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부용 문화기획팀장

 
우리나라에서 전업시인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사회주의에서 말하는 소위 생산성 없이 밤만 축내는 불필요한 존재와 같다.

​최근 ​계간지 '문학과 사회' 의 별책 '하이픈'은 시인의 생계에 대해 적나라하게 드러냈다. 성동현 시인은 1년간 시를 써서 손에 쥔 돈이 120만원이다. 그래서 3개월마다 평균 30만원을 번다고 했다. 

시를 직업으로 쓰는 시인은 생계유지가 불가능하다. 그래도 시를 쓰는 이유는?  "정신적 충만에 가까운 행위" 라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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숱한 불면의 밤, 세상에 대한 걱정근심으로 좀더 따뜻한 사회를 만들려고 고민하는 시간에 대한 보상이야 없더라도 시인을 바라보는 시선만은 따스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지금도 우리 사회에는 밥이 되지 않는 한 줄의 시를 자신의 목숨보다 소중히 여기며 살아가는 시인이 있다. 

시인들의 바람은 소박하다. 자신들이 사주는 밥을 먹어도 친구들이 불편해하지 않길 바라는 정도다. 그 이상의 능력도 없다.  함민복 시인의 시 ‘긍정적인 밥’을 보자. 얼마나 소박한 삶으로 살아가고 있는지를.

시 한편에 삼만 원이면
너무 박하다 싶다가도
쌀이 두 말이데 생각하면
금방 마음이 따뜻한 밥이 되네

시집 한 권에 삼천 원이면
든 공에 비해 헐하다 싶다가도
국밥이 한 그릇인데
내 시집이 국밥 한 그릇만큼
사람들 가슴을 따뜻하게 덥혀줄 수 있을까
생각하면 아직 멀기만 하네

시집이 한 권 팔리면
내게 삼백 원이 돌아온다
박리다 싶다가도
굵은 소금이 한 됫박인데 생각하
면푸른 바다처럼 상할 마음 하나 없네
 
글을 써서 먹고 사는 직업은 예부터 가난하다. 그래서 君子는 우도(憂道)요, 불우빈(不憂貧)이라 했다. 군자는 도를 걱정하지 가난을 걱정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옳은 선비는 양심을 먹고 살았다.

​돈을 최고로 치는 우리사회에서 밥 못 먹는 직업이 시인이다. 그래도 양심을 버리지 않고 의연히 시를 쓴다. 그러므로 사회가  완전하게 썩지 않는다. 모두가 잠든 시간에 돈이 되지 않는 시를 쓰며, 양심의 소리에 귀 기울이는 초병의 역할을 기꺼이 감당하는 올곧은 시인을 존경한다. ​언제쯤 시인이 밥 걱정 않고 시를 쓸 날이 올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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