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혜주 수필가

유리알처럼 투명한 겨울 아침. 한 떼의 참새들이 아침을 물고 왔다. 마당을 종종걸음 치더니 빨랫줄에 모여 앉는다. 겨울이 깊었는데도 여전히 또랑또랑한 노랫소리는 명랑하다. 재잘재잘 참새들이 아침을 전하는 곳마다 모든 물상이 극명(克明)하게 반짝인다. 한들거리는 빨랫줄이 반짝이고, 빈 빨랫줄을 가볍게 받쳐 든 바지랑대가 반짝이고, 달그락거리며 달콤한 수다에 빠진 빨래집게도 반짝거린다.

저렇듯 반짝거리는 것들이 언제나 극명하기만 했을까. 새들의 지저귐도 바람에 휘날리며 내는 옷가지들의 사라락 소리도 편하게만 들었을까. 해 만큼 눈부시는 갓 삶은 흰옷들의 펄럭임과 몰래 스치듯 놀러온 바람, 모여앉아 수다삼매경에 빠진 햇살을 즐겁게만 바라보지 못했으리라.

대가족이 사는 앞마당의 빨랫줄은 늘 가득하다. 햇살 좋은 마당 한 귀퉁이 처마 밑의 기둥과 마당귀의 나무에 꼼짝없이 칭칭 감겨 빨래 무게를 감당하느라 휘청거린다. 가년스러운 바지랑대도 무게 중심을 잡으려 바람과 함께 흔들리며 꼬꾸라지지 않으려 안간힘을 쓴다. 무슨 간절한 운명처럼 무너지고 삵아 가는 그것들과 함께 빨래를 앙다물고 있는 빨래집게에서 진한 모성을 읽는다.

빨래처럼 매달리는 재주밖에 없는 자식들을 끝까지 잡아준 건 집게 같은 어머니였다. 매끈하게 잘 다듬은 바지랑대는 가늘고 길기만 했지 불끈 하늘 한 번 떠받히지 못했다. 행여 무게를 견디지 못한 빨랫줄이 땅에 떨어져 더렵혀질까 집게는 늘 노심초사했다. 이빨이 뭉개질지언정 빨랫줄의 빨래를 놓지 않으려 고군분투했다.

물이 투두툭 떨어지는 젖은 옷을 물고도, 드센 바람에 속수무책 흔들리는 바지랑대를 추스르며 독한 마음으로 버티었으리라. 하늘높이 바지랑대를 올려 빨래가 잘 마르도록 곧추 세우며 발 디딜 곳 없는 허공 같은 삶에서 또 얼마나 위태로웠을까. 꾸득꾸득 외줄에 매달려 오직 빨래집게만 믿고 풀럭거리는 젖은 빨래가 점점 가뿐해져 깃발처럼 날리는 그 시간은 또 얼마나 외로웠을까. 때로는 그런 고단한 어깨위에도 새떼 날아들고 잠자리 몇 마리도 앉혔겠지.

집으로 돌아가는 길은 멀기만 했다. 풀이 죽은 아이의 다리는 무거웠다. 빤히 보이는 시야 안의 마을도 눈밭을 헤쳐 나아가는 길은 더디기만 했다. 누가 불러줄까. 아무리 둘러봐도 푸르무레한 저녁 이내에 덮여 있는 마을의 흰 연기뿐이었다. 대책 없이 너울대다 중심을 잃고 쓰러진 바지랑대에 실망해 울컥 나선 가출이었다. 그것은 마뜩찮은 가늠 질이었다. 어둠이 내리자 집을 떠났다는 서러움과 혼자라는 두려움이 엄습해왔다. 상처 입은 채 무리에서 떨어져 나온 한 마리 작은 짐승처럼 슬프고 외로웠다. 어둡기 전에 어서 집에 닿아야만 했다. 때로는 혼자라는 설움이 큰 에너지가 되었던가. 작은 방 들창 가에 불빛이 스며들 때 쯤 싸리문 앞에 섰다. 오빠들이 밥상을 물리는 중이었고 아무도 아이의 가출 미수사건을 알지 못하는 듯 집안은 평온했다.

아이가 좋아하는 동지 죽을 먹은 지 한참 지났다. 어머니는 마치 아이가 올 것을 알기라도 했다는 듯 살얼음 언 동지 죽 한 그릇을 장독대 항아리 속에서 꺼내왔다. “오빠들 볼라 어여 먹거라.” 잔불이 남아있는 아궁이 앞에서 그 한마디로 어머니는 깊은 내상을 입은 열두 살의 아이를 보듬었다. 삶이란 혼자 감당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함께 이겨내야 한다는 사실을. 그래서 그랬을까. 우리 형제는 자립심이 강하고 용감하게 자랐다. 빨래로만 향한 그 진념 하나로 버티어준 산보다 더 높고 장엄한 어머니라는 존재 때문이었다.

말미잘은 자기 몸의 일부를 떼어 물살에 날려 보내듯 놓아 주는 번식 방법을 가지고 있다. 모체로부터 떨어져 나온 작은 덩어리는 자유롭게 떠다니다가 적당한 곳에 다다르면 뿌리를 내린다. 사실상 자기 복제에 가까운 모습이기도 하다. 떨어져 나가 독립한 새로운 말미잘은 또 하나의 자신이기도 하다. 그런 식의 번식 방법으로 말미잘은 영원히 살 수 있는 게 아닌가.

모성애가 시들고 있다. 여성은 많으나 생명의 씨앗을 품어 기르려는 모성이 줄고 있다니 안타까운 일이다. 아무리 시대가 변해도 변치 않는 것이 있다. 바로 생명은 다른 생명들의 희생 위에서만 꽃 필 수 있다는 사실이다. 새싹이 땅의 어둠에서, 모든 꽃이 가지의 어둠에서, 모든 새들이 알의 어둠에서 깨어날 수 있는 힘의 근원은 모성이다. 시인은 말한다. 어머니는 모든 것의 시작과 끝이라고. 우리를 살게 했고 견디게 한 모든 인간들의 대지라고. 세상의 모든 어미들이 이와 다르지 않을 것이다. 말미잘의 영원한 번식과 빨래집게에서 위대한 모성을 떠올리는 사람이 어디 나 하나뿐이랴.
저작권자 © 대경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