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부모가 자녀가 아닌 손자녀에게 직접 재산을 증여하는 ‘세대생략증여(이하 생략증여)’가 증가하고 있다. 국세청의 ‘과세연도 5년간 세대생략증여 현황’에 따르면 2013~2017년간 대구에서 ‘생략증여’ 건수가 1천135건에 이르며 이를 통해 1천569억원의 재산을 물려준 것으로 나타났다. 2013년 130건이던 생략증여는 2015년 203건, 2017년 299건으로 매해 증가했다. 경북의 경우 611건의 생략증여가 있었고, 603억원, 1건당 약 1여억원의 재산을 손주가 물려받았다. 2013년 96건이던 증여건수는 2017년 159건으로 늘어났다.

이처럼 생략증여가 증가한 데에는 절세 효과 때문이다. 현행법에 따르면 생략증여는 일반 증여보다 30% 할증된 세율이 적용된다. 그러나 할증을 고려하더라도 조부모→자녀→손자녀로 두 단계를 거치는 것보다 조부모→손자녀로 한 단계만 거치는 증여가 세금 총액을 낮출 수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할아버지가 아들에게 재산을 증여할 때 내는 증여세가 1000만원에 아들이 다시 자신의 자녀(할아버지에겐 손자녀)에게 내는 증여세가 1000만원으로 전체 증여세 총액이 2000만원이라면, 할아버지가 아들을 건너뛰고 손자녀에게 바로 재산을 증여하면 1300만원이 부과되는 식이다.

하지만 생략증여가 세금 회피 창구로 쓰이거나 부의 대물림 수단으로 악용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지난해 말 국세청이 고액 자산보유 미성년자 등 변칙증여 혐의자들을 세무조사한 결과 초등학생이 임대업을 하는 조부로부터 6억5000만원 상당의 아파트를 증여받았지만 증여재산가액을 4억5000만원으로 축소 신고해 증여세를 탈루하거나 외조부가 수십억원의 부동산 처분 후 손주 명의의 금융상품에 가입하며 차명예금을 운용한 사례 등이 발각되기도 했다.

자본주의에서 합법적인 부의 축적을 존중해주는 것은 당연하다. 자신이 노력해서 이룬 부를 자식에게 물려 주고 싶은 것도 마찬가지다. 이런 정당한 이윤추구와 욕망마저 없다면 자본주의 동력은 떨어질 수밖에 없다. 그러나 미성년자의 생략증여에 대한 증여세 대폭 인상은 필요하다. 경제활동을 한 차례도 하지 않았던 미성년자에게 조부모가 재산을 증여하면 부의 불공정 시비가 발생한다. 이에 따른 실제 수익도 부모에게 돌아갈 확률이 높다. 증여세나 상속세를 제대로 내고 재산을 물려받더라도, 부자들의 자녀는 상대적으로 그렇지 못한 사람들과 비교할 때 앞선 출발선에 서게 된다. 미성년자의 생략증여에 세금을 충분히 납부해야 하는 것이 '공정사회'의 출발점이다.
저작권자 © 대경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