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감 현장에는 깜짝깜짝할 고성들이 오간다. 한 쪽에서 소리를 키우면 이에 질세라 상대 쪽도 목소리를 키운다. 이를 중재하는 상임위원장도 “조용히 하세요!”라고 소리를 키우다 보면 어느새 국감장은 고성장으로 변한다. 그래도 고성은 양반이다. 국회의원 입에서 나왔나 싶을 막말들도 거침없이 쏟아진다. 지난해 국감장에서 나온 발언들을 보면 “어디서 삿대질이야, 아주 막가파 대감이야”, “완장질 하지 말아라”, “선배들 앞에서 이 무슨 버릇없는 짓이야”, “이렇게 잡담하면 저도 잡담할 거에요”, “장00, 이리 와봐 할 짓?” 등이다.

그러나 민주화의 도도한 흐름은 서서히 많은 것을 바꾸어가고 있다. 그 중 하나가 언어와 관련된 지도자의 덕목이라고 할 수 있다. 물론 아직은 과도기이기 때문에 약간 혼란스러운 면도 많아 보인다. 참여정부 시절, 특히 식자층을 비롯한 여론 주도층들이 대통령의 언변을 문제 삼아 ‘자질론’을 들먹였던 것도 이런 과도기에서 빚어진 혼란이라고 생각된다. 대통령 자신이 미숙한 측면도 있었지만, 과거 지도자들의 수사(Rhetoric)없는 언변에 익숙해 있는 사람들이 지나치게 수사에만 집착해서 편협하게 평가하는 경향이 많았음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언어는 인간을 지배한다. 이 말이 의미하는 바는 언어가 있어야 우리 인간의 사유가 가능하며, 사유가 있고 나서야 비로소 구체적 행동에로 나아갈 수 있다는 것이다. 또한 어떤 언어를 쓰느냐에 따라 세계관과 가치관도 달라질 수 있다는 의미도 함축하고 있다. 그래서 인간을 언어적 존재라고 하는 것이며, 인간은 언어에 구속되어 있다고 말하는 것이다.

인간 사회는 숱한 관계들로 이루어진다. 따라서 인간 사회는 상호 조종과 조작의 관계의 총체라고 말할 수 있다. 인간의 언어적 존재성이 특히 부각되는 지점이다. 상호 조종과 조작은 직접적·물리적 수단을 통해서 이루어질 수도 있다. 그러나 그것은 원초적이고 저급하며 일시적 수준의 관계에 머물 뿐이다. 반면 언어에 의한 상호 조작과 조종은 근본적이며 영속적인 특성을 지닌다.

우리나라의 경우는 유교적 전통이 강하게 남아 있어 해방 이후 수십 년 동안 권위주의 체제가 지탱되어 오면서 언어도 그에 맞게 경직되어 왔다. 외양으로는 민주주의를 표방했지만 그에 걸맞는 토론 문화가 부족했고 상층부에서 일방적으로 하달하는 일방통행식 언어문화가 사회 전반을 지배하였다.

지도자의 덕목으로는 다양한 의견을 수렴하고 통합하는 능력보다는 과묵하고 한두 마디로 교시를 내리듯 지시하는 과단성이 더 중시되었다. 이러한 문화가 계속해서 진행된 상황에서 민주화로 일거에 바뀔 수는 없는 것이다. 특히 국민의 지도자인 국회의원의 말은 그 자체가 살아있는 생명체나 다름없기 때문에 신중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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