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닷가의 벽화 마을, 친퀘테레

새벽 일찍 로마를 떠나 친퀘테레로 향했다.
이번 이탈리아 여행에서 베네치아를 첫 번째로 베로나, 로비고, 피렌체, 폼페이, 소렌토, 카프리 섬, 로마, 바티칸을 거쳐 친퀘테레를 방문하면 밀라노와 코모호수가 남았다.

몇 시간을 가도 넓은 초지와 아늑한 4월의 풍경들이 펼쳐진다.
계곡의 물은 석회가 많아 부옇지만 미세먼지나 황사가 없어서 공기는 항상 깨끗하다.
초원의 풍경과 집들은 가수‘남진’의 노랫말처럼‘저 푸른 초원 위에 그림 같은 집을 짓고’에 딱 맞는 분위기다.
낡은 창고처럼 허물어져가고 있는 벽돌집들이 꽤 많이 보였는데 이탈리아는 자기 집이라도 허가가 떨어져야 허물 수 있다.
당국에서 역사적 가치가 조금이라도 있다고 판단이 되면 그대로 보존해야한다.
그만큼 옛것을 아끼고 자신들의 역사문화에 대한 자부심 또한 대단하다.
장시간 여행에도 맑고 아름다운 초원의 풍경에 취해 잠도 오지 않았다.

버스에서 내려 다시 기차를 타고 가서 도착한 곳은 친퀘테레의 첫 번째 마을이었다.
오랜 세월 가난한 어부들이 바닷가 절벽 투성이에 집을 짓고 물고기를 잡으며 살아온 이 마을들은 바닷가 연안에서 일하며 자기 집을 잘 보기위해 알록달록 칠을 하다 보니 척박한 집들이 장난감처럼 예쁜 마을이 되었다.

‘친퀘테레’는 다섯을 뜻하는 친퀘와 땅을 뜻하는 테레가 합성된 단어로 ‘다섯 개의 마을’이라는 의미이다.
이 다섯 개 마을의 이름은 리오마조레, 마나롤라, 코르닐리아, 베르나차 그리고 몬테로소인데 바쁜 일정으로 다섯 개의 마을을 다 가보지는 못하고 우리가 방문한 곳은 ‘리오마조레’였다.

바닷가의 척박한 환경이 만든 집들은 색깔을 통해 재탄생되었다.
1997년 유네스코 자연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장소에 걸맞게 철도로 연결된 다섯 개의 마을은 가난한 어부가 아니라 요정들이 사는 집들처럼 보인다.
열차에서 내려 마을로 가려면 긴 터널을 통과해야 하는데 통로의 한쪽에는 타일과 대리석 조각들을 붙여서 만든 벽화가 줄지어 있다.
한 폭 한 폭의 작품들이 그냥 지나칠 수가 없고 대략 작업한 벽면이 없다.
바닷가 마을의 이야기들을 타일 조각들로 섬세하게 모자이크기법으로 제작했다.
전체적인 밑 작업을 하고 한 조각 한 조각 붙여나가며 완성한 정성만으로도 감동을 주기에 충분했다.

보물찾기를 하듯이 긴 통로를 지나면 보석 같은 마을이 나타났고 바닷가에서 본 이 마을은 성당 스테인드글라스의 모자이크를 입체로 바꿔 놓은 것 같았다.
거꾸로 이 알록달록한 마을을 평면으로 펼쳐서 모자이크로 만들면 아름다운 스테인드글라스가 되는 것이다.

현지에서 인솔해 주시는 교수님의 해박한 지식을 전해 들으며 가는 여행이라 모르는 건 들으면 되고 나머지는 ‘걷는 만큼 보인다’고 부지런히 걸으며 듣고 배우고 보며 여러 곳을 탐방했지만 친퀘테레는 역사적인 의미와는 조금 다른 곳이다.

여기는 삶의 스토리가 있는 마을이다.
우리로 치면 통영의 동피랑 벽화 마을이나 부산의 감천문화마을과 비슷한 느낌이다.
철거 위기에 놓였던 통영의 한 마을이 예술을 통해 새 옷을 입고 마을공동체를 살리고 거리의 예술문화를 꽃피웠다.
부산의 감천마을은 6,25 사변 전 후에 부산 쪽으로 많이 몰려와 살면서 생긴 마을 중에 하나이다.
그 중에 감천의 집단 판자촌은 개발이 잘 되지 않았고 낙후되어 있었는데 거기에 색깔을 입혀 새롭게 단장을 한 문화마을이다. 명소라기보다는 아픈 역사의 이야기가 묻어 있는 곳이다.

친퀘테레는 정부가 주도한 ‘탑다운’방식으로 성공한 사례가 아니라 가난한 어부들이 살다보니 만들어진 환경에서 조금 더 꾸미고 가꾸어진 경우이다.
세방화, 지역민이 지역을 위한 지방의 세계화를 만든 성공 사례이다.
정부에서 조금 더한 것은 관광객을 위하여 다섯 개의 마을을 철도로 연결해준 것이다.
이 다섯 개의 마을은 각기 개성도 뚜렷하다.
다섯 부족의 요정들이 사는 다섯 마을의 느낌처럼 리오마조레와 그림 같은 마나롤라 마을도 사랑을 많이 받지만 언덕 위의 마을 코르닐리아와 항구마을 베르나차, 맑은 지중해와 넓은 모래사장을 가지고 있는 몬테로소도 많은 관광객들이 찾는 명소들이다.

요즘은 농촌도 6차 산업시대라고 한다.
1차 생산과 2차 판매, 3차 관광과 체험이 함께 한다고 해서 1, 2, 3의 숫자를 더해 6차 산업이라고 한다.
생산부터 무농약을 추구하여 자연농법에 가까운 농법을 연구하고 현지판매와 직거래, 관광과 체험코스가 어우러져서 온라인상에서 정보를 확인하고 교환하며 오프라인을 오간다.
소신 있고 똑똑한 농부가 성공하는 시대이다.

나폴리를 보면 포항 동빈 내항이 생각나고 친퀘테레를 보면 포항 여남동 마을이 생각난다.
이곳의 강과 계곡을 보면 형산강과 냉천, 곡강천이 보이고 내연산 계곡이 보인다. 그리고 사람들의 이야기가 물씬 풍겨나는 죽도시장이 머릿속에서 오버랩 된다.

우리는 우리의 이야기가 있다. 생각해 보면 내가 사는 동네도 물 맑고 산 좋고 인심 좋은 곳이 많다.
저작권자 © 대경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