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여백
HOME 오피니언 칼럼
[금요광장] 현대판 지록위마, 부끄러움!이영재 경북대 교수
 
 
 
이영재 경북대 교수

그저께 이번 겨울 처음으로 한파주위보가 예보 되었다. 때마침 경기도 백석역에서 노후화된 지하열 수송관의 파열로 인근 아파트 주민들은 온수 공급이 차단되어 큰 고통 속에 밤을 지새웠다는 뉴스가 보도 되었다.

최근 모지상파 방송의 역사 관련 프로그램이 관심을 끌고 있다. 100년쯤의 역사에서 새로운 사실이 충격을 자아낸다. 지록위마(指鹿爲馬)란 고사성어는‘진나라 시황제가 죽자 측근 환관인 조고는 조서를 조작하여 태자부소를 죽이고 어린 호해를 황제로 삼아 쾌락에 빠지게 하였다. 어리석은 호해를 교묘히 조종하여 많은 구신들을 죽이고 승상이 되어 실권을 장악하자 역심이 생긴 조고는 중신들 가운데 자기를 반대하는 사람을 가려내기 위해 호해 앞에서 사슴을 바치면서 이게 말 인데 어떻소? 하여 반대파를 농간하여 숙청시킨 사건에서 유래되었다.

러일전쟁은 1904∼1905년 만주와 한국의 지배권을 두고 러시아와 일본이 벌인 제국주의 전쟁이다. 청일전쟁 결과로 일본이 요동반도 영유를 확정하였다. 이에 러시아는 삼국간섭을 주도함으로써 이를 좌절시키고 일본에 대항하기 위한 러·청비밀동맹을 체결함과 아울러 동청철도부설권을 획득하였다. 그러나 일본은 전쟁만 승리한다고 요동반도를 얻는 게 아니고 물밑에서 서구 열강들과 외교 교섭의 필요성을 터득하고 있던 시대였다.

당시 독일도 자오저우만 조차를 계기로 1898년 여순과 대련을 25년간,또한 만주까지 세력권화하려 하였다. 한국에서도 을미사변 이후 4개월 만에 아관파천을 성공시켜 친러정권이 수립되기는 하였지만, 러시아는 시베리아 철도가 완성될 때까지는 일본과의 타협을 우선시하는 정책을 폈다.

그러나 북중국에서 일어난 의화단란이 만주로 파급되자 러시아는 동청철도를 보호한다는 구실을 내세워 만주를 무력 점령하고 난이 진압된 뒤에도 철수를 거부하였다. 이에 대해 일본에서는 결국 1902년 1월 영일동맹이 체결하였다.

1903년 8월부터 개전전 까지 양국은 수 차례 한국과 만주 문제에 관하여 공식적인 교섭을 가졌다. 일본의 기본입장은 한국을 자국의 보호령으로 하는 대신, 만주에서 러시아의 우월권은 인정하되, 기회균등원칙이 지켜져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때 러시아는 자국의 만주독점권과 중립지대 설정 및 한국령의 전략적 사용불가 입장을 고수하였다. 이러한 틈바구니 속에서 현대판 지록위마라 할 수 있는 이야기가 있다.

러·일 전쟁 일년전에 대한제국은 외세에 의존하지 않고 황제가 자주적인 국방력 강화 등 광무개혁의 일환으로 조선군대의 현대화를 위해 1903년 일본으로부터 군함 1척을 정부 예산 10%라는 거금으로 구입하였다. 그런데 그 군함은 실제로 군함이 아니고 일본이 1894년 영국으로부터 25만엔에 구입한 증기화물선이었다.

이 화물선은 9년 동안 사용한 후 배위에 대포만을 정착한 후 군함으로 둔갑시켜 구입 때보다 더 큰 이익을 남긴 55만엔에 판매하였다. 군함과 화물선의 기능이 같은 것 맞나요.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많은 것이 시사되는 사건이었다.

이 같은 사례는 소위 현대판 ‘지록위마’와 다를 것이 무엇인가! 당시 일본은 러일전쟁 준비로 전비예산이 턱없이 부족하였고 대한제국은 열강 틈바구니에서‘풍전등화’같은 운명이었다. 당시 국제 정세는 강대국들이 힘이 약한 국가들을 식민지화하는 각축장이 연출되는 시대였다.

힘이 부족해서 당한 비극이나 부끄러움을 지금 흥분하는 것은 부질 없는 짓이다. 정작 지금도 부끄러운 역사는 끝나지 않았기 때문에 미래를 위한 지혜와 힘만이 필요한 때이다. 정직하고 규정대로 나보다는 우리라는 공익적 자세를 우선으로 이 시대 우리가 쟁취해야할 과업인 것이다.

반칙과 편법은 잠시 편리하리다. 영원한 행복은 역사의 마지막 교훈이다. 강도 높은 자기 관리와 피나는 노력으로 미래를 준비하는 자세뿐이리라! 현대판 “지록위마”이야기는 우리들이 새겨 들어야하는 부끄러움이다.

이러한 웃지못할 사례를 보면서 남을 탓하는 것은 배부른 작태인 것이다. 잘못을 반복않기 위함이 곧 국제 정세의 분석과 대비에서 나오는 것이다. 나라의 기본은 국방과 외교력이 강성해야 한다. 국가 존립의 기본적인 가치를 근대사에서 절실히 깨닫게 하고 있다. 100년 전의 사실임을 깊이 헤아려야 한다. 오로지 자주국가의 기본은 힘을 가진 국가만이 평화를 부르짖을 자격이 있음을 냉혹한 역사는 지금도 반복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대경일보  webmaster@dkilbo.com

<저작권자 © 대경일보,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대경일보의 다른기사 보기
icon인기기사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여백
여백
여백
여백
여백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