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텍, 대학원생 대상 설문 조사 결과, 부당 대우 62.6%

포스텍, 대학원생 자체 설문 조사 결과, 부당 대우 62.6%
대학사회 갑질행위도 미투운동과 함께 전개해야 한다.
고된 학업에 성추행과 성폭력으로 멍든 가슴
고급인력 양성 허울 속 교수 선배의 착취문화 여전
학교의 구조적 문제, 시스템 개선 시급


"대학원생이 지도교수에게 받는 부당대우와 갑질에 대해서도 미투운동이 일어났으면 좋겠습니다."
포스텍 재학생들이 주로 사용하는 인터넷 커뮤니티인 페이스북 ‘포항공대 대나무숲’에서 캡쳐한 말이다.

포스텍이 대학원생을 대상으로 실시한 자체 설문조사결과 부당대우을 받았다는 대상자 가운데 80.7%가 교수로부터 부당한 일을 겪었다고 응답하는 등 대학사회의 갑질행위에 대한 비판이 증폭되고 있다. 미투 운동과 함께 전개돼야 한다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대학은 고급 인력을 양성한다는 허울을 쓴 채 대학원생을 착취하고 있다.”
대학원생 노동조합(대학원생 노조)이 지난달 24일 열린 전국대학원생노동조합 출범식에서 한 말이다.

대통령 직속 청년위원회가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연구 시간 외에 부당한 사생활 침해를 받았다고 답한 대학원생은 18.3%, 연구와 관계없는 일을 강요받은 적이 있다고 답한 대학원생은 12.9%에 달했다.

자신이 상당 부분 기여한 연구물에 공저자로 등록될 권리를 침해받은 적이 있다고 답한 이는 5.8%였다. 대학원생이 독자적으로 수행한 프로젝트에 타인을 공저자로 올리라고 강요받은 적이 있다고 답한 대학원생은 7.2%로 나타났다.

대학원생들은 학위를 볼모로 교수 및 선배들의 부당 대우 및 폭력 등을 감수해야 하는 환경에 놓여있다. 근로자로서의 보호를 받지 못하고 인권 사각지대에 놓여 있는 대학원생들의 현실과 고충에 귀 기울여야 할 때다.

◇ 포스텍 자체 설문 조사 결과, 부당 대우 62.6%
포항공대신문은 지난해 9월 실시한 대학원생 대상 설문조사, ‘공대 사회 속 부당한 대우’에 총 91명이 참여, ‘대학원 재학 중 부당한 일을 겪은 경험이 있는가?’라는 질문에 응답자 중 57명(62.6%)이 ‘그렇다’고 대답했다고 밝혔다.

‘누구에 의해서 부당한 일을 겪었는 가?(중복 응답 가능)’라는 질문에 각각 46명(80.7%)이 교수, 24명(42.1%)이 학생이라고 답했으며 교수의 손님, 교직원 등 순이었다.

‘어떤 피해를 겪었는가? (중복 응답 가능)’라는 질문에는 ‘폭언, 조롱 등 정신적 피해를 보았다’고 응답한 사람이 46명(83.6%)으로 가장 많았다. 이어 ‘인건비 부당 집행 등과 같은 금전적 피해를 보았다’는 23명(41.8%), ‘구타, 업무량 과다 등 신체적 피해를 보았다’는 9명(16.4%) 순이었으며 소수 응답으로 연구 업적 관련 비리 등도 있었다.

◇ 학업도 힘든데… 성추행과 성폭력으로 멍든 가슴
청년위원회가 발표한 보고서에는 대학원생 5명 중 1명은 성별이나 신체, 외모 등에 대해 조롱이나 모욕적인 비유를 당한 경험이 있다고 밝혔다. 회식 자리나 논문 지도, 프로젝트 수행 중 성희롱이나 성추행을 당한 적이 있다고 답한 이도 4.8%에 달했다. 부당한 처우에 대한 경험은 여성이 52%로 남성(41%)보다 11%포인트 많았다. 모욕감을 느낄 만한 언어적 폭력은 물론, 구타를 당했다고 답한 비율은 22.8%를 차지했다.

포스텍 대학원생 A씨는 포스텍 겸직교수로 재직하던 B씨에게 1년 동안 성추행을 당했다. B씨는 지난 2013년 10월부터 2년여 간 포스텍에 파견돼 포스텍으로부터 업무편의상 겸직교수직을 받아 실험·논문연구 등을 했었다. 포스텍은 B씨를 겸직교수에서 해임했다.

A씨는 소송에서 모두 승소했으나 3년에 걸친 법적 공방으로 인해 대학원생이 수행해야 하는 연구 활동에 지장을 받았다. 또 지도교수의 법적 공방 및 징계로 인해 해당 연구실 소속의 다른 대학원생들이 소속 연구실을 옮기는 과정에서 학위 취득 일정이 미뤄지기도 했다.

A씨는 “가해자의 ‘이 바닥 좁다’라는 말이 이전에는 나에게 하는 협박처럼 들렸다. 그 말은 가해자 본인에게 적용되는 말이라는 것을 이제 알았다”며 “고통 받고 있는 사람이 있다면, 한시라도 빨리 신고해 스스로의 존엄성을 지키길 바란다”고 전했다.

◇ 학교의 구조적 문제, 시스템 개선 시급
성폭력이나 부당한 업무 지시 등에 노출됐지만 보호 장치가 없다는 것도 문제로 꼽힌다. 최근 서울대 인권센터에 따르면, 대학원생 5명 중 1명은 아무런 대처를 하지 못했다고 밝혔다. 직접 문제제기를 한 경우는 1.8%, 제도적으로 대응한 경우는 0.7%에 불과했다. 대통력 직속 청년위원회 조사에서도 대학원생의 65.3%는 ‘그냥 참고 넘어갔다’고 답했다.

소극적인 대처의 원인은 절반 가량이 ‘학점이나 졸업 등에 불이익을 받을까 두려워서 참았다’고 답했고, 43.8%는 ‘해결되지 않을 거 같아서 포기했다’고 밝혔다.

포항공대신문에 따르면, 폭언은 해당 연구실 대학원생 모두에게 미팅 때마다 지속해서 자행됐다고 밝혔다. 교수의 수업 시간에 대학원생에게 무보수로 대리 수업을 맡겼으며, 대학원생들의 출장비나 학회에서 받은 상금의 일부를 반납토록 했다고 전했다. 또 논문의 저자를 임의로 바꿔 작성했다고 주장했다. 교수가 전혀 연구에 참여하지 않은 사람을 논문 저자 목록에 추가하거나 실제 실험을 수행한 사람을 저자 목록에서 제외했다고 밝혔다.

전문가들은 “교수가 대학원생의 인사권이나 논문 심사권 등 많은 결정권을 갖고 있기 때문에 늘 약자의 위치에 있다”며 “대학원생을 노동자로 인정하지 않는 풍조가 문제의 근본적인 원인”이라고 꼬집었다.

이어 “대학과 교육 당국이 협조해 철저한 갑을 관계 시스템 개선과 감사를 철저히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포스텍 측은 “2015년 대학원총학생회가 ‘포스텍 대학원생 권리·의무장전 선언식’을 가졌다"며 "포스텍 대학원생의 기본 권리와 의무에 관한 내용을 명문화 해 선포함으로써 지속적으로 실현할 수 있도록 제도적 기반을 마련한 바 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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