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질문명 만능주의가 팽배해지고 있는 현실 속에서 우리 전통 문화예술의 전승발전을 위해 우리 고유의 소중한 정신문화가 깃들어 있는 무형문화재와 그 전승자을 조명한다.

@ 무형문화재는 인류의 정신적인 창조와 보존해야 할 음악ㆍ무용ㆍ연극ㆍ공예기술 및 놀이 등 물질적으로 정지시켜 보존할 수 없는 문화재 전반을 가리킨다. 무형문화재 가운데 보존의 가치가 있다고 생각되는 기능 및 예능에 대해서는 ‘문화재보호법’에 의거하여 문화재위원회의 자문을 거쳐 지정, 보호하고 있다. 이의 지정은 형태가 없는 기능 또는 예능이기 때문에 이를 보유한 자연인이 그 대상이 된다.

무형문화재에는 국가지정 무형문화재와 시ㆍ도 지정 무형문화재가 있다. 문화재보호법에서는 문화재청장이 무형문화재 중 중요하다고 인정되는 것을 자문기관인 문화재위원회의 심사와 토의를 거쳐 중요무형문화재로 지정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 가야금병창

가야금병창은 민요나 단가 판소리 일부 대목을 가야금을 연주하면서 부르는 연주형태를 말한다. 단가나 판소리 중의 한 대목 또는 민요를 창자 자신이 직접 가야금을 반주하면서 부르는 전통음악의 한 장르이며 가야금 산조와 판소리를 공부해 많은 연습과 수련으로 공력이 필요한 장르이다. 처음에는 쉬운 민요부터 시작해서 어느 정도 숙달이 되면 판소리와 가야금 반주를 함께 하는 종목이다.

# 경상북도 제19호 장월중선류 가야금병창

경상북도 제19호 가야금병창은 장월중선이 1993년에 2월에 예능 보유자로 지정되었으며 현재 장월중선류 가야금병창으로 주로 경상북도 지역에서 전수조교인 임종복(포항), 주영희(경주)에 의해 전승되고 있다.

보유자인 고 장월중선 선생은 전남 곡성에서 태생으로 8세부터 판소리를 시작으로 많은 명인·명창들에게 판소리, 가야금산조, 가야금병창, 아쟁산조, 거문고산조, 무용, 범패, 작곡 등 다양한 분야를 사사 받았고 각 분야에 뛰어났다. 특히 가야금병창은 당대에 뛰어 났던 오태석 선생으로부터 사사 받았다.

전남지역에서 신영희, 김일구, 백인영 등 유명한 제자을 배출했으며 후에 국악의 불모지였던 경주지역에 터를 잡고 신라국악원을 창설해 판소리, 가야금병창, 무용, 기악 등을 전수하여 경상북도 국악 활성화를 위한 발판을 마련했다.
장월중선 선생은 소리와 기악에 모두 특출함을 인정받아 1993년에 가야금병창 예능보유자로 지정되었으며 1998년 향년 74세를 일기로 예인의 삶을 마감했다.

악·가·무에 두루 능했던 그의 예술은 자녀들인 정순임(경북무형문화재 제34호 판소리 홍보가 보유자), 정경호(국악작곡 및 아쟁 명인), 정경옥(국가무형문화재 제23호 가야금 병창 이수자)로 맥을 잇고 그의 후손까지도 가문의 맥을 이어 5대째 가문의 예술과 예술 혼을 이어가고 있다. 2007년에는 국가가 지정하는 ‘판소리 명가문’으로 인정받아 그 맥을 이어오고 있다.


* 국악의 길로 들어선 계기는?

아버지는 국악을 매우 사랑하는 공무원이었다. 국악기 수집이 취미로 아주 오래된 가야금, 거문고, 대금, 단소, 퉁소 등 많은 고악기를 수집했다. 특히 한여름 밤 달빛 아래에서 연주하는 아버지의 퉁소 소리는 어린 나에게 아버지가 아주 멋져 보였다.

한국인이면 우리 음악을 알아야 한다고 하시며, 1남5녀의 자녀들에게 국악을 접하게 했다.
나는 초등학교 무렵 언니들의 가야금 소리와 판소리를 귀동냥으로 공부했고 중학교 때 아버지의 적극적 권유로 시립국악원에 정식 등록했다. 그곳에서 한애순, 한재옥, 선영숙 등 당대의 유명한 선생님으로부터 판소리, 무용, 가야금산조, 가야금병창을 사사받고 중고등학교 때 광주시립국악원 장학생으로 선발되어 선생님들과 공연도 자주했고 호남예술제 등 많은 대회에서 수상했다. 광주여고 시절 학교에는 1인1악기 제도가 있었는데 가야금과 피아노 중 선택해서 배워야 했다 나는 당연 가야금을 선택해 지역에서 유명한 염정관 할머니 선생님에게 배웠다. 그 이후로 성인이 되어 시간이 될 때마다 선생님들을 찾아다니며 가야금 병창과 산조를 꾸준히 공부했다.

