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존엄사 문제가 새삼 화두가 되고 있다. 1997년 12월 4일 서울 보라매 병원, 뇌를 다친 환자 한 명이 수술 뒤 중환자실에서 인공호흡기에 의존해서 생명을 유지하고 있었다. 환자의 부인은 의사로부터 치료 도중 사망하거나 식물인간이 될 가능성이 대단히 높다는 점을 설명을 들었다. 그러나 그 부인은 치료비를 감당할 수 없다는 등의 이유로 퇴원을 강력히 요구했다. 담당 의사는 퇴원하면 곧 사망한다는 점을 주지시켰지만 허사였다. 퇴원 후 환자는 인공호흡기를 뗀 뒤 5분 만에 사망했다. 법원은 담당 의사에 대해 살인 방조죄를 적용하였다.

이 환자의 죽음을 전문적 용어로는 소극적 안락사라고 하는데, 이에 대한 법원의 판단을 두고 의료계에서는 현실을 무시한 판결이라고 반발하고 있다. 중증 환자의 경우 환자나 보호자가 원하면 퇴원을 허락함으로써 결과적으로 환자가 숨지게 하는 것이 우리나라 의료계의 관행이었다고 한다.

안락사의 인정 여부는 현대 과학기술 문명의 발달로 인해 인류가 맞닥뜨리고 있는 어려운 문제다. 만약 의료 기술과 지식이 한 세대 전 수준이었다면, 안락사는 거의 문제가 되지 않았을 것이다. 오늘날 미국의 경우 사망자의 80%가 병원에서 죽음을 맞는다고 한다. 또 말기 환자 중 상당수는 자신이 어느 곳에 있는지조차 모른 채 병원에서 죽어간다고 한다. 정확한 통계는 알 수 없지만, 우리나라의 경우도 고령화와 의료 서비스의 확대로 병원에서 죽음을 맞이하는 사람의 수가 점차 늘어나고 있다. 이는 위 사건과 유사한 사례가 현재는 물론이고 앞으로도 더욱 늘어날 수 있음을 의미한다. 의료 기술의 발달이 평균 수명의 연장과 건강한 삶에 기여하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현재까지, 그리고 가까운 장래의 기술이 인간의 늙음과 질병 그리고 죽음을 돌이킬 수 없다는 점 또한 분명하다. 여전히 인간의 능력 밖에 놓여 있는 불치의 병이 존재하며, 평균 수명은 늘어가고 있지만 의식을 상실하고 의료 기기의 도움 없이는 단 며칠도 생존할 수 없는 환자도 점차 늘어가고 있다. 병원에서는 일단 환자가 입원하면 환자의 상태나 질병의 종류를 가리지 않고 공격적으로 치료하지만 결국 무위로 그치는 경우가 오히려 늘어가는 것이 현재의 실정이다.

미국 오리건 주는 환자의 병증이 말기에 이르러 적극적인 치료보다는 인간적이고 징후에 따른 병구완이 필요한 경우에는 호스피스를 통해 간호하는 보건 제도를 실시하고 있다. 이는 불치의 질병에 걸린 환자를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의 문제를 개인적 차원이 아니라 사회적 차원에서 접근하고 있는, 삶과 죽음에 대한 새로운 통찰을 담고 있는 제도다. 존엄사의 문제, 우리사회에 맞춰 법도 변화가 필요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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