 배 불리겠다’는 갸륵한 포부이다. 이를 위해 일본 최대 수산시장을 한 번 보고 싶다는데 아니 들어 줄 수 없다. 이 분들이 스텐레스 강판 원료인 니켈 광산 칼자루를 쥐고 있는 마당에.

도쿄 츠키지 시장은 에도 시대에 개설되어 관동대지진으로 파괴된 뒤 1935년에 현재 위치로 옮겨졌다. 7만평의 면적에 7개 도매업자와 약 1000여 중간 상인들이 수산물을 경매한다. 하루 약 2,167톤의 수산물과 1,170톤의 청과물이 거래되는 일본 최대 시장이다.

츠키지 시장이나 다른 나라 수산 시장을 둘러 볼 때마다 나는 어김 없이 우리 죽도시장을 떠올렸다. 그것은 특별한 까닭이 있었다기 보다는 숟가락 들 때 젓가락 찾는 정도의 자연스런 이유였을 것이다. 생선들의 모양도 비슷하고 시장의 메커니즘도 동일한데 우리 죽도시장 보다는 ‘뭔가 좀 더 있어’ 보였기 때문이다.

어려서부터 죽도시장을 어머니의 손을 잡고 따라 다녔다. 싱싱한 생선이나 채소를 고르는 법, 철물점의 위치, 옷이나 신발을 살 때 흥정을 하는 법 등 살아가는 데 필요한 현장 학습을 죽도시장에서 어머니를 통해 하게 되었다. 그러므로 시장 상인회 회원 만큼은 아니더라도 죽도시장에 남다른 애착(혹은 성장과정의 잊을 수 없는 소중한 기억)을 가지고 있다.

매주 칼럼을 쓴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30년 이상 보고서와 연설문과 계약서를 다루어 오면서 문자와 씨름을 해 오곤 있지만 ‘일간지 칼럼’과는 그 차원이 다르다. 다양한 ‘포항’들을 나의 시선으로 재정리하고 의미와 채도를 부여한다는 측면에서 소중한 경험이다.

‘포항 이야기’에 죽도시장을 빼놓을 수는 없다. 일제시대부터 거래가 이루어진 죽도시장은 1969년에 시장 번영회가 발족하여 현재는 4만 5천평 규모에 2500여 점포가 들어서 있다. 수산물, 건어물, 활어, 채소, 과일, 의류, 가구 등 그야말로 ‘없는 게 없는’ 경북 동해안 최대 규모 재래시장이다.

해양 과학고(‘수고’라는 옛날 호칭이 훨씬 정감이 가는)를 나온 친구와 함께 새벽 죽도시장을 찾았다. 시장 돌아가는 상황을 손바닥 들여다 보듯 하는 친구는 따로 공부가 필요 없지만 얼떨결에 현장 체험에 동참하게 되었다. 고맙고 또 미안한 일이다.

시원한 아침 공기속에서 나를 반기는 것은 신선한 생선들의 살 내음이다. 흐읍 크게 심호흡을 하면서 들이켜 본다. 살아 있는 향기다. 책상머리에서 맡는 플라스틱 냄새와는 벌써 차원이 다르다. 이비인후 계통이나 호흡기 질환이 있는 사람은 가끔 죽도시장의 새벽을, 생동하는 기운을 후욱 들이켜 볼 것을 권하고 싶다.

오징어, 아귀, 우럭, 삼치, 고등어 등 여러 어족들과 눈이 마주친다. 버둥거리는 놈들, 기절한 척 하다가 도망 가보려는 놈들, 벌써 숨이 끊어진 성 마른 놈들. 사람이나 고기나 조급하면 일찍 죽는다. 느긋해야 오래 산다. 속이 좁아터진 밴댕이는 잡히자마자 죽어 버린다고 하지 않은가.

경매를 기다리는 방어가 펄떡거리는 바람에 뭔가 나한테로 튄다. 어떤 베테랑이 아가미 속을 슬쩍 따버리자 죽지는 않고 날뛸수록 피가 빠진다. 대단한 기술이다. 바닥에 흥건히 뿌려진 어혈이 잭슨 폴록의 추상화를 떠올리게 한다. 피를 흘리며 죽어가는 녀석에겐 미안한 일이지만 탁본을 걸어두면 수 천만원짜리 벽화로 충분할 성 싶다. 삼치 40여 마리가 18만원에 낙찰되었다. 경매 종이 딸랑 딸랑 울리자 순식간에 거래가 이루어진다.

새벽 시장을 찾는 사람들은 누구나 가족 같다. ‘누부얀교, 처제가, 동상 오랜마이다. 씨얀교’. 대강 ‘누님 안녕하세요? 처제(물론 친구의) 잘 있었어? 형님 어떻게 지내셨어요?’ 이런 의미의 ‘포항말’이다. 이 시간의 인사란 세상 어디서나 통할 공용 랭귀지다.

경매를 주관하는 꽤나 높아 보이는 죽도시장 실력자도 나의 친구를 반기며 문어, 조개, 등푸른 생선이 들어가 있는 아침 밥을 사겠다고 한다. 찌개와 밥은 대접에 넉넉히 담겨 있다. 청어 멸치를 고추장에 푹 찍어 소주 한 잔. 크어어 수라상이 부럽지 않은 기색이다.

돌아 나오는 길에 고래를 전문으로 취급하는 친구에게 커피를 얻어 마셨다. 포경 금지로 그물에 걸려 익사한 고래가 거래되고 있고 각 부위별로 12가지 이상의 맛과 향내가 난다는 등 유익한 ‘강의’도 들었다. 싱싱한 고래가 입수되면 연락할 테니 무조건 달려 오란다. 그러겠노라고 했다.

고래 뱃속에서 3일을 지낸 ‘요나’, 에이하브 선장과 함께 사라진 ‘모비딕’을 떠올리며 출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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