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명수 슈퍼차이나연구소 대표

▲ 시장 노점에 내걸린 마오쩌둥의 초상. 신중국 건국의 아버지 마오는 중국인민의 사랑을 받는 재물신으로 추앙받고 있다.

우리는 중국을 궁금해 하지 않는다.
물과 공기 없이 살아갈 수 없으면서도 물과 공기에 대해 고마워하지도, 절박함을 느끼지 않듯이, 우리와 이웃한 중국과 일본에 대해 늘 그 자리에 있는 산과 들 같은 자연환경처럼 별달리 의식하지 않는다. 그러니 중국이나 일본이 궁금하지 않는 것은 당연하다.
우리가 그렇게 여기는 다른 근거는 이미 중국을 웬만큼 알고 있다는 왜곡된 의식 때문일 수도 있다.
자, 그러면 우리가 중국에 대해 얼마나 잘 알고 있는지 중국에 대한 단편적 상식에 대해 새롭게 확인하고자 한다. 손자병법에도 ‘지피지기 백전불태’(知彼知己百戰不殆)라고 하지 않았는가?

서명수/슈퍼차이나연구소 대표

-왜 ‘신(新)중국’인가

중국인들은 지금의 중국을 스스로 ‘신중국‘이라고 부른다. ‘신중국’은 우리가 알고 있던 ‘중국’과 무엇이 다르고 양자의 경계지점은 어디일까?
늘 우리는 우리가 살고있는 동시대를, 지난 세대와 다른 ‘새로운’시대라는 의미에서 무 자르듯 ‘신’자를 붙이곤 하지만 그 시대적 경계가 분명하지 않을 때가 적지않다.
그러나 중국과 신중국의 경계는 확실하게 구분된다.
‘신중국’은 1949년 10월 1일 마오쩌둥 주석이 톈안먼 광장에서 ‘중화인민공화국’ 성립(成立. 건국)을 선포한 이후의 중국이다. 1911년 신해혁명으로 청(淸)왕조가 무너진 후의 쑨원(孫文)의 ‘중화민국’ 체제가 흔히들 얘기하는 중국과 신중국의 과도기라고 할 수 있다면, 일본 패망후 마오의 중국공산당이 ‘국공내전’을 통해 장제스(蔣介石) 주석의 중화민국을 중국대륙에서 타이완으로 몰아낸 후의 중국이 신중국인 셈이다.
물론 ‘신중국’에서도 마오 주석이 집권한 1979년까지와 마오 사후 덩샤오핑 집권이후의 중국은 크게 달라졌다. 사실 엄격하게는 신중국시대도 마오시대와 덩샤오핑 이후를 구분하는 것이 이해하기 쉽다.
마오의 갑작스러운 사망 후, 권력을 장악한 덩샤오핑은 ‘개혁·개방’을 전면에 내걸었다. 그의 ‘흑묘백묘론’은 마오시대의 과오에 대한 논란을 접어두고 ‘검은 고양이든 흰고양이든, 쥐만 잘 잡으면 된다’는 논리로 중국의 미래발전을 이끄는 초석으로 작용했다.

장쩌민,후진타오에 이은 현재의 시진핑 주석 체제의 중국은 ‘덩 시대’와 속성을 같이한다. 우리가 동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중국인 바로 신중국인이다. 그래서 한국인이 가장 좋아하는 ‘삼국지’와 ‘수호지’ 등 역사소설 속 중국으로 현재의 중국을 읽으면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종종 발생하곤 한다.

흔히들 우리는 중국을 ‘만만디(慢慢地)의 나라’ ‘꽌시(關係)의 나라'로 알고 있었다. 지난 1일로 건국 70주년이 된 신중국의 사회주의 체제는 ‘빨리빨리’ 문화에 익숙한 한국인에게 “되는 일도 없고, 안되는 일도 없는 듯”한 느린 중국식 일처리 방식은 중국사회의 비효율을 대변하는 문화로 지적되기도 했다. 그러나 지금 중국에 가서 ‘만만디‘는 찾아볼 수 없다. 베이징과 상하이 외의 변방의 도시를 찾아가더라도 ‘빛의 속도’로 변하고 있어 속도전에 깜짝깜짝 놀라게 된다.

‘꽌시(關係)'역시 신중국을 규정하는 핵심키워드였다. 개혁개방초기 꽌시는 외국인 투자자에게 정책 결정권을 가지거나 영향력이 있는 중국 공산당의 핵심 고위간부나 고위공직자와의 친분을 통해 중국사업에 진출하는 지름길이었다. 함께 식사와 술자리를 하면서 친분을 쌓으며 꽌시를 쌓을수록 중국사업은 번창했다. 그러나 이제 그런 방식의 중국사업은 성공하지 못한다. 꽌시는 사업파트너간의 신뢰와 신용으로 대체되고 있다. 우리가 알고 있던 중국은 더 이상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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