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자문 한동대 교수

필자가 머무는 동네는 LA시와 인접한 글렌데일시의 북부지역이자 라크리센타의 남부지역이다. LA지역에는 인구 400만의 LA시를 중심으로 150여개의 도시가 모여 1,200~1,500만에 이르는 대도시권역을 이루고 있는데, 이들 도시들은 대개 5만~30만 정도의 인구를 지니고 있다. 각 도시들 안에도 다양한 전통과 특색을 지닌 동네들이 있고 각자 그 동네 이름으로 불리기를 좋아한다.

오늘 아침에 잠시 들렀던 맥도날드는 터헝가로 불리는 동네인데 LA시이자 밸리로 불리는 지역에 자리 잡고 있다. 길 하나를 사이에 두고 라크리센타와 LA시로 갈리는데, 사람들이 이를 구분하는 가장 큰 이유는 학군 때문일 것이다. 주택가격 결정요인을 우리가 학교에서 ‘회귀분석’ 기법을 통해서 계산해 보기도 하지만, 사람들의 의사결정이 꼭 경제학 내지 과학적인 법칙에 따라 결정되는 것만은 아니고 우리가 흔히 ‘행동경제학’의 범주로 부르기도 하는 비경제적 내지 비논리적 방법으로 결정되는 경우도 많다. 주택구매가 살기 편리하고, 가격 오르고, 학군 우수하고 등에 의해 결정되기도 하지만 과시욕, 미신 등에 의해 결정되는 경우도 적지 않다는 말이다.

LA는 원래 멕시코 영토였으나 19세기 말 미-멕시코 전쟁이후 미국영토가 되어 아직도 많은 지명, 거리패턴, 건물 등이 스페니시 스타일로 되어 있다. 멕시코와 가까우므로 지난 세기 동안 수많은 멕시코인들이 월경하여 거주하고 있다. 물론 많은 이들이 미국시민들이 되어있다. 현재 인구구성을 본다면 백인 45%, 히스패닉 45%, 아프로아메리칸 8~9%, 그리고 아시아 및 태평양 출신 5~6% 정도이다. 하지만 히스패닉의 숫자가 더욱 커지는 경향이 있다.

LA를 보통 맬팅 팟(Melting Pot)이라고 부르는데, 그 이유는 이와 같이 많은 인종들이 함께 살아가고 있고, 다양한 문화들이 서로 영향을 주고받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미국문화가 주류를 이루고 있지만, 이러한 다양한 문화들이 결합되어 새로움을 창조해내고 있다. 따라서 시민들의 삶과 경험이 다양할 수밖에 없고, 수많은 스토리들이 탄생할 수 있으며, 이곳에 위치한 헐리우드가 세계 영화제작의 중심이 되고 있음도 이해가 가는 것이다.

이곳은 또한 LA Times를 비롯하여 수많은 신문과 책들이 발행되는 곳이기도 하다. 매년 퓰리처상 수상자들을 보면 이 지역 출신 기자들과 저자들이 많이 포함되어 있다. 이들을 보면 주류인 백인들만이 아니라 소수민족들이 많이 포함되어 있기도 하다. 이번에 발행된 USC매거진을 보니 한 베트남 출신 교수가 과거 베트남전쟁 패망과 보트피플, 그리고 이후 미국적응의 어려움과 극복을 주제한 소설로 퓰리처상을 받았다. 우리 한국, 아니 포항에도 여러 문필가와 저널리스트들이 있는데, 언어가 다름이 문제가 되기도 하지만 세계인의 심금을 울리는 글들이 써지고 영화로 제작되어 이 같은 상을 받을 수 있다면 좋겠다. 물론 역사상 한국인 수상자로 리포터 3명이 있었다.

이곳에는 상징적인 장소와 건물들도 많은데 ‘후랭크 게리’, ‘리차드 마이어’, ‘렌조 피아노’ 같은 거장들이 아직도 활동하고 있다. 한국인 건축가이자 도시계획가인 ‘그루엔어소시에이트’의 사장이었던 고 ‘Ki S. Park’도 로스앤젤레스를 배경으로 크게 활동했던 분이다. 코리아타운에는 2만원 일용직서 벤처를 일궈 2조원 규모의 기업가 된 ‘S. Kim’, 패션브랜드 포에버21의 ‘D. Jang’ 등 성공사례들이 많다. 물론 부를 이루지 못하고 근근이 먹고사는 분들도 많지만 LA다운타운에는 한국인이 주류를 이루는 봉제업만 해도 4만명이 종사하며 성공을 위한 꿈을 키워가고 있다.

하지만 LA의 역사와 우리 동포들의 삶이 평탄하기만 했던 것은 아니다. 1965년 LA다운타운에서 벌어진 와트폭동, 그리고 우리 동포들의 피해가 많았던 1992년 노르만디-플로렌스에서 출발된 LA폭동이 있었다. 그 직접적인 계기들은 사소한 것들이었지만 인종차별에 대한 항의가 약탈과 파괴로 이어지며 미국을 뒤흔든 큰 사건들이 되었다. 와트폭동의 피해자가 건물주들이던 유태계 였는데, 그 후 아무도 투자 않던 그 곳에 들어가 가게를 운영하던 이들이 우리 동포들이었다. 일주일에 몇 명씩 강도에게 희생되면서 끈질기게 자리를 지키던 한국인가게들이 근처에 자리 잡고 있다는 이유에서 LA폭동의 큰 피해자들이 되었던 것이다. 이를 계기로 우리 동포들이 좀 더 단결하게 되었지만, 경찰력 대응미흡으로 인한 코리아타운 피해에 대해 별다른 배상을 정부에 요구하지도 못했다. 다만 교계를 중심으로 ‘이웃을 사랑하지 못한 우리의 잘못을 뉘우치자’는 운동 등을 통해 그 악몽들을 치유해 나갈 수 있었다고 본다. 하지만 억울하기도 하고 우리의 정치력의 한계를 실감하는 순간이기도 했다.

세계에는 미국동포들만이 아닌 중국, 러시아, 우즈베키스탄 등에 많은 우리 동포들이 갖가지 사연들과 함께 살아가고 있다. 이들은 빼앗긴 조국으로 인해 타의에 의해 피맺힌 삶들을 겪어 왔으며, 이제 좀 낫게들 살고 있지만 발전된 조국을 그리며 자랑스러워하고 있다. 이들을 우리 한국이 어떻게 포용하느냐, 이것이 우리 세대의 풀어가야 할 임무라고 보아진다. 이들은 남이 아니고 우리의 일부이며 미래를 살아갈 우리들과 우리나라의 크나큰 자산인 것이다.
저작권자 © 대경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