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지원 수필가

팔미도가 점점 가까워진다. 난생 처음 찾아가는 섬, 그곳에 115년 전 처음으로 불을 밝힌 우리나라 최초의 등대가 있다. 나는 지금 그곳으로 가고 있다.
등대여권을 받고 등대를 찾아 나서기로 한 것은 2017년 겨울 무렵이었다. 우선 내가 사는 곳 가까이에 있는 울기등대를 비롯해 몇 군데 등대는 이미 다녀왔다.

동해안에 있는 등대들은 내륙에 접해 있어 비교적 찾아가기가 쉽다. 한 겨울 혹한을 견디면서 날 풀리면 서해안을 돌기로 마음을 먹었고, 그 첫 번째로 찾은 곳이 서해 팔미도등대다. 나의 등대 순례는 이곳을 시작점으로 삼으려 한다.
팔미도에 닿았다. 배에서 내리자 맞선이라도 보는 것처럼 가슴이 두근거린다. 미지의 땅에 첫발을 디뎠을 때처럼 긴장과 흥분이 교차한다. 섬의 이름은 하늘에서 내려다 봤을 때 여덟팔자八尾의 꼬리를 닮았다 하여 붙여졌다.

1903년. 처음으로 불을 밝힌 팔미도등대는 백 년 동안의 소임을 끝내고 지금은 인천광역시 유형문화재로 지정되어 안식에 들었다. 2003년에 신 등대가 지어졌기 때문이다. 세월은 가고 오는 것, 한국전쟁의 인천상륙작전 당시 상륙함대의 이정표 역할을 했으며, 서해를 오가는 수많은 뱃길을 밝혔던, 그 시간이 고스란히 스며든 등대, 백 년을 오롯이 바닷길을 비춘 등대다. 고단한 서해의 풍파를 견뎌낸 등대다. 마음이 한결 같지 못해 늘 갈등하는 나는 그 앞에 서니 절로 숙연해진다.
구 등대보다 높은 자리, 더 높이 솟아 있는 신 등대 안으로 들어간다. 아담한 공간 유리벽에 여러 지역의 등대 사진이 바다를 배경으로 전시돼있다. 바닥에는 우리나라 지도가 그려져 있어 이채롭다. 내가 지금 있는 곳을 찾아본다. 떠나온 곳에서 꽤 멀리 와 있다는 것이 실감난다.

3층에서 등대여권에 스탬프를 찍고 책이 꽂혀 있는 등대도서관에 가져간 졸저 '무종'을 꽂아두고 나왔다.
마지막으로 올라간 전망대에서 서해를 본다. 사방으로 펼쳐진 바다는 지금, 너무나 아름답고 평화롭지만 동해나 남해와는 사뭇 다른 느낌이다. 이곳은 부산보다 중국이 더 가깝고 북한이 가까워서인가, 묘한 긴장이 흐르는 것도 같다.

유람선을 함께 타고 온 사람들의 표정이 봄볕처럼 화사하다. 저들은 이곳에서 무엇을 느끼고 있을까. 나처럼 희망의 씨앗 하나 품고 가려고 왔을까. 겨울을 털어내고 봄 마중 나온 것일까. 아무렴 어떠랴. 사람의 삶이 거창한 것 같아도 결코 그렇지 않다는 것을 이즘의 나는 시시때때로 느낀다. 즐길 수 있을 때 즐기며 마음먹었을 때는 미루지 말 일이다.

우리나라 아름다운 등대 열다섯 곳을 찾아 떠나는 여정, 나로서는 녹록지 않은 행보이다. 하지만 힘들기에 더 해보고 싶은 간절함이 있다. 간절함은 때로 많은 것을 가능하게 한다. 그 간절함으로 모험은 시작되었다.
오래된 등대 앞에 다시 선다. 이 순례 길이 무탈할 수 있도록 간절함을 담아 마음을 모은다. 작은 섬 한 바퀴를 돌고 나자 그새 떠날 시간이 되었다. 파란 하늘 위로 갈매기 한 마리 희망의 깃발처럼 높이 날아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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