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재일 수필가

지난주 개인적인 일이 있어 휴가를 내고 전라남도 나주에 다녀왔다. KTX로 가면서 직통노선이 없어 오송역에서 호남선으로 갈아탔다. 목포행 KTX에 올라타자마자 장마철의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자연스럽게‘비내리는 호남선 남행열차에’ 라는 노래가 생각났다. 철도를 소재로 하는 대중가요는 경부선보다 호남선과 관련된 것이 더 많은 것 같다. 하지만 KTX는 그런 서정적인 이미지에는 어울리진 않다.

나주에는 공공기관들이 이전한 나주혁신도시가 있는데 이곳의 대표적인 이전기관은 한국전력이다. 마침 한국전력 본사에 근무하는 지인이 있다. 몇년전 서울에서 파견근무를 할 때 같이 일한 인연인데 여기까지 왔으니 만나보려고 전날 미리 연락을 하였다. 다만 일이 언제 끝날 줄 몰라 시간약속은 하지 못하고 일을 마치면 다시 연락하기로 했다.

오후 2시쯤 일이 끝나서 그를 만나려고 전화를 했는데 통화가 되지 않는다. 전날 약속을 했기에 일단 사무실 근처에 가서 다시 연락하기로 하고 한전 건물을 찾았는데 보이지 않는다. 장마철이라 비는 오락가락하는데 우산을 쓰고 걷기는 힘이 들었다. 처음 가는 곳이라 방향감각도 없다. 길을 찾기 쉽게 계획된 신도시에 있는 높은 건물이라 바로 찾을 것이라 생각했는데 보이지 않아 당황했다. 오히려 한전KDN, 한전KPS 같이 한전본사로 착각할 수 있는 건물들이 있어 더 혼란스러웠다. 주위에는 큰 공공청사만 있고 작은 가게나 행인이 없어 물어볼 곳도 없었다.

그러다가 스마트폰 생각이 나서 지도 어플을 열어 확인해보니 내가 있는 곳 바로 근처에 있었다. 다만 건물 최상층에 설치한 회사 로고가 구름에 가려서 보이지 않는 것이었다. 산정상에 구름이 둘러싼 것처럼 건물 꼭대기에만 구름이 감싼 장면을 연출한 것이다. 건물이 높다보니 가능한 현상이다.

간신히 지인을 만나 본사 최고층에 있는 구내카페에서 차를 마시며 구름에 회사 로고가 가려졌다는 이야기를 하니 이 건물이 호남지역에서 가장 높을 것이라고 한다. 마침 구름이 걷혀서 창밖으로 넓은 나주 평야의 아주 먼곳까지 보였다. 그러나 바로 인근의 경치는 오히려 잘 보이지 않았다. 눈높이를 맞추는 이유를 알 것 같다.

지난 주말에는 대구 시내에서 열린 행사에 갔다. 이날도 비가 와서 현장에 주차가 어려울 것 같아 대중교통을 이용했다. 마침 집에서 행사장까지 바로 가는 버스노선이 있어서 편리했다. 공식일정에 점심식사도 있다. 쉽게 걸어 갈 수 있는 가까운 거리에 식당이 있다. 나주시에서 헤멘 경험이 있어 이번에는 처음부터 스마트폰으로 찾아 가기로 했다.

행사장에서 나서는데 참석자 중 한 사람이 자신은 길을 모르니 같이 가자며 옆에 붙는다. 딱히 거절할 이유가 없어 같이 가는데 자꾸 말을 걸어대는 통에 지도를 보기가 불편했다. 한손에 우산을 들고 비번이 걸려 있는 스마트폰을 수시로 열어보기도 어려웠다. 그리고 지도를 너무 확대해서 보니 방향을 알 수 없어 엉뚱한 곳으로 헤메다가 식당에 늦게 가고 말았다. 두 번 연속으로 비가 오지 않으면 겪지 않았을 고생을 한 것이다.

야외활동이 어려워지는 장마철이다. 올해는 짧게 지나간다고 하는데도 불구하고 강한 집중호우가 내려 피해를 입은 지역도 있다. 자연재해는 아니지만 후덥지근한 기후에 집안에 습기가 차는 생활의 피해도 있고, 빗속에서 약속이 이상하게 틀어지는 것과 같이 생각지도 못하는 소소한 피해도 많다.

이런 장마철이 끝나서 나름대로 활동을 할 수 있게 되면 바로 폭염이 와서 휴가철이 된다. 휴가철에는 교통체증과 같은 다른 종류의 불편이 따른다.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에서 벌어지는 이런 저런 사연들 중의 하나이긴 하다.

소통이 강조되는 세상이다. 그래서 소통을 도와주는 기계나 네트워크는 많이 발전하였지만 사람들이 직접 대면하는 소통은 오히려 어려워지는 것 같다. 소통하는 방법은 다양해졌지만 생각하지도 못하는 새로운 장애물이 생겨나기 때문이다. 장마와 같은 통제할 수 없는 자연현상과 겹치니 이상하게 어려워지기도 한다.

비가 오락가락하는 장마철 만큼이나 세상의 변화는 종잡을 수 없다. 기술이 발달한다고 무조건 소통이 쉬워지는 것은 아닌 것 같다. 문명의 이기만으로 모든 것이 해결되지는 않을 것이다.
저작권자 © 대경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