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재일 수필가

갑자기 차가 이상해졌다. 운전 중 가끔 힘을 쓰지 못한다. 시동을 걸거나 후진할 때 기어변속이 안되는지 RPM이 낮아지며 덜덜 떨면서 시동이 꺼질 것 같은 현상이 한달에 한번 꼴로 발생했다. 시동을 끄고 조금 있다가 다시 시동을 걸면 정상으로 돌아왔다.

그러나 원인을 알 수 없어 답답했다. 동네 카센터에서는 수리를 할 수 없었다. 본네트를 열어 보아도 이상이 있는 곳을 확인하지 못한다. 오일교환도 제대로 했고 변속기도 문제가 없는 것 같았다. 그리고 지금 현재는 멀쩡하게 잘 굴러가는 차의 문제를 달리 설명할 방법이 없었다.

옛날 가전제품이 고장나서 수리공을 부르면 멀쩡하게 잘 작동해서 난감했던 기억이 있다. 고장이 나면 먼저 툭툭 쳐서 접촉불량부터 확인해야 했었다. 내차도 꼭 이런 상황인데 어쩔 수 없이 몇달을 그냥 더 몰았다.

그러다가 어느날 차가 도로 위에서 시동이 꺼져서 멈춰선 후에 보니 계기판에 체크불이 들어와 있다. 사진을 찍어 카센터에 갔다. 주인은 계기판을 보더니 본네트를 열지도 않고 계기판 밑에 있는 잭에 컴퓨터를 연결해서 체크를 하고 크랭크 센서에 문제가 있다고 한다. 있는지도 몰랐던 부품이다.
스틱 차량은 고장이 나더라도 대충 원인을 짐작할 수 있었다. 그러나 잘 모르는 이상한 부품이 많은 오토매틱 차량으로 바꾼 후에는 그러지 않았다. 전자장치가 많아 편리해지긴 했는데 이상이 있더라도 알 수가 없었다.
문제는 고장이 나지 않는다고 보장도 할 수 없다는 것이다. 몇 년 전만 해도 급발진 사고가 종종 뉴스에 나오곤 했다. 암환자들이 자각증세가 없어서 병세가 악화될 때까지 치료를 하지 않다가 위험한 지경이 되었다는데 이차도 그렇게 될까 불안하다.

이제는 자동차에 대한 어설픈 지식이 필요없거나 도움이 안되는 시대인 듯 하다. 과거에는 운전면허증을 딸 때도 차량수리의 기초지식을 요구하기도 했다. 지금은 그런 지식이 없더라도 운전하는데 큰 문제가 없다. 카센터 주인도 기계적인 지식보다는 컴퓨터로 진단을 했다. 자동차 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기계에는 컴퓨터 회로가 들어있어 평범한 상식을 지닌 비전문가가 원리를 알 수 없다. 이런 현상을 보며 우리세대가 과거에 얻은 상식이 요즘 필요 없어지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본다.

요즘 젊은 세대는 불필요한 지식은 깊게 알 필요가 없고 피상적으로 알 수 있는 검색 능력만 있으면 된다고 생각하는 듯 하다. 직접 뜯어보고 원리를 알아내는 과거의 방법이 불가능해졌기 때문이다. 구지 원리를 알 필요가 없이 기계가 알아서 하도록 내버려두어도 AI같은 인공지능은 잘 처리해 주고 있다. 그러다보니 묻지마식 지식이 되곤 한다.
우리같은 과거 세대는 이런 추세에 적응하기가 어렵다. 수시로 변하는 패턴을 익히기도 너무 어렵다. 그러나 몸에 밴 과거의 학습 방식을 버릴 수도 없다.

그러고 보니 가족들은 나를 보고 자꾸 꼰대가 되어간다고 한다. 별로 중요하지도 않는 것을 갖고 강조를 하거나 아는 척을 한다는 것이다. 정작 민감한 주제를 파악하지 못해 왕따가 되기도 한다. 내가 아는 지식을 꼰대지식이라고 말하곤 한다. 우리세대의 지식은 이제 고전이 되어가는 것 같다.
하지만 고전을 무시하면 안된다. 아직 변화가 완전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 예로 종이책의 수요다. 인터넷 강의나 전자책이 있더라도 우리 세대에는 맞지 않으며 아직은 종이책으로 하는 공부방법이 주류다.
서재의 책꽂이에는 30여년전 신혼시절 산 백과사전이 꽂혀 있다. 많이 보지는 않는다. 수록된 지식이 옛날 내용이고 항목을 찾기도 어렵다. 요즘 인터넷으로 검색을 하면 훨씬 최신의 지식을 빨리 알 수 있는데 30권이 넘는 백과사전을 뽑아서 찾아보기에 시간이 너무 걸린다.
그럼에도 아직 갖고 있는 이유는 버리기엔 너무 아깝기 때문이다. 한때 우리집의 가보 제 1호였다. 서재를 장식하면 폼이 난다. 인터넷과 다른 느낌이 있어 가끔 심심할 때 펼쳐보면 생각지도 못하는 지식을 얻을 수도 있다.
특히 요즘 인터넷은 내용이 너무 자주 바뀌고 엉뚱한 지식이 제공되기도 하여 진짜 확인을 할 때는 백과사전을 찾는다. 인터넷에서 어떤 키워드를 검색하면 본질보다는 동명의 연예인이나 이름을 딴 예능 프로그램이 먼저 뜨는 경우가 많아 짜증이 난다. 그래서 가끔 확인하는 차원에서 종이 백과사전을 본다. 꼰대의 지식이 필요할 때도 있는 것이다.

최근 훈민정은 상주본 소유권과 관련하여 소장자와 문화재청간 법적인 송사가 오갔다. 단순히 안에 저장된 정보만으로서는 이런 분쟁이 있을 필요가 없을 것이다. 고전의 참된 의미를 인정받고 있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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