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율동 편집국 부국장

흔히 가을을 ‘천고마비’의 계절이라 한다. ‘하늘은 높고 말은 살찐다’는 의미로 ‘날씨가 청명하고 만물이 풍성하다"’라는 좋은 뜻으로 전해져 오고 있다.

또, 천고마비는 중국 후한 시대 역사서 흉노전에서 “북방의 흉노족이 봄부터 여름까지 초원에서 키운 말들이 잔뜩 살이 쪘으니 이제 곧 남쪽으로 쳐들어와 식량과 가축을 노략질 해 갈 것이다”라는 침입을 경계하라는 뜻으로 쓴 데서 유래됐다고도 한다.

이렇듯 ‘천고마비’라는 말은 가을의 풍요로움과 평온함을 담고 있기도 하지만 이러한 풍요와 평안함을 빼앗으려는 세력에 대한 경계의 의미도 담고 있다.

봄, 여름, 가을, 겨울 사계절 가운데 가을이라는 계절이 풍요로운 것은 자연의 이치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인간들의 노력이 있었기에 가능한 것이라 생각한다.

농부가 봄에 씨앗을 뿌리고 그 씨앗이 무더운 여름을 견디어 가을에 결실을 맺기까지 농부가 얼마나 많은 땀을 흘리고 지켜야 되는지 이를 생각하면 그 답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이 가을에 ‘천고마비’라는 단순한 계절적 의미보다는 그 내면에 녹아 있는 인간들의 삶을 위한 노력과 고난을 깊이 성찰해 볼 필요가 있다.

가을의 풍성함과 그 풍성함의 보존 없이 추운 겨울을 어떻게 지낼 것이며, 봄과 여름에 흘린 땀 없이 어떻게 풍성한 가을을 맞이할 수 있겠는가? 즉, 준비와 노력 없이는 풍요와 여유는 결코 얻을 수도, 유지할 수도 없음을 이 계절에 다시금 생각해 보게 한다.

과거 역사 속에서도 우리는 이 같은 사례들을 엿 볼 수 있다.

당나라 2대 황제 태종 이세민은 황제에 오르고 나서 농민들에게 균등히 토지를 나누어 주어 조용조 제도로 세금을 걷었다. 이 제도는 토지를 받은 사람은 국가에 곡물을 바치고, 1년 중 20일을 국가를 위해 일하며, 직물 등을 바치게 하는 제도로써, 국가는 풍족해지고 민생은 안정되었다. 이세민은 형 이건성의 편에 있던 위징을 자신의 편으로 만들었고, 위징은 명재상이 되어 중국을 안정시켰다.

또, 과거제도를 실시해 인재를 양성했고, 군사 제도는 부병제인 징병제로 택했다. 이렇게 많은 인재를 등용시킨 당나라는 나날이 번창해져 갔으며 백성들도 더더욱 이세민을 우러러 보았다. 아울러 이세민은 아무리 적의 밑에서 일했던 장수라 할지라도, 능력이 뛰어나면 무슨 일을 해서라도 자신의 사람으로 만들었고, 아무리 신하들이 자기에게 독설을 퍼부어도 역정을 내지 않고, 그 간언을 잘 받아들여 언제나 국가와 백성들을 위해 좋은 정책을 만들고 태평성대를 누렸다.

조선의 제4대 세종대왕은 집현전(集賢殿)을 두어 학문을 장려하였고, 유교 정치의 기반이 되는 의례, 제도를 정비하고, 훈민정음(訓民正音) 창제, 농업과 과학 기술의 발전, 의약 기술과 음악 및 법제의 정리, 공법의 제정, 국토의 확장 등 수많은 사업을 통해 나라의 기틀을 확고히 다져, 안정을 도모하고 후세 성군으로 그 이름을 남겼다.

반면 고대 로마제국의 몰락이나 근대 베트남의 멸망을 볼 때 그 공통점은 지도자의 통치력이 부패하고 무너져 나라가 분열과 갈등 속에 빠지고 경제가 피폐해 국민은 국가에 대한 애국심과 충성심이 없이 불안과 무관심을 드러내었던 것이다.

이와 같이 한 국가의 흥망성쇠(興亡盛衰)는 지도자의 통치력과 민(民)이 분열과 반목이냐 화합과 소통이냐 에서 결정된다는 교훈을 얻을 수 있다.

‘천고마비’라 일컫는 가을의 문턱에서 우리 대한민국도 평온함과 풍성함을 위해 국민 모두가 애국심과 충성심이 충만한 가운데 분열이 아닌 화합, 갈등이 아닌 소통으로 하나 되어 준비하고 노력하며 이를 지켜 자손만대(子孫萬代)에 길이길이 물려줄 수 있길 간절히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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