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자문 한동대 교수

미국은 국토가 넓고 농업생산량이 큰 국가였는데, 자본주의 경제체제하에 경제산업이 크게 발달하여 생활용품부터 첨단기계, IT, 자동차, 영화산업 등에 이르기까지 생산이 크게 이루어지고, 국민들의 소득과 생활수준도 세계 최고 수준을 이루게 되었다. 물론 대도시의 인구도 크게 늘어나게 되고 그 도심은 국내외 정치경제네트워크의 중심지로 변모되었다.

그러나 교통기관의 발달과 외각 주거지의 개발로 중산층이 교외로 이동하면서, 또한 공장이 자동화시스템의 발달과 제조업의 탈 도심 내지 국제적 이동이 시작되면서 번영을 누리던 도심은 쇠퇴하기 시작했다. 여기에 공장 노동자들이던 인종적으로 소수로 불리는 흑인들이 직업을 잃고 빈곤해지고, 가난한 이민자들인 히스패닉 인구가 몰려들면서 도심은 황폐화되고 범죄 높은 지역으로 변모되게 되었다.

반면에 교외에 건설된 중산층들이 거주하는 주거단지들은 대규모 쇼핑센터 등을 중심으로 다양한 경제·문화·예술활동들이 더해져서 도시의 성장을 이끌게 되었다. 팀 홀(Tim Hall)과 같은 도시지리학자들은 미래의 지속가능한 도시의 요건으로 글로벌도시, 경제적 경쟁력 갖춘 도시, 창의성 있는 도시, 일렉트로닉 도시에 더하여 변두리도시(Edge City)를 꼽게 되었다. 이 변두리도시가 대도시 교외에 위치한 안전하고 경제활동이 활발한 부도심 내지 교외도시들이고, 이들이 전체 도시의 성장을 이끌어 간다는 것이다.

1950년부터 1960년대, 그리고 1970년대에 이르기까지 미국에서는 수많은 도시개발사업들이 연방정부의 선도아래 시행되었다. 많은 프로그램들이 수행되고 큰 자본이 투여되었지만 낙후된 도심이 성공적으로 재활성화 된 경우는 드물었다고 보아진다. 물론 도심의 일부 지역이 과거부터 여전히 행정의 중심이 되고 국제화 기류를 타고 국제업무지구로 변모되었지만 밤이 되면 모두 퇴근하는 텅빈 도심이 되어 버렸던 것이다.

20세기 초반부터의 ‘도시미화운동’의 여파로 1940-60년대의 도시재개발 내지 재생사업도 대규모 상가재건, 빌딩화사드 및 거리미관향상, 대규모 아파트 건설 등이 주조를 이루었다고 보아지는데, 우리가 유명한 저서인 ‘어반 빌리저스(Urban Villagers)’에서 보는 것처럼 그 지역 주민들도 일반시민들도 만족하지 못했고, 대부분의 사업들이 성공하지 못했다는 평가를 받게 되었다. 미국 대도시의 다양한 경제, 사회, 인종문제 등이 단순한 물리적인 접근으로 해결될 수도 없었고, 막대한 연방정부의 지원에도 얼마 후 지원이 적어지거나 끊어지면 그 사업들도 지속가능성 없이 무너졌다는데 문제가 있는 것이다.

미국의 인종이슈와 저소득층에 대한 차별이 표면에서 이루어지기 힘들다. 이는 정치가들은 물론이고 학자들도 마찬가지이다. 공공연히 혹은 기술적으로 행해지는 차별들을 누구도 쉽사리 입 밖에 내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소수인종들이 모여 사는 도심지역을 몇 가지 혜택을 통해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고 아무도 믿지 않는다. 물론 조금이라도 나아지기를 바라지만 그렇지 못하니 일부 과격한 경제학자 및 도시개발자들은 도심을 아예 공원으로 조성하고 이곳에 사는 사람들을 생산성 좋고 안전한 변두리도시로 옮겨주자는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계획은 어디 까지나 단순논리로서 머릿속에서만 생각할 수 있는 것들 중 하나이다. 비용이 문제가 아니고 정치사회적인 관점에서도, 네이버후드의 의미, 변화, 이동 등에 관한 사람들의 다양한 관점, 즉 고향마을을 떠날 수 있는 것인지, 이웃들과의 관계 및 직업 네트워킹 단절이 가능한 것인지 등 다양한 문제점들이 나타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지금까지 한국의 재개발 내지 재생사업들은 물리적인 요소에 중점을 둔 개발이었음에도 상대적으로 문제가 적었다고 할 수 있다. 물론 그 이유는 한국사회가 지금까지 발전단계에서 시민들의 의견이 쉽게 통합되기도 하였겠지만 다양한 의견들이 제대로 반영되지 않았더라도 불평이 적었기 때문일 수도 있겠고, 미국과 같은 인종적사회적 문제가 적었기 때문일 수도 있겠다. 하지만 이제 우리나라도 복합사회가 되어 가며 다양한 그룹이 다양한 관점에서의 의견들이 표출되고 통합되어야 하는 상황이 되어 있다.

지금 미국에서도 도시재생이 연방정부의 지원 하에 지자체 차원에서 끊임없이 진행되고 있다. 또한 과거와 같은 교외 확산적 도시개발은 크게 줄어들고 있고 압축도시, 다시 말해서 ‘네트워크 압축도시’ 형태의 개발이 이루어지고 공공교통의 향상을 위해 애쓰고 있다고 본다. 하지만 발전가능성, 효율성 진작 등의 차원에서 이들 대도시들은 투자대비 경제파급효과가 큰 변두리도시들의 발전에 더 큰 힘을 기울이고 있는 것 같다.

재미있는 것은 미국의 도시재생사업들을 보면 성공적인 경우가 오히려 규모 큰 변두리도시 중심부에서 발견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아니라면 최소한 수변개발 내지 테마개발이 함께 이루어진 경우라는 것이다. 구도심지역의 낙후된 구도심 지역들은 아무리 재정을 투여하고 학자 및 전문가들이 다양한 노력을 기울여도 큰 변화가 보이지 않는데, 그 원인을 구태여 캐내지 않으려는 것 같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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