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경진 소장 (한국unity-liberty연구소)

통계청 자료에 의하면 지난해(2018년) 한국인 해외여행자 누계는 2천869만6천명이었고, 2019년 올해 3천만명을 넘어설 것으로 예상된다고 한다. 한국인들의 해외여행 출국자 비율은 2008년 24.5%에 그쳤으나, 지난해 55.6%로 10년 동안 2.3배로 껑충 뛰었다.

지난 1년간 해외여행 및 유학에 쓴 돈은 319억7천만 달러로 10년 전 190억6천만 달러보다 68% 정도 늘어난 것이다. 반면 같은 기간 외국인들이 한국 여행에서 쓴 돈은 153억2천만 달러에 그쳤다.

그러므로 해외여행 수지 적자는 165억8천만 달러로 역대 최대치가 되었다. 10대~20대 청년들의 여행이 늘고 동남아시아, 일본 등 가까운 관광지에 대한 선호가 커지면서 1인당 여행 경비는 오히려 줄었다. ‘한번 나가서 왕창 돈쓰는’ 여행에서 ‘자주 나가고 돈 덜 쓰는’ 여행으로 바뀌고 있다. 한때 한국인의 해외여행자 1인당 지출액이 세계 1위라는 자랑스러운(?) 오명을 벗어나 이제 선진국형으로 바뀌고 있는 셈이다.

2015년 한국인의 해외여행 경비 1인당 평균 167만원에서 2018년에 오히려 120만원으로 줄어들었으며, 남성보다 여성의 해외여행 비율이 훨씬 더 확대되고 있다. 크게 두 가지 요인이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우선 유럽이나 미국 등 먼 여행지보다 일본, 동남아 등 가까운 관광지를 찾는 여행객이 늘었다. 관광공사의 지난해 목적지별 해외여행객 수 통계를 보면 베트남(42.2%) 말레이시아(33.1%) 일본(5.6%) 등의 증가세가 두드러졌다.

이들 나라는 대체로 물가가 싸고 항공료도 적게 든다. 반면 미국은 1.2% 증가에 그쳤고 영국(-0.8%) 독일(-2.7%) 호주(-2.8%) 등의 여행객 수는 뒷걸음질 쳤다. 관광당국 관계자는 ‘가까운 나라들에 대한 저비용 운항 노선이 확대됐고 비성수기에 1~2일 연차를 내고 짧게 여행을 다녀오는 직장인이 늘어난 영향’이라고 말했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해외관광지에는 어김없이 한국인들을 만날 수 있어서 한국인의 해외여행 열풍은 식을 줄 모른다. 대한민국의 여권 자체에서 국력의 위상을 느끼게 되고 자부심을 느낀다. 해외여행을 통해 세상을 읽는 시각을 넓히고, 다양한 문화를 경험하고, 개인적 휴식과 힐링의 기회를 갖게 되므로 반드시 소모적인 여행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다.

더불어 국제적 수준의 시민 의식과 문화적 감각을 익히는 기회가 될 수도 있으므로 소비가 아니라 투자가 될 수도 있다. 노르웨이의 산악 열차 안에서 한국어 안내 방송이 나오는 걸 보고 한국의 파워를 느끼며 자부심을 느끼기도 한다. 때로는 관광객의 60% 이상이 한국인인데도 한국어가 아닌 중국어나 일본어로 방송되는 씁쓸함을 느낄 때도 있다.

한국으로 향하는 외국비행기 안에서 제공되는 영화에 한국어로 된 자막과 오디오가 확대되고 있으나 탑승객의 80%가 한국인임에도 한국어 자막이 나오는 영화가 거의 없는 경우도 있다. 외교부와 한국 관광 공사의 더 세밀한 관심과 노력이 필요하다.

그러나, 한국인의 해외여행 열풍이 굳건한 국민 경제 성장의 기조와 함께 한다면 당연히 축하할만한 일이다. 그러나 세금 인상, 경기 침체, 결혼 출산 감소, 기업 활동 위축 등 전반적으로 국민 경제가 위기로 치닫고 국제수지 악화를 걱정하고 있는 지금, 개인의 행복과 나라 전체도 발전을 함께 생각해보는 기회를 가졌으면 한다.

‘사랑 놀음에 나라 망하는 줄 모른다.’는 옛말이 생각난다. 해외여행 지출은 국제수지 측면에서 수출로 벌어들인 돈을 깎아먹는 ‘수입’의 효과를 낸다. 작년 여행 지출액 319억7천만 달러는 가전제품과 승용차 등 내구소비재 수입액(321억7천만 달러)과 맞먹는 규모다. 여행수지는 한국 서비스 수지의 만성적인 적자에 일조하고 있다.

이제 해외여행에 대한 우리들 스스로를 살펴야 할 때이다. 한국인 특유의 ‘쏠림 현상’으로 인한 것은 아닌지 자성해 볼 때가 되었다. 한국인들의 해외여행 습관 가운데 한번 다녀 온 것만으로도 자랑할 수 있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여행지를 선호한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일반여행객들은 그 나라의 역사 문화에 대한 사전 지식이 없는 상태에서 용감하게 다닌다는 특성이 있다. 문화는 아는 만큼 보인다. 관심을 가지고 조사해보지 않으며 더 깊이 알려고 하지 않는 채 그냥 단순 소풍인줄 알고 다니는 사람들이 많다.

단순히 볼거리, 먹거리, 놀거리의 즐거움에 머물지 말고 그들 나라의 관광 유인 정책 가운데 배울만한 점을 찾고, 그들 나라에 조언해줄 점을 찾아보는 재미를 발견하는 일이 중요하다. 관광 선진국들의 환경 보전과 질서를 위한 정책에 대하여 국민들이 불편함을 잘 참아내며 협조하는 시민의식을 배워야 한다.

한국인들이 나라살림 걱정하지 않고 당당하게 더 많은 해외여행을 갈 수 있으려면 더 많은 외국인들이 우리 한국을 찾아올 수 있도록 정부 또는 지방자치단체에서 세밀한 점검이 필요하고 그러한 정부 정책에 시민들이 협력하는 태도를 지녀야 하기 때문이다. 결국 공공의 문제에 대한 정책 결정자의 청렴한 의식과 시민의 신뢰성을 확보하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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