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재 경북대 교수

남북 정상회의가 성공적으로 잘 마무리 되었다는 뉴스로 온 나라가 들떠 있다. 앞으로도 더 큰 발전이 있을 전망이다. 최근 안시성 영화가 개봉되어 절찬리에 상영되고 있다. 645년 당나라 태종이 20만 대군을 이끌고 고구려에 파죽지세로 쳐들어와 요하 일대의 비사성·백암성·요동성을 차례로 함락시키고 안시성을 공격하였다. 안시성은 천혜 적으로 험준한 요새였다. 주변은 곡창지대 이며 병기인 철광석 산지로 중요한 군수물자 재료의 보고였다. 안시성 방어의 의미는 요동지역의 여러 성들과 연계되어 있기 때문에 군사적으로 전략적인 요충지이다. 압록강 북쪽의 오골성과 국내성을 수호하는 전지기지로도 중요하였다. 안시성 성주 양만춘은 642년 연개소문이 정변을 일으켰을 때 끝까지 싸워 성주의 지위를 유지하였으며, 당나라 태종이 침공하였을 때도 끝까지 항쟁하여 당군을 물리친 고구려의 명장이다.

당나라 군대는 안시성의 남동쪽에 토산을 만들어 공격해 오자 성위에 목책과 토산 지하를 굴착하여 붕괴시킨 지략으로 대응하였다. 하루에도 6∼7회 교전하는 치열한 공방전을 벌였다. 당나라 군대가 60여 일 동안 연인원 50만을 동원하여 성보다 높은 토산을 구축하고 성안을 공격하자, 토산 공격에 나서 정상을 점령하고 3일 동안 계속된 당나라 군대의 총공세를 물리쳤다. 당나라 군사는 오랜 전란 속에 지쳐 있었다. 때마침 겨울에 접어들면서 날씨가 추워지고 군량이 바닥나자 당나라 군대는 퇴각하였다.

당태종 이세민이 중국 중심의 세계질서를 구축하려는 정벌정책으로 주변국을 복속 시켰다. 그런 당나라에 대해 영류왕을 비롯한 귀족들은 굴욕적으로 외교에 일관했다. 수나라 침공시 포로로 잡혀 있던 군사 1만 명을 조건 없이 당나라의 요구대로 송환했다. 심지어 당에 왕세자를 보내 조공을 하기도 했다. 한창 성장하는 당나라에 저자세로 전쟁은 피하자는 입장이었다.
반면 30여 년 전 수나라의 침략을 물리친 자부심을 가진 무장 세력들은 고구려가 천하의 중심이라는 세계관의 분위기 때문에 저자세로 일관하는 영류왕의 정책에 반발했다. 게다가 연개소문은 어릴 때부터 지략과 재주가 뛰어나다는 칭송을 받고 성장하였다. 이십 대의 혈기왕성한 연개소문은 당시 집권층에게 매우 위협적인 인물로 인식되었다.

박은식은‘천개소문전’에서 연개소문은 독립자주의 정신과 대외경쟁의 담략을 지닌 우리 역사상 일인자로 평가했다. 민족의 자주정신이 요구되던 20세기에 자주적인 혁명가로 재인식된 것이다. 역사적인 행위는 시대의 여건에 따라 다르게 평가될 수밖에 없다. 먼 옛날의 사실을 현시점에서 평가한다는 자체가 무리가 뒤따른다. 다만 오늘날에도 어려운 난제인 개혁을 확실하게 수행했다는 사실은 긍정적인 역사의 가치라 할 수 있다.
한국의 속담에 아기가 찡찡거리며 울 때 명약으로 호랑이보다 무서운 게 곶감이란 이야기가 있다. 필자가 수년 전 중국 방문시 경극이란 관광용 연극을 관람할 때 무대 뒤 스크린에 부착된 연개소문 부적이 있었다. 당시 안내자에게 부적의 연유를 묻자 중국에도 호랑이보다 더 무서운“연개소문”이 있었다는 희미한 기억이 났다. 어쨌든 연개소문의 용맹성은 전설처럼 전해 오고 있는 흔적에서 가히 위용이 짐작 되고 있는 자체가 위대한 역사의 한 페이지라 할 수 있다.

국가 비전을 높인다는 것은 먼 곳에 있거나 거창한 것이 아니다. 늘 국가의 미래를 위해 자기 분야에서 최선을 다하는 자세가 중요한 것이다. 오늘날 강대국의 의미는 단순히 면적이 넓은 것이 아니라 세계인의 소비패턴에 걸맞은 기술력 소유 양에 따라 결정하는 시대이다. 또한 자고나면 기술의 우위가 숨 가쁘게 바꿔지는 현실에 적용할 수 있는 냉철한 대처가 요구되고 있다. 안시성의 영화를 관람하는 자세는 다른 대중성 있는 영화와는 의미가 다르다. 준비가 없거나 힘이 약한 국가는 비참한 최후를 맞는다는 결론을 깊이 헤아려 봐야 한다. 이 같은 역사의식은 오늘의 행위가 내일 기록이 되며 준비된 자의 답안지만이 풍요로운 미래가 보장된다는 사실 이다. 노력하고 준비하는 자에게는 역사의 승전고가 울릴 것이다. 끊임없이 문제점을 분석하고 대비하는 자세만이 역사의 주인공이 된다는 사실을 안시성 영화에서 음미해 본다. 좋은 영화를 명화라 부른다. 용기와 지혜를 주는 더 많은 명화를 기대해 본다.
저작권자 © 대경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