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경태 편집국장

해를 넘길 때마다 항상 느끼는 마음이지만, 마지막 한 장 남은 달력이 올해는 유난히 아쉬움을 남게 한다. 결코 가볍지 않았던 금년도 보름만 지나면 끝이다. 일찍 찾아온 매서운 추위 때문에 따뜻한 곳을 자꾸 찾게 되고 외출하기가 싫어지는 한 해의 끝자락. 한 해를 어떻게 보냈는지 되돌아보면 분주하게, 피곤할 정도로 정신없이 보낸 것도 같은 데 뚜렷한 결실이 없다. 아니, 눈에 보이거나 느껴지지 않는다. 나를 목마르게 했던 갈증의 또 다른 이름 갈애(渴愛)에 끊임없이 시달렸지만 결국 남은 것은 생활과 생존에 대한 애착뿐이었다.
모든 사람은 태어날 때 백지 한 장을 가지고 태어난다. 그 한 장의 백지에 그리는 삶은 순전히 각자의 몫이다. 어떤 사람은 인생의 백지에 아름다운 그림을 그릴 것이고, 또 다른 사람은 그렇지 못한 그림을 그릴 것이다. 인생은 길다고 생각하면 길고, 짧다면 짧은 시간이지만 죽을 때 남는 한 점의 그림에 대한 평가는 냉혹하다고 본다. 우선 개개인이 스스로 평가해서 후회하는 삶이 많았다면 그 인생의 그림은 졸작이 될 것이고, 그렇지 않은 삶을 살았다면 명작으로 남을 것이다. 명작은 세월이 지남에 따라 더욱더 빛을 발하지만, 졸작을 남긴 사람은 두고두고 오명을 씻을 수 없을 것이다.
우리는 후회하지 않는 삶을 살기 위해 촌음을 아껴서 최선을 다해야 한다고들 말한다. 하루하루 최선을 다하는 삶이 모아져 최후의 한 점 그림이 탄생되기 때문이다. 매순간을 선하게, 부지런히, 즐겁게 산다면 죽음을 앞두고 후회하지 않는 아름다운 그림을 남길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한 해를 보내면서 그동안 나는 백지에 어떤 그림을 그려왔는가? 과연 후회 없는 삶을 위해 최선을 다했는가?
장 폴 사르트르는 “인간은 정지할 수 없으며 정지하지 않는다. 그래서 현 상태로 머물지 아니하는 것이 인간이며, 현 상태로 있을 때, 그는 가치가 없다”고 했다. 교황 베네딕토 16세도 그의 대담집 ‘세상의 빛’에서 “사람으로 사는 것은 오르기 힘든 산을 타는 것과 같다. 그러나 그런 굽이를 거쳐야만 비로소 정상에 오르고 그래야만 존재의 아름다움을 경험해 볼 수 있는 법”이라고 했다.
고귀한 목표를 향해 전진하는 사람들은 어느새 고귀한 인간이 되어가는 것이다. 개인적으로 냉정하게 한 해의 일들을 평가해 보면 그동안 삶에 대한 철학도 없이 살아온 부적격자는 아니었는지. 살아온 내 삶에 당당할 수 있었는지.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해서 목표와 희망을 가지고 현실에 충실할 수 있었는지를 생각해 본다면 결코 예스라고 대답할 수 없을 것이다.
가까운 이웃들과의 관계는 또 어떠했는가. 성냥갑처럼 포개어져 살고 있는 아파트 위 아래층의 물소리를 듣고 살면서도 서로 얼굴을 대면하여 평화의 인사 한 번 나누지 못했고, 마음의 소리에는 귀를 막고 듣지 않고 보낸 시간들이었다. 그동안 수없이 많은 해를 맞이하고 보냈으면서도 한 해의 끝자락에만 서면 경건해지는 것은 왜 일까. 그것은 아마 새해가 우리에게 주는 유일한 선물, 아름다운 꿈을 꿀 수 있는 특권 때문일 것이다.
새해에는 소리에 놀라지 않는 사자처럼,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처럼, 진흙에 더럽혀 지지 않는 연꽃처럼, 일상의 삶에서 끝없이 움켜쥐고 싶어 하는 세상의 물질적인 욕망들을 조금씩 내려놓으면서 도덕적 욕망을 추구하는 그런 삶을 살아가도록 해야겠다. 의무감으로 행하는 가식에서 벗어나 좀 더 나 자신을 자유롭게 풀어 놓으면서, 가능한 서두르지 않고 매순간의 삶을 음미하며 실존에 대한 물음을 던지며 살아갈 수 있도록 말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오늘과 같은 내일, 올해와 같은 내년이 되지 않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 아울러 얼마 남지 않은 시간 동안 장마철 물레방아 돌아가듯 쉬지 말고 힘들었던 일들을 모두 마무리하고, 갈증에 목말라 허둥대던 집착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되어, 올해보다 더 나은 새날들로 무술년이 채워지기를 염원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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