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혜주 수필가

강물이 가들막하다. 초록 물결이 늘어진 뱃살처럼 출렁인다. 이웃집 처녀 담 너머 훔쳐보듯, 둑 밭을 밀고 들어가 푸성귀를 향해 널름거린다. 쏟아지는 햇빛과 시원한 바람, 지천에 물이니 뿌리를 내린 것들의 숨소리 우렁우렁하다. 강둑의 아이들이 강물을 향해 힐끔거리며 관절을 푼다. 풍덩 뛰어들 자세다. 강위로 푸름이 더한다. 칠월의 강가에 숨탄것들의 자람이 절정이다.

강은 겨우내 품어 키운 숭어를 봄볕에 내 보내고 시름에 젖었다. 대문 밖으로 자식 내 보내는 어미의 심정이 되어 날로 수척해졌다. 그 강을 달랜 건 소리 없이 내린 봄비였다. 자작하게 대지를 적시고도 애면글면 한 방울이라도 가둬 강을 채워 보듬었다. 곧 농번기에 맞춰 수문이 열릴 터였다. 넓은 섬 안 들을 적시려 나갈 도랑물을 위해 한 방울이라도 가두어야 하는 것은 숙명 같은 강의 운명이었다.

형산강의 수문이 열리면, 드넓은 섬 안들은 하얀 물바다로 변했다. 풍년을 기원하며 강마을 사람들은 서둘러 논둑을 치고 물꼬를 텄다. 달리는 말처럼 도랑물은 숨 가쁘게 흘러가 곳곳의 둠벙을 채우고, 갈증 난 들의 목을 축이고 마침내 샛강에 머물러 뭇 생명들의 양식으로 남았다. 물풀 사이에 알을 붙여 가물치를 키워내고, 논 두럭에 알을 품은 뜸부기의 새끼를 부화시켰다. 메기와 미꾸라지도 기름지게 살찌워 보리밥과 함께 밥상에 올렸다. 허리까지 물이 차오른 샛강의 푸른 갈대밭은 개개비와 도요새의 천국으로 변해 버렸으며, 바닷물이 밀고 들어왔다 나간 곳엔 짭조름한 함 초가 지천으로 자라나 밭을 만들어 버리기도 했다. 풍부한 물이 있어 사람과 뭇 생명들과의 의로운 공생으로 아름다웠던 그곳은 내가 태어나 자란 강마을이다.

인간의 자아 정체성과 자아 개념을 형성하는 데 있어서 결정적이라고 말할 수 있는 곳이 바로 장소(고향)다. 우리가 그 속에 거하고 있으면서 나의 기억과 현 존재는 물론 미래까지 투사되어 있는 곳이기도 하다. 인간의 삶과 생애 주기는 몇 개의 근본적인 장소와 결부되어 있다. 우리가 무엇인가 기억을 하거나 나의 이야기를 풀어내고자 할 때, 반드시 장소를 불러내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은 정체성이 특정 장소나 위치에 묶여 있기 때문이다.

]내게 강마을이란 장소는 바로 그런 곳이다. 나는 형산강을 지척에 두고 그 곳의 숨탄것들과 함께 성장했다. 힘찬 생명력을 느끼며 함께 꿈을 꾸고 호흡했다. 강이 있어 내 유년의 시간은 더 차지고 더 풍요로웠다. 수영실력을 뽐내려 오빠들이 줄지어 내달리면 같이 달음박질했다. 물로 뛰어들면 함께 뛰어들어 멱을 감았다. 넓은 들과 한 없이 받아 주던 속 깊은 강은 나를 천방지축 내 달리기 좋아하는 아이로 자라게 했다. 도전정신이 몸에 밴 것도 일찍이 그 곳에서의 뭇 생명들과 거리낌 없이 부디 꼈던 탓이리라. 메뚜기와 논에서 뒹굴고, 강에서는 재치조개와 살 부비는 일상이 자연스럽게 몸에 밴 강마을 아이들만의 축복인지도 모른다.

농번기를 앞두고 숭어가 돌아오면 물안개 자욱하게 피어오르는 강이 들썩였다. 아침 햇살에 은비늘을 번쩍이며 뛰어오르는 숭어를 잡기 위해 초망 든 사람들로 북적거렸기 때문이었다. 이른 아침, 나룻배에 실려 들어오던 팔뚝만한 숭어는 곧잘 어시장으로 향해 강마을 사람들의 주머니를 채우는 쏠쏠한 재미도 주었다. 그때, 여린 갈대로 은빛 숭어아가리를 꿰어 묵직하게 들고 대문을 들어서던 아버지가 커 보인적도 없었다. 보릿고개를 넘느라 허해진 강마을 사람들의 기력보충을 도왔던 숭어. 강이 키워 사람에게 내놓은 고마운 선물이었다.

본격적인 농번기가 시작되면 누렁이의 코에도 단내가 났다. 들녘엔 허거리(소 부리망)를 한 누렁이가 쉴 새 없이 서리 같은 뽀얀 김을 쏟아냈다. 섬 안들 풍년의 절반은 집집의 늙은 누렁이들 몫이었으니, 누렁이는 마구간의 또 다른 소중한 식구인 셈이었다. 어스름이 지면, 진종일 들녘을 누비던 누렁이도 허거리를 벗고 강둑의 풀을 뜯어 배를 채웠다. 우리들은 멱을 감다 말고 나와 누렁이를 앞세우고 연기 오르는 집으로 돌아오곤 했다. 몇 개 더 늘어난 얼굴의 주근깨를 훈장처럼 달고.

형산강이 양산목을 지나 영일만과 만나면서 만들어진 넓고 기름진 섬 안들. 그 너른 들의 뭇 생명을 살피느라 강은 쉬지 않았다. 부추기고, 쓰다듬고, 다독이느라 부엌의 어머니들처럼 분주했을 것이다. 태풍에 속수무책 둑을 내주고 통곡도 했으리라. 풍년 든 황금 빛 섬 안들을 바라보며 안도의 기쁨도 누렸을 것이다.

식물의 시간으로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칠월이다. 저마다의 생존 전략을 갖고 최선을 다해 왕성하게 생존해 가는 식물을 보면 그곳이 더욱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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