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정욱 건강증진의원장

침묵의 장기로 불리는 간. 이러한 이유로 특별한 증상이 없어 정기적인 검진을 받지 않다가 우연한 기회에 건강검진을 받았는데 검진 당시에 이미 간암이 진행되어 완치가 불가능한 상태에서 진단되는 경우가 많다. 이와 같이 간암은 ‘특별히 의심할 만한 임상 증상이 없다는 것’이 특징이다.

간의 위치는 복강 내의 우측상부에 있으며 크기는 성인의 경우 약 1000~1500g 정도이다. 간의 기능은 크게 네 가지로 요약될 수 있다. 첫째는 신체 에너지 대사의 중요한 중추기관이고 둘째는 우리 몸에서 필요한 많은 양의 단백질, 효소, 비타민을 합성하는 기능을 하며 셋째로 우리 몸에 해로운 영향을 미치는 여러 물질의 해독작용에 관여하고 마지막으로 인체의 면역방어기전에 중요한 작용을 한다. 보통의 장기들이 기능적으로나 구조적으로 이상이 있으면 대부분 즉시 증상이 나타나는 데 반해서 간은 유독 많은 일을 하면서도 말기 간경변이 오기 전까지 증상이 나타나지 않는 경우가 많다. 간암이 생겨도 다른 장기와 같이 통증이 심하지 않기 때문에 침묵의 장기라고 알려져 있다.

물론 정상 간에서도 간암이 생길 수는 있지만 대부분의 경우 여러 가지 원인에 의해서 장기간 지속적으로 간세포 손상이 오면 간이 점차 굳어지면서 간에 다양한 크기의 재생결절들이 생기는데, 그 중 일부가 비정상적으로 악성변화를 하여 간 내 전이를 하거나 간 외 전이를 하면서 간암이 발생된다. 간암과 같이 동반된 간염이나 간경화는 간세포를 적어지게 하여 단백질 합성이나 해독작용 등의 간 기능 장애를 유발하며, 간 내 혈액순환이 어려워져 간문맥압이 증가하고 이로 인해 복수, 간성혼수 등 여러 합병증이 동반되는 질병이다. 많은 환자에서 간암과 간경화가 동반되기 때문에 치료가 쉽지 않은 암이다.

간염은 크게 급성 간염과 만성 간염으로 구별하는데, 급성 간염은 한동안 유행했던 A형 간염 바이러스가 대표적이다. 이러한 급성 간염은 때로는 매우 빠른 시간 내에 간 기능이 심하게 손상되는 전격성 간부전으로 진행하는 경우도 있지만 이러한 경우는 매우 드물고 대부분은 저절로 완치되어서 후유증을 전혀 남기지 않는 경우가 많으며 간암과는 별 관계가 없다. 이에 비해서 만성 간염은 오랫동안 간이 지속적으로 손상되어 후유증을 남기는 경우인데 B형 간염, C형 간염 바이러스와 알코올 간질환이 가장 흔한 원인이다. 이러한 만성 간염은 간경변과 간암을 잘 유발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B형 간염도 심각하지만 최근에는 C형 간염에 대한 약물개발이 활발해지면서 관심이 많아지고 있는데, C형 간염의 경우는 15~50% 정도가 수십 년에 걸쳐서 간경화를 유발하고 이러한 간경화에서 간암은 연간 1~5% 정도 생긴다. 의학교과서에는 대개 30% 정도의 환자가 간경변증으로 진행한다고 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그 빈도가 더 높아서 20년 동안에 만성 B형 간염 환자의 60%가 간경변증으로 진행하며, 만성C형 간염도 이와 비슷하다. 그리고 간염의 정도가 심하거나 자주 악화와 호전을 반복하는 경우에는 간경변증으로의 이행 위험이 더 큰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 외에 간암이 발생할 수 있는 전구 질환 중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비 알코올성 지방간은 간세포 손상의 정도에 따라 여러 단계로 나눌 수 있다. 즉, 지방만 끼어있는 가벼운 단순 지방간, 간세포 손상이 심하고 지속되는 지방간염, 복수나 황달을 동반하는 진행된 간경변증까지 병의 정도는 매우 다양할 수 있다. 초기 단계의 비 알코올성 지방간은 적당한 운동과 체중관리를 하면 정상으로 회복될 수 있으나 관리를 하지 않으면 약 1%에서 많은 경우 3%까지 간 경변으로 진행하고 간암으로도 발전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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