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혜주 수필가

그럴 때가 있다. 약속을 하고 기다리는데 그 누군가는 아직 자신과의 약속을 이행하지 않고 있다. 나는 그 약속을 지키기 위해 고통을 마다 않고 인내하며 노력하는데 언제 온다는 암시 같은 조짐도 없다. 심지어 안개 속에서 정체조차 나타내지 않고 있다. 그러다 어느 순간, 그 누군가가 자신과 한 약속조차 까맣게 잊고 있을 거라는 막연한 불안감이 엄습해 온다. ‘이대로 괜찮은가.’ 라는 질문을 수없이 던지며 새까맣게 속을 태운다. 때로는 ‘분명 올 거라는’ 간절한 기도와 ‘혹시나’ 하는 방해하는 기도로 뒤엉켜 혼란스럽기도 한다. 그렇지만 온몸으로 견디며 기다린다. 기다린다는 것은 인류를 존속시켜 온 힘이다. 인간의 존재 조건이기도 하다. 그래서 우리는 기다린다.

한 남자가 있다. 남자는 단련된 육체와 정신으로 무장하고 일찍이 취업전선에 뛰어들었다. 꿈도 야망도 컸다. 의욕과 열정도 넘쳐 승진도 남보다 한 발 앞섰다. 그러나 위로 올라갈수록 거대한 조직생활에서의 부조리와 불화하기 시작했다.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할까.’ ‘어떻게 살아야 할까.’ 로 갈등한다. 그리고 마침내 그 궁극적인 질문이 삶의 본질에 맞닿아 있음을 알고는 과감히 사표를 쓴다.

회사를 위해 쏟아 부었던 삼십년 열정이라면 성공 못할 게 없었다. 패기와 자신감으로 무서울 것도 없었다. 사업체를 꾸려 처자식을 호강 시켜 주리라는 자신도 있었다. 그러나 미로 같은 또 다른 인생길은 호락호락 그에게 탄탄대로만 허락하지 않았다. 준비 없이 패기와 자신감만으로 들어선 사업의 길은 한걸음 달려가면 막다른 골목에서 두 걸음 물러서기가 예사였다. 그런 일이 반복되자 가정이 해체되고 가족이 뿔뿔이 흩어졌다. 그러나 남자는 세상엔 해서는 안 되는 일이 있다는 것을 알아채지 못한다. 실패를 거듭하면서도 매일 이 같은 상황과 마주 하며 그날을 기다린다. 남자가 기다리는 그날의 의미는 무엇일까. 분명 그 무언가를 추구하지만 정확히 실체가 무엇이고 왜 추구하는지 알지 못한 채 하루와 사투를 벌일 뿐이다.

청년은 인생의 반전을 꽤하고 있다. 남들보다 근사한 미래의 삶을 꿈꾸고 있다. 멋지고 폼 나는 삶의 설계도를 그려 놓고 실행 중이다. 별 어려움 없이 대학을 졸업하고 대기업에 다닐 때만 해도 그런대로 그 꿈에 한 발 다가가는 줄 알았다. 그러나 변화무상한 사회생활에 그는 곧 답답함과 불안을 느끼기 시작했다. 아침엔 뚜벅뚜벅 걷다가 저녁엔 비틀거리는 자신에 조금씩 지쳐갔다. ‘어디서부터 잘된 것인지’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인지도’ 찾아내기조차 힘들어지자 조급해지기 시작했다. 마침내 청년은 아까운 시간을 흘려보낼 일이 아니라 구출해 내리라 결단을 내린다. 좀 더 안정되고 넓은 세상으로의 탈출을 과감히 감행했다. 반 년 만에 사표를 내던지고 고시원에 들어가 공무원 시험을 시작했다. 그리고 고도를 기다리며 곧 그 기다림에 익숙해졌다.

그러나 금방 손에 잡힐 듯한 청년의 꿈은 지금도 망망대해 표류중이다. 노도 없는 돛단배에 올라 길을 찾아 헤매고 있다. 산다는 건 결국 팽팽한 공포라는 걸 어렴풋이 깨닫지만 그가 지향하는 미래의 삶을 위해 기다린다. ‘이대로 괜찮은가.’ 라는 질문을 던져보지만 답은 즉시 나오지 않는다. 결국 청년의 그 지루한 기다림이 뜨거움과 떨림으로 내 안의 영혼을 만나는 개념이고, 그로인해 꿈을 이루리라는 굳은 믿음인 셈이다.

어느 한적한 시골길. 앙상한 한 그루 나무가 서 있고 두 사람이 대화를 한다. 둘은 고도를 기다린다. 그런데 아무도 고도가 누구인지, 언제 오는지 모른다. 다만 기다릴 뿐이다. 기다린다는 사실만 명확하다. 프랑스 극작가 사뮈엘 베케트가 1952년에 발표한 ‘고도를 기다리며‘ 다. 고도가 올 때까지 죽지도 살지도 못하는 인간의 근원적인 상황을 상징하고 있다. 오늘날 답답한 현실과 부조리한 사회에 지친 우리의 삶과 놀랍도록 닮은 설정이다.

도심이 황량하다. 찾는 이 없으니 가게마다 문을 닫았다. 사람들의 심리도 얼어붙었다. 경제는 심리라고 한다. 인심은 곳간에서 나온다고 하는데 곳간이 비어가니 사람들의 마음도 날카로워져 간다. 언제 올지 모르는 고도를 기다리며 어떤 대상을 향해 탓하고 분노하며 갈등하기도 한다. 봄이 오면 경제도, 살림살이도 나아지리라는 기대감으로 그날을 기다리지만 우리의 고도 역시 어떤 한 사람의 구원자나 봄이 될 수는 없다. 안타깝게도 현실에서는 그 누구도 나의 고도, 우리의 고도가 될 수 없기 때문이다. 힘든 이 상황을 해결하고 구원해줄 단 한사람의 의존자란 없다. 우리가 기다리는 고도는 결국 우리 자신이기 때문이다.

습관의 관성은 참 무섭다. 시작은 생각이다. 좋은 생각은 좋은 행동으로, 좋은 행동은 좋은 습관이 된다. 건전한 사회를 바꾸는 힘의 원동력이 되기도 한다. 그리고 습관은 운명으로 연결된다. 선순환의 고리다. 인간이라면 누구든 존엄하고 누구든 원하는 그 무엇이 될 수 있기에 사랑하는 누군가를 지킬 지혜와 용기만 있다면 우리 모두는 자신의 고도다. 오늘날, 남자와 청년이 기다리는 고도가 그들의 간절한 바람이고 믿음이라면. 우리 모두는 그 무엇이 될 수 있다는 자신의 고도가 되어야만 가정도, 사회도 아름다운 구원을 실현할 수 있다.
저작권자 © 대경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