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항문화재단 2018 클래식 명품 기획 '임동혁 피아노 리사이틀'

▲ 임동혁. /ⒸSangWook Lee 제공

역시 임동혁이다. 그는 자신만이 가진 독특한 색으로 지난 11일 포항문화예술회관을 가득 채워 나갔다. 한 폭의 수채화를 보듯 잔잔하게, 통통 튀는 빗방울처럼 상큼하게, 정열의 투우사처럼 강렬하게. 임동혁(35)은 카멜레온처럼 공간의 색과 흐름을 자유자재로 바꾸어 나가며 청중들이 숨소리조차 잊을 정도로 그만의 슈베르트로 리드해 나갔다.

올해 초 인천공항에서 연주자 없이 연주곡들이 흘러나오는 자동 연주 기능의 피아노를 보며 예술 영역에도 진출한 AI로 인해 많은 예술가들이 설 자리가 없어지는 것이 아닌가 우려를 했었다. 그러나 임동혁은 그런 우려를 말끔히 지워버렸다. 예술은 아직까지는 인간의 영역임을 증명했다. 미스 터치가 나오지 않는 기계이지만 인간의 섬세한 감수성, 개성과 해석은 흉내내지 못하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무대 위에 섰을 때 겪는 연주자의 수많은 감정을 기계는 절대 이해하지 못한다.

화려하고 멋진 연주 뒤에는 몇 번이나 포기하고 도망치고 싶은 순간들이 늘 자리해 있다. 무엇보다도 무대 위에 선다는 것은 그 공포를 이겨내지 않고서는 불가능한 일이다. 마치 시퍼런 망망대해의 한 가운데에 던져져 어떻게 살아남을 것인지 구경하는 갈매기들의 시선을 감당해야 하는 것과 같다. 몸이 생존법을 기억하지 않으면 물에서 허우적대다 파도에 삼켜지는 것이다. 바다에 잠식(蠶食)당하지 않으려면 무던히도 헤엄쳐야 한다. 상상 그 이상의 연습량을 온전히 소화해야만 세상에 펼쳐진 드넓은 바다를 향해 당당히 돛을 올릴 수 있는 것이다.

임동혁은 오래전 기자와의 인터뷰를 통해 "공연 전, 연주할 때 순간적인 힘을 내야하기 때문에 바나나 같은 걸 억지로 먹기도 한다"며 "언제나 외롭고 힘들다. 자신과의 싸움이니까. 한국에서 하는 공연이 제일 떨린다. 청중들이 기대를 많이 해서 부담감이 크다"며 고충을 토로했다.
또 "힘들 땐 더 연습을 한다. 긴장을 즐길 줄도 알아야 한다. 술 한잔 하면서 스트레스를 풀기도 한다"고 자신만의 노하우를 밝힌 바 있다.
타고난 재능만 있어서는 안 된다. 연습은 언제나 선행돼야 한다. 노력하는 천재는 이길 수 없다. 과정을 즐길 줄 아는 임동혁의 다음 행보가 더욱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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