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월의 끝자락이다. 우수가 지나고 얼음장 밑으로 봄이 오고 있다. 우수 경칩에 대동강 풀린다는 말처럼 대지는 벌써 봄의 기운이 감돌고 있다. 혹한의 추위도 봄바람을 막을 수 없으며, 겨울 동토도 봄비에 녹아 내린다.

겨울이 가면 봄은 어김없이 찾아오지만 시대에 따라 봄을 맞이하는 사람의 감회는 많이 달랐던 것 같다. 생활 수준이 나아진 최근 사십여 년을 빼고서, 그동안 우리 민족의 삶에서 봄이란 늘 견디기 힘든 세월, 그 이상이었다.

봄이면 먹을 것이 없어서 소중한 목숨이 수도 없이 이승을 떠났고, 살아도 산송장이나 다름없이 그렇게 버텨야만 했던 인고의 계절이었다. 일제 강점기 이전의 세월까지 거슬러 올라가지 않더라도, 조국광복과 함께 겪은 한국전쟁의 상황은 이루 말 할 수 없이 비참했다. 한국전쟁에서 가장 많은 우방국의 지원을 받았던 국가로 기네스 북에 올라있는 우리나라. 그 당시 행정의 수반이었던 우남 이승만의 시 연자음(燕子吟)만 읽어 보더라도 그 때의 모습을 생생하게 미루어 짐작해 낼 수 있다.


燕子喃喃去復回(연자남남거부회)

제비는 강남갔다가 다시 돌아와서는


舊巢何去只寒灰 (구소하거지한회)

옛둥지는 어디가고 다만 차가운 재만 남았느냐고 재잘대지만


莫將萬語論是非 (막장만어논시비)

아무리 시비를 논하려 하지 아니 하여도


戰世如今孰不哀 (전세여금숙불애)

난리통에 이 모양이니 뉘라서 슬프지 아니 하리오.


- 우남의 시 '燕子吟(연자음) ' 전문



연자음(燕子音)은 공보처에서 발간한 우남 시선에 실린 시로써 한국전쟁을 겪은 직후(1951년, 봄)의 감회를 적은 것이다. 제비는 남쪽으로 갔다가 봄이 되어 옛집을 찾아 돌아왔지만, 전쟁의 참화로 인해 자기가 살던 집은 폐허가 되어 없어지고 잿더미만 남아 있다. 제비는 옛집이 없어졌다고 슬프게 짹짹거리지만, 삶의 터전을 졸지에 잃고 갈 곳이 없는 우리 민족의 슬픔은 그 보다 더하다는 심정을 몇 줄의 시로 남겨 놓은 것이다.

이 시는 전쟁으로 인한 시대의 아픔을 제비에게 답답함을 하소연 하면서 우리 민족의 슬픔과 애처로움을, 한 인간으로서 느낀 소회을 담담한 독백으로 읊조리고 있는 것이다. 땅을 치며 하늘을 보고 울부짖는다는 고지규천(叩地叫天). 풀 한 포기, 꽃 한 송이 피지 않는 전후의 황량한 폐허 더미 앞에서, 옛집을 찾아온 제비를 바라보며 시를 쓴 우남 이승만의 마음이 아마 이런 심정이 아니었을까.

오랫동안 꽁꽁 얼었던 겨울의 추위를 견디고 난 봄은 어느 때 보다도 따사롭다. 겨울이 매서우면 매서울수록 봄꽃은 한결 아름답게 피어나는 법이다. 올해의 봄도 따뜻한 날씨를 기록할 것 같다.

꽃이 붉어 모든 사물들을 취하게 하는 봄날이 오면 앞서 힘들게 살다간 선조들의 고통을 생각하며, 그 때의 마음으로 연자음(燕子吟)을 가만가만 소리내어 읽으면 모든 것이 풍족한 현재의 삶이 얼마나 행복한지 깨닫게 되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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