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재일 수필가

하늘이 뿌옇다. 안개가 잦은 지역인데 미세먼지와 겹쳐서 더 그렇다. 청명한 날에도 가시거리가 짧아져서 우중충한 느낌이 든다. 연기와 안개가 결합하여 스모그를 만든다는데 안개가 미세먼지와 결합하면 어떻게 될까. 중국에서는 흙눈도 내렸다는데 우리나라도 그리될까 두렵다.

요즘 미세먼지가 기승을 부리고 있다. 예전에 봄에만 있던 황사가 이제는 겨울에도 오고 있다. 옛중국의 시인이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이라며 봄이 와도 봄같지 않음을 한탄하였다는데 이제는 봄이 아닌데도 봄의 나쁜 현상에 고생하고 있다. 이런 것도 기후변화로 볼 수 있는지 모르겠다.

미세먼지에서 가장 확실한 해방은 비올 때이다. 내리는 비에 먼지가 말끔히 씻겨나간다. 이제 “비온 뒤 땅 굳는다”는 속담이 “비온 뒤 미세먼지 없어진다”로 바뀌게 될 듯 하다.

그런데 계절 탓인지 비가 그친 뒤에는 강추위가 온다는 뉴스가 뜬다. 춥지 않는 날이면 어김없이 미세먼지가 우리를 괴롭힌다. 그래서 삼한사온에 빗대어 삼한사미(三寒四微)라는 신조어가 생겼는데 겨울철에 3일은 춥고 4일 미세먼지가 생긴다는 말이다. 이래저래 서민들은 안심하고 살 수 없다.

미세먼지는 우리로서는 어떻게 할 방법이 없다는데 심각성이 있다. 미세먼지를 줄이기 위해 대중교통을 이용하라거나 낡은 경유차 운행을 자제하라는 식의 말을 하는데 그런다고 줄어들 것 같지 않다. 국산보다 중국발 미세먼지가 훨씬 많다. 바람을 타고 서해안을 건너서 온다고 한다.

학창시절 우연히 봄에 중국에서 하늬바람(서풍)을 타고 날아오는 (벼)멸구를 잡아먹기 위해 몰려드는 생선을 멸치라고 불렀다는 글을 읽고 저런 작은 벌레가 어떻게 바다를 건너는지 놀랐는데 이제보니 멸구보다 훨씬 작은 먼지도 바다를 건넌다.

중국에서 가까운 서해안은 그래도 이해가 되는데 동쪽인 경상도 지역까지 미세먼지가 날아온다는 사실은 더 놀랍다. 공장의 매연은 공단에서 떨어진 곳으로 가면 해결되는데 미세먼지는 전국으로 퍼지기 때문에 이제는 청정지역이 없고 모든 지역이 오염지역이 되었다.

미세먼지 때문에 생활상도 많이 변했다. 사람들이 외출을 자제하고 실내생활을 많이 해서 운동부족이 걱정된다. 외출시에도 그냥 외출을 할 수 없다. 길에는 복면같은 이상한 마스크를 쓰고 다니는 사람들도 보인다.

집안의 공기가 탁해도 창문을 열고 환기하기도 겁이 난다. 공기청정기 사용 등 각자 해결을 한다. 열린 사회를 지향하지만 창문은 닫는 현실이 아이러니 같다. 이제 남과 어울리지 않는 폐쇄적인 사고가 더욱 심해질 것이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고 했는데 내가 어릴 때부터 지금까지 몇 십 년 동안 세상은 많이도 변했다. 산천과 함께 공기까지 변했다. 앞으로 어른들이 어린 시절을 이야기 하면서 옛날에는 마스크 없이도 외출할 수 있었다고 자랑스럽게 이야기를 할 것 같다.

그러고 보니 그동안 우리가 아무 생각없이 쓰는 것들이 그냥 보장된 것이 아니었다. 남용하면 안 되는 것이었다. 소중함을 알고 아껴쓰는 것이 필요하다. 과거에 그냥 주어졌던 자유재가 대가를 주고 구입하는 경제재(經濟財)로 변신하였기 때문이다.

몇 십 년 전 시중에 처음으로 정수기가 나왔을 때 이제는 물마저도 사서 마셔야 되느냐고 한탄했던 기억이 있다. 그런데 이제는 물에 이어 공기까지 함부로 마셔서는 안되는 시대다. 가난한 사람은 숨도 함부로 쉴 수 없는 숨막히는 시절이다. 다음은 무엇이 문제가 될 것인가.

시대가 바뀌면서 새로운 것들이 오는 만큼이나 과거에 보장된 것들이 하나 둘씩 사라지는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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