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도 나름의 역사를 지니고 있는 곳이라서 한때 우리 조선 사회의 근간을 이루었던 양반 상놈의 신분처럼 이들 역시 귀족과 하층민으로 나누어지는 계급 구조가 평등을 기저로 한 지금의 민주사회에 까지도 이어져 내려오고 있다.

가끔 TV로 외국 영화를 접하다 보면 파티 장소에 참여하는 귀족들은 꼭 군복을 착용하고 나온다.

유럽 귀족은 다섯 가지 작위로 이루어져 있으며 공작, 후작, 백작, 자작, 남작의 순위이다. 만일 타국과의 전쟁이 발발하면 이들 귀족들이 가장 선두에서 서서 목숨을 걸고 전투를 수행한다.
이를 ‘노블리스 오블리제’라고 부르며 ‘귀족은 사회적 지위에 상응하는 도덕적 의무를 갖는다’는 뜻이다.

우리에게 있어서도 노블리스 오블리제는 먼 나라만의 생소한 명제가 아니다. 우리 민족에게 깊은 굴욕감과 수치심을 안겨 주었으며 수많은 희생을 강요했던 일제 강점 36년, 당시 조선의 이른바 양반 명문가뿐만 아니라 이름난 부자였던 사람들이 솔선수범하여 만주로 연해주로 이동하여 독립운동에 앞장서서 일제에 대항하여 노블리스 오블리제를 몸소 행하였던 것이다.

권력이든 부(富)든 그것을 가진 자들은 상대적으로 못가진 자들의 영원한 동경의 대상일 뿐 아니라 그것을 얻은 과정이 떳떳하지 못할 경우 지탄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그러기에 가진 자 일수록 기본적 인격도야(人格陶冶)에 힘써야 하며, 도야된 인격은 겸손으로 표출된다.

일찍이 노자는 그의 저서 도덕경에서 인간의 처세에 대해 이르기를 ‘물처럼 스스로를 낮추어라.’고 강조했다. 공자 역시 제(祭)의 현장에서 나이 드신 어른에게 제의 순서를 묻는다. 나중에 그의 제자가 공자에게 ‘사부님은 제의 모든 진행을 아시면서 왜 순서를 물었습니까?’하고 질문하자 공자는 ‘그것이 바로 예(禮)니라.’하고 답했다. 알면서도 어른과 함께 있을 때는 묻는 것 이것이 예이며 이 예가 바로 겸손이다.

지난 해 한화그룹 김승연 회장의 삼남 김동선 씨가 대형 법무법인 소속 신입 변호사 친목 모임에 참석했다가 몸을 가누지 못할 정도로 만취해 변호사들에게 막말을 하고 폭행을 휘두르는 등 '갑질'을 했다. 김 씨의 일탈적 행동은 한두 번이 아니었다.

이보다 훨씬 널리 알려진 김승연 회장의 이른바 '보복 폭행' 사건은 차남 김동원 씨로부터 시작됐다.
김 회장은 지난 2007년 3월 서울 청담동 가라오케에서 당시 22세이던 차남이 북창동 S클럽 종업원 일행과 시비가 붙어 다치자, 자신의 경호원과 사택 경비용역업체 직원 등 다수의 인력을 동원해 현장으로 갔다.

그리고는 자기 아들과 싸운 S클럽 종업원 4명을 차에 태워 청계산으로 끌고 가 쇠파이프 등으로 폭행했다. 이 사건은 '재벌의 원조 갑질'로 전국민의 지탄을 받았다.

세간의 화제가 되었던 ‘조현아 땅콩회항 사건’은 실로 실소를 금치 못하게 한다. 외국 명문대를 졸업한 최고의 학벌과 TV에 비춰졌던 것처럼 미모 역시 출중하건만 어찌 기본적 인격소양이 그리 갖추어져 있지 않았는지, 그녀가 저지른 행동은 아무리 생각해도 쉽게 납득이 가지 않는다.

받아들이기 힘든 이러한 현상들은 결국 교육의 부재로 밖에 설명할 도리가 없다. 교육이 행해져야 할 첫 번째 현장은 바로 가정이다. 조양호 회장이 기자회견에서 딸이 저지른 모든 행동은 자신의 교육이 잘못되었음을 시인한 것은 가정교육의 의미를 다시금 떠올리게 하는 대목이다.

요즘은 맞벌이 부부가 많아짐으로서 자녀에 대한 가정교육이 부실해질 수밖에 없다. 부천 백화점에서의 아르바이트생에 대한 모녀 갑질 사건은 이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좋은 예이다. 어머니와 딸, 둘 중 한명이라도 정상적 사고(思考)를 했더라면 이런 우습지도 않은 사건은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다.

이러한 가정에서의 부실한 교육은 결국 학교교육으로 채워져야 한다. 하지만 작금의 학교교육은 어떠한가. 모든 교육의 목표는 입시위주로 편향되어있으며 교사 역시 학생의 성적 올리기에 급급한 나머지 인성교육은 꿈도 꾸지 못할 실정이다.

현실이 이러하니 교육받는 학생들은 도대체 인격함양이 무엇인지 도덕적 행위가 어떠한 것인지 그 기준조차 아예 모르는 것이다.

과거엔 갑질 행위가 주로 물질로 인해 드러나곤 했는데 최근의 사건이 보여주는 것처럼 인격적 모독으로도 나타나며 이는 또한 법적인 문제로 제기될 수 있음이 밝혀졌다.

사회적으로 알게 모르게 행해지는 갑질은 다른 문제점을 드러내는 동기가 될 수도 있으며 결국 표출하는 자의 비밀스런 부분까지 적나라하게 나타내어 자질을 의심케 만드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 올바른 경영수업 없이 가진 자의 부는 후손에게 바로 세습된다. 세습된 부를 누리는 후손은 아마 갑과 을의 개념조차 없을 것이다.

많이 가진 자 일수록 더욱 기본적 도덕적 인격함양에 힘써야 하며 노블리스 오블리제를 선도적으로 실천해야 함에도 말이다.

갑질의 꼴불견 행태는 꼭이 많은 부를 가진 자들에게만 나타나는 현상은 아니다. 우리는 과연 어떠한가. 소외된 이웃, 나이든 어른들을 간과 한 적은 없는가. 그들에 대해 아픈 마음, 보듬고 싶은 마음이 없다면 그 또한 다른 유형의 갑질에 지나지 않는다.

이제 갑의 횡포에 대한 지탄의 손가락을 거두고 자신을 돌아 볼 시간을 가져야하며 가정과 학교 그리고 사회 전반적으로 모두 함께 힘을 모아 기본적 도덕성 함양에 최선을 기울여야 한다.
저작권자 © 대경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