1983년 결혼 후 남편의 직장을 따라 포항에 신혼생활을 시작했다. 광주에 계시는 문화재 위원 중 한 분의 소개로 경주에 국보급의 훌륭한 장월중선 선생님이 계시니 찾아가 공부를 계속하라고 권유했고, 1990년 장월중선 선생님의 문하에 들어가 정식으로 가야금 산조와 가야금 병창을 사사받으며 1994년 경북무형문화재 제19호 전수 장학생을 거쳐 1997년 전수조교로 선정됐다.

고 장월중선 선생님과 중국 공연 후 만리장성에서 기념촬영


* 임종복 전수조교에게 가야금병창이란
가야금은 내 인생 자체이다. 가야금을 초등학교 4학년 때 처음 접했고 오로지 가야금 한 길로 달려왔다. 나 자신과 가족을 희생했다.
1992년부터 현재까지 사회교육시설인 포항문화원, 여성회관, 호미곶예술단 등에서 일반 성인을 대상으로 국악보급에 힘썼고, 1995년 포항 국악협회에 창립을 도왔다. 1996년부터 현재까지 초 중 고등학생과 대학생 등 총 20여 개 학교에서 많은 제자들을 양성했고, 2005년부터 현재까지 악기, 노래, 춤에 능한 제자들과 함께 포항민속예술단을 만들어 사회봉사 활동을 하고 현재까지 제15회 정기공연을 어어 오고 있다.

2005년 ‘임종복 가야금 예술단'을 만들어, 가야금 병창의 전승과 보급에 힘썼다. 2018년 ‘장월중선류 가야금병창 보존회’로 계명해 경상북도 무형문화재 제19호 가야금병창을 계승 발전에 노력하고 있다. 2017년부터 현재까지 생활동아리 ‘노래하는 가얏고’라는 팀을 만들어 생활 속에 가야금이 함께 어우러져 전통과 현대가 함께 공존하는 병창단을 만들어 포항사회에 신선한 바람을 일으키고 있다.

또한 2018년부터 현재까지 포항여성예술연합회의 회장을 맡아 총 30여 개의 종목과 50명의 회원과 함께 포항문화예술 발전을 위해 작품 활동에 매진하고 있고, 2019년 4월 ‘포항시 무형문화재 이수자협회’에 가입해 여러 종목의 무형문화재 이수자 선생님과 함께 손상호 회장의 탁월한 리더쉽 아래 무형문화재 전승 발전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국악의 불모지인 포항에 1991년, 처음으로 포항가야금교습소를 시작해 2019년 현재까지 포항국악원을 기반으로 국악발전을 위해 성심을 다해 이 길을 걷고 있다.

나는 50년이 넘는 나날을 가야금병창으로의 한 길을 걸었다. 내 길을 가는 동안 내 가족들은 옆에서 묵묵히 응원해 주었다. 내 가족의 응원이 없었으면 오늘의 나는 없었을 것이다. 나에게 가야금 병창이란 나의 가족이고 나의 시간이고 나의 열정이다.

* 가야금병창을 하면서 보람된 일
20여 년 전에 내가 가르치던 초등학생 어린 제자들이 대학에서 국악을 전공하고 어느덧 사회에 나와 가야금병창으로 활발한 활동을 하는 모습을 볼 때, 그들의 아들 딸 손잡고 나를 찾아올 때, 세월의 무상함과 뿌듯함을 느낀다. 또한 나 스스로 평생 수련을 게을리하지 않고 증진하며 포항의 국악발전에 이바지했다는 것에 대하여 스스로 자부심을 갖으며 연주인으로서 무대에 올라 내 모든 공력을 풀어내었을 때 더할 나위 없이 기쁨을 느낀다.

월은 임종복 선생의 가야금 연주 모습


* 에피소드
본인의 초등학교 5학년일 때 나의 장래희망을 발표하는 시간이었다, 나는 선생님도 되고 싶었고 가야금도 연주하고 싶었다. 한참 동안 골똘히 생각하던 중 선생님이 ‘임종복 발표하세요’ 하자마자 순간 당황하여 무심결에 둘을 합쳐서 “가야금 선생님이 되고 싶어요”라고 말했다. 그 말이 이렇게 될 줄 이야 참 아이러니이고 이것이 내 운명의 길이 됐다.

