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혜주 수필가

때로는 느낌으로 더 선명할 때가 있다. 표정이나 눈빛 같은 비언어적 표현으로 와 닿는 느낌이다. 예술가들의 창작 모티브가 되기도. 기업의 리드는 자신만의 그런 감으로 굵직한 결정을 내리기도 한다. 그 중에서도 나는 마음의 심연을 잠수함처럼 들여다볼 수 있는 누군가의 눈빛 언어에 설렌다.

자기 자신도 모르는 가슴 깊은 곳에 있는 나를 표출하는 눈빛. 서늘한 눈빛에는 지구의 내부를 들여다보는 것 같은 두려움을, 그렁그렁한 눈빛에는 슬픔을 함께 하는 마음을, 반짝반짝 빛나는 맑고 청아한 눈빛에는 주체할 수 없는 사랑스러움을, 부드럽고 단아한 눈빛에는 무한한 신뢰의 마음이 드는 건 인지상정이리라. 또한 인간적인 배려의 따뜻한 눈빛과 너그럽고 온화한 어머니의 눈빛은 어떤가. 곁에만 있어도 위로가 되는 세상에 유일한 내편인 그 눈빛은 평생 ’사랑 한다. 괜찮다.‘ 라는 말을 대신하고 있는 듯하다. 때론 우리는 사람이 사람에게 보내는 가장 진솔한 그 눈빛언어에 사랑을 느끼기도, 인간의 선량함에 대한 믿음을 가지기도 한다.
며칠 아팠다 일어났다는 민자씨의 눈동자가 심하게 흔들리고 있다. 나를 버린 파도를 그리워하며 숭숭 구멍 뚫린 뻘 같은 그리움의 눈빛이다. 그녀를 햇볕에 갈라진 뻘처럼 버려둔 채 멀리 가버린 파도는 다름 아닌 자식들이었다. 약속이나 한 듯, 자식 셋이 아무도 오지 않는 설 명절에 상념이 깊었던 모양이다. 온통 설레며 기다림으로만 기울었을 마음에 물결무늬 새겨진 그리움이란 뻘만 남았으리. 왜 아니겠는가. 가버린 파도는 늘 야속하고 푸르듯, 멀어질수록 그리워지는 게 혈육의 정인 것을.

그런 민자씨 곁을 지키는 유일한 이가 석이네다. 팔순의 민자씨와 이순의 석이네가 일주일에 한번 목욕 오는 날. 그녀들의 얼굴이 살짝 상기된다. 환자와 간병인 사이인 이들은 마치 친자매처럼 다정하게 목욕탕 나들이를 한다. 살짝 풍이 지나간 민자씨의 불편한 몸을 석이네가 땀을 뻘뻘 흘리며 때를 민다. 미안한 눈빛의 민자씨와 잘 참아주어 고맙다는 석이네의 눈빛이 오가며 조용히 목욕탕 나들이를 즐기는 듯하다. 행여 넘어질 새라. 석이네는 노심초사 민자씨를 챙긴다. 중탕에 앉혀놓고도 몸을 데우는 민자씨를 수없이 돌아보며 그녀와 눈을 맞춘다. 괜찮아요. 말이 어둔한 민자씨가 고개를 끄떡이면 그때서야 석이네는 재빨리 자기 몸부터 씻는다. 틈틈이 땀 흘리는 민자씨에게 물을 가져다주기도 열탕으로 옮겨 주기도 하는 것은 오롯이 그들만의 눈빛교감에서 이루어진다. 소녀처럼 발그레한 민자씨의 얼굴에 자분자분 화장품을 발라주고 옷을 입힌 뒤, 그녀들만의 어떤 특별한 의식처럼 달콤한 휴식도 갖는다. 바나나와 딸기 우유 한 병씩을 나눠 마시며 세상 편안한 표정으로 쉰다. 어느 자식이 이토록 거동이 불편한 노모의 동행에 행복함을 줄까. 비록 돌봄을 받는 이와 주는 사이지만 그들의 눈빛에선 힘없는 벽이지만 서로 기대고 다른 듯 동행하는 동병상련의 진심어린 눈빛이 있다.

나도 언젠가 병석에 누운 어머니를 모시고 목욕 간적이 있다. 모처럼 짬을 낸 둘만의 목욕인지라 때도 밀어주고 주물러주면서 효도하리라 부풀었다. 그러나 어찌된 일인지 어머니는 세신사에게 몸을 맡겼다. 내심 야속했다. 그러나 친절한 세신사는 오랜 단골인 어머니를 나보다 더 극진히 보살피며 전문가답게 목욕을 도왔다.

어머니의 눈빛 또한 바쁘다는 핑계로 왔다가 선걸음에 훌쩍 가버리는 자식들에게 차마 보지 못한 편안한 눈빛이었다. 세신사 역시 온탕과 열탕을 번갈아 다니는 어머니를 눈으로 쫓으며 세심하게 살폈다. 그뿐인가. 어디가 많이 아픈지를 목욕 내내 물어가며 조근조근 대화를 나누었다. 차마 자식에게도 풀어놓지 못한 하소연을 진심으로 받아 들어주고 있었다. 사람이 사람에게 보내는 눈빛의 위안과 소통. 생물학적으로 노쇠하고 경제적으로도 위축되는 서러운 노인을 친절하게 대하는 그 세신사를 어머니 또한 무한한 신뢰의 눈빛을 보내고 있었다.

가져간 파스까지 꼼꼼하게 발라주는 세신사와 우유하나를 얹어 계산해주는 어머니. 몸을 맡기고 돌봐주는 사이를 넘어 사소해 보이는 것들에서 가치를 발견하는 위대한 관계처럼 여겨졌다. 내가 당신에게 잘하려고 노력하는 과정에 나 스스로도 뿌듯함과 즐거움을 느끼는 투철한 직업정신. 그 정신이 단단히 무장된 사람일지라도 우리는 그런 이들의 눈빛에 절로 흐뭇해진다.

나눌 풍성함이 없는 것이 비극이 아니라, 나룰 마음이 없는 것이 비극인 사회에 살고 있다. 당신은 끝이 보이지 않는 캄캄한 터널 속에서 누군가가 내미는 한 줄기 빛 같은 따뜻한 손, 위로의 눈빛을 받아 본적 있는가. 건네 본적은 있는가. 그리고 그 눈빛에 눈물 맺혀본 적 있는가. 인생이란 결국 내 그림자를 남에게 부끄러움 없이 내보여주고, 남이 드리운 그림자를 인정하는 일인 것을. 내보여주고 인정하는 동행에 우리의 그런 눈빛들이 꼭 필요한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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