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재일 수필가

얼마전 당일치기로 영천과 청송에 출장을 다녀왔다. 오전에 영천의 일을 마치고 청송으로 가는 길이었다. 휴게소에서 점심을 먹은 후 다시 출발하려고 네비게이션을 보니 35번 국도를 따라 노귀재 터널까지 직진이라고 나온다. 약 10km나 남았는데 벌써 표시가 되는 걸 보니 노귀재 터널이 유명한가 보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출발후 무엇인가 허전함을 느꼈다. 점심식사 후 커피를 마시지 않은 것이다. 다음에 휴게소가 나오면 마셔야겠다고 생각했다.
얼마 안가서 노귀재휴게소란 안내판이 보였다. 터널에 가기 전에 나오나 싶어 휴게소 쪽으로 진입을 했는데 휴게소는 나오지 않는다. 당황했지만 크게 잘못된 것도 아니라서 계속 갔는데 결국 노귀재 정상까지 올라가서야 볼 수 있었다. 터널이 생기기 전에 사람들이 이용한 구도로에 있는 휴게소였다. 결국 터널을 거치지 않고 노귀재를 넘게 되었다.

그런데 휴게소 맞은편에 짓다가 그만 둔 휴게소 부지가 있었다. 모텔 형태의 4층 건물이 흉물스럽게 서 있었고 주위에는 잡초가 무성하여 완전한 폐허였다. 몇 년 전에 가본 캄보디아의 앙코르와트 유적을 연상시킨다.
아마도 노귀재 터널이 생기면서 구도로를 이용하는 차량이 줄어들자 운영이 어려워 포기하고 방치해 둔 것 같다. 이정도까지 건축했으면 상당히 많은 돈이 투자되었을 것인데 매몰비용을 고스란히 날린 것이다. 터널이 생기면서 재의 정상에 있는 휴게소들이 직격탄을 맞는 현장이 보였다.

스마트폰으로 검색을 해보니 노귀재 터널은 대구와 영천, 청송을 잇는 35번 국도의 교통량이 증가하면서 건설되었는데 터널 완공으로 대구-청송 간 운행 시간이 20여분 단축되었고 특히 겨울에 눈이 오면 노귀재를 넘을 수 없는 문제가 해소되었다고 한다.
요즘 곳곳에 재를 관통하는 터널이 생기면서 운전자들이 재를 넘어가지 않는다. 터널이 건설되면 주위의 교통량을 흡수하는 블랙홀이 된다. 그래서 고속도로는 재를 넘는 것이 아니라 터널 속을 달리도록 설계된다. 평지가 아니면 터널없는 고속도로는 건설이 불가능하다.

재는 지역을 가로지르는 높은 산맥을 넘는 길이 나 있어 옛날에는 산지교통의 길목이었다. 우리민족의 애환이 서린 곳이다. 재를 넘으면서 누군가와 이별을 했다. 전국에 눈물을 흘리면서 넘는다는 눈물고개가 많다. 국민민요 아리랑도 고개를 넘어가는 것으로 시작한다. 특히 우리지역에 익숙한 말이다. 영남이란 말은 이런 재가 있는 곳(태백산맥)의 남쪽이란 의미가 아닌가.
곳곳에 재에 대한 전설도 많다. 어릴 때 지역의 어른들께 마을주위의 재에 대한 전설을 재미있게 들었던 기억이 많다. 노귀재의 전설도 재미있었다. 임진왜란 때 왜적부대가 재를 넘다가 재를 넘으면 청송이라는 말에 청송의‘송’자가 명나라 장수 이여송의 부대가 주둔하고 있다는 의미로 알아듣고 돌아갔다는데 유래하였다. 임진왜란후 왜적을 종(奴)이라 여기고 종이 이곳에서 돌아갔다는 뜻으로 노귀(奴歸)재라고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오늘날 대부분의 재는 교통의 의미를 상실하여 등산기지나 관광지로 이용된다고 한다. 먼 옛날부터 이용하던 구도로는 이런 전설을 이용한 스토리텔링의 좋은 소재가 된다. 그러나 기존의 번영을 되찾기는 어렵다. 어쩌다 찾는 관광지는 교통의 요충지만큼 사람이 찾지는 않는다.

다른 우월한 수단이 생기면 기존의 방법이 낙후되는 현상은 비단 터널과 재의 관계 뿐만이 아니다. 2차선 도로가 있던 지역에 4차선 도로를 놓으면서 선형변경으로 새로운 노선이 생기면 기존의 2차선도로는 사용이 되지 않는다. 관리가 되지 않고 방치되어 도로의 기능을 할 수 없는 곳이 많다. 도심에도 있다. 요즘 상권이 흥하고 망하는 사이클이 짧아져서 기존 주민들을 쫒아내는 젠트리피케이션이 문제가 된다.

변하지 않으면 도태된다. 변화가 필요하다. 그런데 모두 변화의 속도를 따라가지는 못할 것이다. 지금 앞서가는 사람도 언젠가 도태될 수 있다. 변화에 늦어진다고만 해서 모두 퇴출되어야만 하는지 안타깝기도 하다.
도로와 주위의 시설은 다른 것으로 용도를 바꾸지 않으면 흉물이 되고 만다. 도로는 짓는 비용도 많이 들지만 기존도로를 없애는 비용도 많이 든다. 버려둘 수는 없다. 방향이라도 다르게 잡아서 생존토록 해야 하지 않을까. 예를 들어 신도로에는 주유소나 휴게소가 새로 들어서기 어려운데 이런 시설을 이용하도록 중간에 옛도로를 찾도록 안내를 하는 방법도 있다.

휴게소에서 맞은편 폐허를 보면서 커피를 마시다가 떠오르는 생각을 정리해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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