최근 1년 전부터 미국인 중학교 원어민 교사에게 국악을 가르치고 있다.
29살 미혼인 이 원어민 교사는 가야금병창과 우리 민요를 배우는 것이 참 재미있다며 배우는 장면과 가끔씩 한복을 입고 무대에 오르는 장면을 동영상으로 찍어서 미국에 있는 가족에게 자랑을 하고 있다. 특히 우리 아리랑을 좋아 해 여러 종류의 아리랑을 배우고자 하는 열의를 보였다. 젊은 이방인이 우리 국악을 곧잘 따라 배우는 모습이 신기하고 기특하기도 하다.

* 앞으로 포부
전수조교로서 선생님의 유업을 이어받아 장월중선류 가야금 병창 전승과 발전을 위해 사명감으로 선생님의 작품의 맥을 잇고자 노력해왔다.
그 일환으로 고 장월중선의 장녀 정순임 선생님으로부터 박동실제 심청가 눈 대목을 사사받았다. 그리하여 장월중선류 가야금 병창 전승목록에는 없는 눈 대목을 선정해 편곡한 작품과 장월중선의 기존 전승곡을 더하여 심청가 눈 대목 완창곡을 완성했다.
편곡은 박동실제 심청가 중 ‘주과포혜’, ‘행화는’, ‘뺑덕어멈 심술타령’, ‘일일은 천자님이’의 4곡과 단가 ‘인생백년’ 총 5곡에 본인이 가야금반주를 붙여 기존 가야금병창곡에 없던 레퍼토리를 새로 만들었다.

2018년 8월에 새롭게 만든 곡과 기존 전승곡을 연결해 제10회 월은 임종복 가야금 독주회 때 ‘심청3’로 장월중선류 가야금병창 심청가 눈대목 완창곡을 발표했고, 2019년 8월에는 경북 무형문화재 제19호 장월중선류 가야금 병창 ‘심청’이라는 타이틀로 첫 음반이 나올 예정이다.

이 앨범에는 장월중선류 가야금병창의 특색을 볼 수 있는 단가 ‘백구가’와 생전 장월중선 선생님이 즐겨 부르시던 판소리 단가 ‘인생백년’에 가야금반주를 입혀 편곡한 가야금병창 ‘인생백년', 심청가 중 박동실제 판소리를 편곡한 가야금병창 심청가 4곡과 장월중선 선생님의 심청가 가야금병창 전승곡 11곡 포함 총 17곡이 수록된다.

국악을 연구하는 교수 및 전공자들에게는 장월중선 가야금병창의 연구 자료가 매우 부족해 이를 정리하고자 음원작업을 시작하고 있다.
현재 장월중선 선생님이 일찍 타계 해 생전의 가야금병창 음원은 단가 ‘백발가'와 심청가 중 ‘곽씨부인 묻고 돌아와서’ 두 곡의 음원만 남겨진 상태이다. 이를 보완하기 위해 최선과 혼신을 다해 1집을 준비했다.

앞으로도 2집 음반(장월중선류 가야금병장 1집 이외의 곡, 장월중선 작곡 민요 외 가야금병창 곡 다수)을 준비하고 있으며 이에 따른 체계적인 악보집도 집필 중에 있다. 이것이 전수조교이자 장월중선 선생님의 제자로서 나의 마지막 숙제이다.

그동안 많은 가르침을 주신 고 장월중선 선생님, 정순임 선생님, 서한범 교수님, 김성혜 교수님, 정경옥 선생님께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2019년 하반기에는 제 11회 독주회와 제 14회 제자발표회인 정기공연이 예정되어 있다. 앞으로도 지금처럼 꾸준히 가야금 병창의 전승 발전을 위해 노력할 것이다.

* 주요 학력 및 경력
-1991년 10월 포항 가야금교습소 개소
-1999년 7월 경북무형문화제 제19호 가야금병창 전수조교 지정
-2005년 포항민속예술단 창단
-2005년 임종복가야금병창단 창단
-2005년 진주개천에술제 일반부 대상
-2010년 부산 동래 전국국악대전 일반부 대상 등 다수
-2013년 임방울국악대제전, 대한민국 가야금병창 대제전 등 심사위원
-2018년 2월 포항여성예술인연합회 회장
-2018년 8월 동국대 불교문화대학원 음악학(국악/석사) 졸업
-2018년 8월 제10회 월은 임종복 가야금병창 독주회
-2019년 8월 경북무형문화재 제19호 장월중선류 가야금병창 '심청' 음반 발매

 

저작권자 © 대경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