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원로시인의 성폭력을 ‘괴물’이라는 시로 고발한 최영미 시인이 다시 사과와 반성을 촉구하며 문단 성폭력을 조사하는 공식기구가 출범하기를 바란다고 했다.

지난 17일 최 시인은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린 글에서 “언젠가 때가 되면 ‘괴물’의 모델이 된 원로시인의 실명을 확인해주고, 그가 직접 목격한 괴물의 성폭력에 대해 말할 생각”이라며 그는 평화의 소녀상 앞에서 시를 읽을 자격이 없는 사람이라고 말했다.

최 시인은 서지현 검사가 성폭력 피해 사실을 폭로한 이후 시 ‘괴물’이 기사화됐고 “문단 내 성폭력이 더는 반복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내가 겪은 슬픔과 좌절을 이제 문단에 나오는 젊은 여성문인들이 경험하지 않기를 바라며 방송에 나갔다”고 했다.

문단 원로시인의 성추행에 이어 연극계의 대부로 불리는 이윤택 전 연희단패거리 예술감독이 성추행을 저질렀다는 폭로가 줄을 잇고 있다.

자신을 연희단패거리 단원이었다고 밝힌 김보리 씨는 지난 17일 온라인 커뮤니티 디시인사이드에 ‘윤택한 패거리를 회상하며’라는 제목의 글을 올리고 “이윤택 씨로부터 극단에 있었던 2001년 19살에, 극단을 나온 2002년 20살 이렇게 두 번의 성폭행을 당했다”고 주장했다.

연희단패거리 이윤택 전 예술감독이 19일 오전 10시 서울 종로구 30스튜디오에서 공개 사과했다. 이 씨는 지난 14일 김수희 극단 미인 대표의 폭로가 나오자 “연극 작업을 내려놓겠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설 연휴, 연극계는 ‘미투(#MeToo)’ 운동으로 뜨거웠다. 연희단거리패를 이끌던 유명 연출가 이윤택 씨로부터 성폭력 피해를 입었다는 전직 단원 등의 증언이 쏟아졌기 때문이다. 성추행을 넘어 성폭행을 당했다는 충격적인 주장까지 나왔다.

이윤택 씨가 저질러온 성폭력은 차마 입에 담기조차 부끄럽다. 김수희 극단 미인 대표의 용기있는 ‘미투’가 없었다면 더 많은 피해자가 생겨났을 가능성이 크다.

지난달 말 서지현 검사가 ‘안태근 전 검사장으로부터 성추행을 당했다’고 폭로하며 불붙은 반(反)성폭력 운동은 법조계·문학계를 넘어 연극계로까지 확산됐다.

이는 성폭력이 특정 분야나 집단에 국한된 문제가 아님을 말해준다. 권력관계가 존재하는 모든 조직에 상존하며, 한국 사회 전반에 만연해 있음을 일깨운다. 연극계를 넘어 또 다른 분야에서도 ‘미투’는 이어질 수밖에 없다.

성폭력에 대한 처벌은 당연한 조치지만 성폭력을 행사한 당사자의 충분한 사과도 반드시 있어야 한다. 이 씨의 행태는 고백과 사과로 용서받을 수준을 넘어섰다고 본다. 문화계 책임자는 철저한 진상규명 작업은 물론 전반의 폭력적이고 부조리한 서열문화를 스스로 자정하려는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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