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종주 사회안전소통센터장

100명 안팎의 주민들이 사는 한 시골마을. 십수 년 사이 22명이 암에 걸렸다. 이 중 14명은 사망했다. 암 환자가 더 늘어날 가능성이 크다. 암에 걸린 사람은 언제 죽을지 모르는 공포에 휩싸였다. 비극이다. 전북 익산시 함라면 장점마을 이야기다.

지난 14일 환경부는 오랫동안 논란을 빚은 전북 익산시 함라면 장점마을 주민들의 집단 암 발생과 이로 인한 사망은 인근 비료공장에서 배출된 발암물질 때문이라는 주민건강영향조사를 발표했다. 그동안 환경성 암을 비롯한 각종 환경성 질환 논란을 빚은 곳은 많았다. 하지만 이번처럼 정부가 매우 깔끔하게 그 인과관계를 밝혀내고 인정한 것은 매우 드물다. 암과 같은 비특이적 질환과 관련해서는 처음 있는 일이다.

100명 안팎의 주민이 살던 자그마한 마을에 2001년 소규모 공장이 들어섰다. 마을에서 500미터가량 떨어진 곳에 공장이 들어섰으니 만약 유해물질을 내뿜으면 주민 건강에 바로 영향을 줄 수 있었다. 공장이 가동된 뒤 시도 때도 없이 역한 냄새가 나는 매연이 공장에서 뿜어져 나왔다. 2010년께는 공장에서 배출된 폐수 때문에 방죽의 물고기가 떼죽음을 하는 일도 있었다. 그동안 수차례 익산시에 민원을 제기했으나 별문제가 없다는 대답만 들었다. 공장은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듯 계속 가동됐다.

최근 몇 년 전부터 암에 걸린 사람이 부쩍 늘어났다. 한 집 걸러 거의 한 명꼴로 암 환자가 발생했다. 그 가운데 절반가량은 숨졌다. 주민들은 가까이에 공장이 있었고 그곳에서 역한 냄새가 나는 공해 물질을 내뿜고 있었지만 그로 인해 암이 발생하리라고는 상상하지 못했다. 하지만 끊임없이 암 환자가 계속 발생하고 죽어 나가자 2016년 자구책의 하나로 공장에 대한 탐문을 벌였다. 그 결과 이 공장에서 연초박, 즉 담뱃잎 찌꺼기를 가공해 비료를 만들어왔다는 사실을 알았다.

주민들은 자신들이 앓고 있거나 가족과 이웃을 죽음으로 몰고 간암 발생의 원인이 유기질비료를 생산해온 (유)금강농산 때문이라고 여겼다. 2017년 4월 17일 환경부에 건강영향을 청원했다. 석 달 뒤 7월 14일 환경보건위원회(위원장 환경부 차관)는 이 청원을 받아들여 주민건강조사에 들어갔다.

환경부는 (유)금강농산이 퇴비로 사용해야 할 연초박을 섭씨 300도로 건조·가공하는 과정에서 담배특이니트로사민과 다환방향족탄화수소가 대기 중으로 비산되어 장점마을 주민들의 건강에 영향을 끼쳐 암 발생 등의 피해를 주었다고 보았다. 연초박이 지닌 이런 특성 때문에 고열건조를 하면 안 되는데도 금강농산이 비싼 유기질비료를 만들기 위해 연초박을 KT&G 신탄진 공장에서 2009년부터 2016년까지 무려 최소 2242톤을 가져와 사용한 것으로 드러났다.

한마디로 장점마을의 비극은 막을 수 있었다. 암은 갑자기 생기지 않는다. 발암물질에 오래 누적노출된 결과가 암으로 나타나기 때문이다. 그동안 금강농산은 대기배출시설, 폐기물처리, 악취 관련 다양한 위반사례로 적발돼 익산시로부터 행정처분을 받았다. 무려 10여 차례나 된다고 한다.

익산시나 환경부 등이 그동안 더 관심을 가지고 이 공장에서 무엇을 다루고 어떤 유해물질(발암물질 등)이 배출되는지, 어느 정도 농도인지에 대해 관심을 조금이라고 기울였더라면 발암물질을 마구잡이로 내뿜는데도 아무런 조치를 하지 않지는 않았을 터이다.

둘째, 이 공장에서 몇 명의 노동자(연인원)가 일했는지는 나와 있지 않다. 주민들에게서 이렇게 높은 비율의 암 환자가 발생할 정도였다면 이곳에서 오랫동안 일했던 노동자라고 해서 몸이 온전할까? 노동부는 이 부분을 제대로 살펴왔는가. 발암물질을 다루는 공장은 아니라 할지라도 발암물질이 결과적으로 나오는 공정이 있기 때문에 이곳에서 근무했던 노동자들은 지금 당장 정밀검진을 실시하고, 그리고 앞으로도 평생건강관리수첩을 발행해 만약 이들에게서 암 등이 발생한다면 직업병으로 처리하는 것이 맞다.

셋째, KT&G의 책임은 없는가? KT&G는 거대한 기업이고 연구조직까지 갖추고 있어 담배의 유해성뿐만 아니라 연초박에 어떤 유해물질이 있는지, 어떤 공정에서 담배특이니트로소아민과 같은 발암물질이 나오는지 잘 알고 있다. 자신들이 파는 연초박이 어디로 가 어떤 공정을 거쳐 가공되는지 관심을 가졌더라면 건조공정을 거쳐 유기질비료를 만드는, 이런 어처구니없는 일은 벌어지지 않았을 수도 있다.

넷째, 앞으로 환경부 또는 환경부 산하기관에 환경성 질환 예방과 조기진단 전담조직을 두어 전국 곳곳에서 당장 문제가 되고 있는, 최근 문제가 된 곳을 우선적으로 장점마을처럼 꼼꼼하게 들여다보아야 한다.

마지막으로, 1980년대 초 미국에서는 러브캐널 불법 유해폐기물 불법 매립 사건을 계기로 관련 법을 제정한 뒤 수조 원의 슈퍼펀드 기금을 조성했다. 미국은 이 기금을 활용해 미국 전역의 유해폐기물 매립지 등을 샅샅이 조사해 오염 환경을 복원하고 피해자들을 보상해오고 있다. 이처럼 우리도 주민들에게 건강 악영향을 끼칠 수 있는 공장과 유해폐기물 매립지 등을 일제히 조사하는 관련 법 제정과 기금 조성을 통해 제2의 장점마을 비극을 막아주길 바란다.<대경일보-프레시안 기사공유협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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