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혜주 수필가

봉구네 늙은 감나무에 홍시가 매달려 있다. 이파리 하나 없이 낙엽으로 날려 보내고 쭈그렁밤탱이가 되어 눈송이에도 나약하게 흔들린다. 단맛의 농축된 무게만큼 일생을 보내고 쌓인 눈 속에 편히 잠들 수 있는 겨울기도라도 하는 듯 초연하다. 하늘과 땅 사이 허공에서 바람과 추위를 피하기보다는 견디는 홍시의 저 외로운 생명력. 누구를 위한 견딤일까. 가난한 계절을 나는 까치를 위함일까. 아니면 감나무의 생명력을 모아 먼 세상의 감흥을 꿈꾸는 걸까. 한 생의 끝자락에서 이제는 내일을 기약할 수 없는 무게에 흔들리기만 하는 홍시가 차마 가년스럽다.

겨울의 초입. 첫눈이 내렸다. 한차례 한파도 휩쓸고 지나갔다. 하늘이 내려준 하얀 옷을 입고 황홀하게 침묵하던 빈들도, 회색빛 숲도 모두가 파리해져 있다. 겨울은 슬프고도 아름다운 계절이다. 눈이 내리는 것처럼 슬퍼지고 성에가 서리는 것처럼 무겁게 눈앞이 흐려지기도 한다. 스스로의 온기로 견디는 계절이다. 바람으로 바람을 견디고, 추위로 추위를 견디며 봄을 꿈꾸는 계절이다.

올해도 이른 봄, 봉구네 감나무는 흐드러지게 꽃송이를 달았다. 나무밑동에 두둑하게 쌓아 올린 퇴비 탓이었을까. 일찍이 풍작을 예감했었다. 우드득 우드득 이웃집 스레트 지붕위로 우박처럼 떨어지는 감꽃에 봉구할머니의 입이 벙글었다. 내년에 초등학교에 들어가는 봉구의 새 가방이, 새 신발이 감나무 가지에 매달려 반짝이는 듯 했다. 마침내 가을이 되자 감나무는 할머니의 정성에 보답이라도 하듯 때깔 좋고 실한 감들로 마당 가득 단내를 풍겼다. 장대를 바투 쥔 할머니의 손길이 바빠지기 시작했다.

시내 미장원으로 출근하는 봉구어머니의 차 트렁크가 묵직하다. 까만 봉지마다 감이 실리고, 텃밭의 풋것들이 순서 없이 실리고, 할머니가 직접 키우고 말린 엿기름이 실렸다. 그리고 아비 없이 자라는 봉구 위한 할머니의 애틋한 기도도 실렸다. “아야. 그저 후딱 줘 삐라.” 대문을 나서는 며느리를 향해 오늘도 할머니는 똑 같은 말로 배웅한다.

도심의 좁은 골목길 미장원 앞에 난전이 섰다. 봉구네 텃밭이 옮겨온 듯, 죄다 봉구 어머니가 트렁크에서 내린 것들이다. 하얀 아랫도리 속살을 흙으로 가린 튼실한 무가, 다시 텃밭으로 달려갈듯 펄펄 살아 숨 쉬는 속 찬 배추가, 잘 틔운 엿기름이, 울퉁불퉁한 호박에 매끈한 피부 자랑하는 박이 좌판에 늘어서 있다. 생산자는 봉구할머니고 판매자는 미장원 사람들이다. 따로 써 붙여 논 가격표는 없다. 동네 사람들 대부분이 아는 가격이고 오랫동안 묵인 된 정해진 가격이다. 행여 지나가는 이들이 기웃거리면 누구라도 팔아 빨간 플라스틱 바구니에 돈을 담아둔다. 감 한 봉지 삼천 원, 무 한 개 천원, 배추 세포기 이천 원, 크기에 따라 박과 호박은 천원에서 삼천 원 사이다. 이렇듯 봉구어머니의 미장원 앞 난전 풍경이 제철 야채와 과일로 한 차례 돌면 해가 바뀐다. 그리고 유복자 봉구도 한 살씩 먹었다.

봉구할머니 이천 댁이 막내 아들집으로 거처를 옮긴 건 순전히 봉구 때문이었다. 결혼한 이듬해. 만삭의 며느리를 두고 세상을 떠난 막내아들의 빈자리를 대신 하기 위해서였다. 미장원 일을 하는 며느리를 대신해 어린 봉구를 받아 키우는 내내 할머니의 목은 마를 대로 말랐다. 막내아들을 잃은 슬픔과 그로 인해 품에 안은 봉구라는 또 다른 존재의 무한한 기쁨. 어느 날 문득 자리를 바꿔 앉은 슬픔과 기쁨으로 봉구 할머니의 남은 생은 여윈 가지에 매달려 불안하게 흔들리는 홍시 같은 삶이 되고 말았다. 그것은 때로는 기쁘게, 때로는 슬프게 끊임없이 무슨 일이 벌어지는 삶의 본질을 어쩌지 못하는 미약한 인간의 삶이기 때문이었다.

오늘 난전 수입은 만 팔천 원. 웰빙 바람을 타고 다이어트에 좋다는 박이 수입의 효자노릇을 했다. ‘봉구가 학교 들어가면 돈이 얼메나 드는데.’ 하시며 퇴근한 며느리가 건네는 꼬깃꼬깃한 지폐를 펴 요대기 밑으로 쌓아 넣는다. 잘 자라는 봉구를 대견해하면서도 한편으로는 한 푼이라도 더 보태고픈 할머니의 마음은 무겁기만 하다. 봉구가 살아가야 할 내일이라는 무게 때문이다.

삶이 팍팍하다. 모두가 춥고 어두운 터널을 지나듯 겨울을 나고 있다. 겨울은 계절만을 뜻하지는 않는다. 어렵고 힘든 삶의 시기를 지나는 모든 시간이 겨울의 한 복판인 셈이다. 그러나 그 가혹한 겨울도 남을 헤아리고 자신이 가진 소박한 것에 감사하는 계절이다. 지나간 한 해를 안도하고 다가올 내일의 무게를 점치며 조용히 묵상하는 시간이기도 하다. ‘여기는 어디고, 우리는 무엇이며,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라고 물으면 고요히 머리 숙이고 생각에 잠기는 계절이다. 내일은 덜 아팠으면, 내일은 좀 덜 무거웠으면 하고 희망하는 계절이기도 하다.

기쁨과 슬픔으로 뒤엉켰던 한 해의 세상살이도 끝나고 새 해다. 묵은해와 이별을 한다는 것은, 한 해 동안의 기쁨과 슬픔을 기억의 땅으로 옮겨놓는 것을 의미 한다. 시간은 강물처럼 흐르고 버림을 실감하기도 전인데 다시 일 년 중 가장 잰걸음으로 가는 1월을 맞아 우리는 다시 질주하는 변화 앞에 맨몸으로 맞서고 있다. 누가 만들었는지, 어디서 불어오는지도 모를 변화 앞에서 다가올 내일의 무게에 다시 노심초사하게 된다. 그러나 꽃 곁에 있으면 향기가 묻고, 햇살 곁에 있으면 온기가 전해지기 마련이다. 봉구할머니의 요대기 밑에 작은 희망이 있듯, 내일이라는 무게에 맞서 희망에 새살이 차오르는 느낌을 받게 심장이 부서지도록 뛰어보자. 그러면 그 느낌은 마음 한 귀퉁이에서 사라지지 않고 어느 방향으로든 희망으로 나아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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