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자문 한동대 교수

늦은 가을이자 겨울을 재촉하는 비를 맞으며 KTX에 몸을 실었다. 좀 두꺼운 외투차림이라 KTX안은 좀 더운 편이다. 항상 그러는 대로 창밖을 보며 계절따라 달라지는 우리나라의 풍치를 달리는 기차에서 감상했다. 아직은 겨울이 아니라서 들판에는 추수한 흔적들이 아직 크게 남아 있고, 주변의 높고 낮은 산에는 붉고 노란 단풍들이 아름답다.

과거에는 산야에 상록수인 소나무가 많아서 가을·겨울에도 푸른색이 많았던 것 같은데, 이제 활엽수들이 상대적으로 많아진 탓인지 지나치는 높고 낮은 산들이 모두 붉고 노란색이다. 이제 좀 지나면 이 단풍잎들은 낙엽이 되고 산야는 흰눈으로 덮일 것이다. ‘비행기가 뜰 수 있을까 없을까...’ 날씨에 대한 마음조임 없이 하룻 만의 포항-서울출장이 가능해진 것은 KTX개통 덕택이다. 이는 포항시민들의 생활편의를 위해서도 동해안의 발전을 위해서도 매우 바람직한 것이다. 좀 더 KTX 운행횟수가 많아지고 좀 더 많은 이 찾는 포항이 되었으면 좋겠다.

해외여행을 다니다 보니 우리나라는 사계절 있음과 강우량이 적지 않아 봄·여름·가을 걸쳐가며 산야가 푸르고 아름다움이 큰 차별성이자 특징인 것 같다. 자주 방문하는 미국의 캘리포니아뿐만 아니라, 초원 넓은 몽골은 물론이고, 열대기후인 인도네시아의 숨바섬에 가더라도 우리나라의 한여름과 같은 경관을 찾기는 힘들다. 강우량이 적거나 토양이 척박하여 수림대가 제대로 형성되지 않는 탓도 있고, 관개시설이나 스프링클러에 의해 마을 근처나 푸른 경우가 많은 것이다. 더구나 네팔, 캄보디아, 미얀마 등 일부 개발도상국들의 도시들은 강우량에 관계없이 대기오염 심하고, 흙먼지가 크게 날리고, 강들은 악취가 날 정도로 크게 오염되어 있어 큰 아쉬움을 주고 있다.

30~40년전만 해도 일본에 가면 숲이 푸른데, 우리나라는 왜 황무지 뿐일까 아쉬워하던 기억이 새로운데, 지금 우리나라는 비행기에서 봐도 고속철에서 봐도 푸르름에 싸여 있다. 지난 40~50년간 경제발전과 함께 식목에도 많은 노력을 기울여 온 탓이다.

오래 포항에 살다 보니 포항의 아름다운 장소들을 많이 알고 있다. 포항은 해안선이 긴 아름다운 해양도시라고는 하지만 도농통합시로서 내륙에 높고 낮은 산들이 많다. 포항 북부지역에 위치한 내연산계곡은 폭포와 함께 매우 아름답지만, 청하면 기청산식물원과 상옥 고원지대에 위치한 경북수목원도 방문할 만한 장소이다. 그 이외에도 포항 외곽 곳곳에 아름다운 수림대가 펼쳐져 있다.

하지만 포항도심 주변의 구릉들은 헐벗음 병을 앓고 있다. 중병이라고 까지 표현할 수는 없겠지만 생활에 불편할만한 만성고통에 시달리고 있음은 분명하다. 우선, 산불로 인한 도심 숲의 황폐함이 문제이다. 토질의 불리함에도 불구하고 1960년대 이후 지속적인 식목작업을 통해 소나무를 포함한 다양한 나무들이 군락을 이룬 경우가 많았는데, 여러 차례의 산불로 대부분 소실되어있고 복구가 쉽지 않은 상황이다. 많은 이들이 포항을 방문하고 의아하게 느끼는 것들 중 하나가 주변 산들이 벌거숭이인 것이고, 이를 어떻게 복구해나갈 것인가가 큰 과제일 수밖에 없다. 지난 40여년전 그랬듯이 조림작업을 통해 산림을 복구해 갈 수 밖에 없다고 보는데, 수림대가 파괴되고 암석이며 토양이 노출되니 강우시 다양한 사고가 발생할 수 있는 것이다.

또 다른 문제는 개발사업을 이유로 헐벗은 곳이 많다는 것이다. 포항역에 내리면 가장 눈에 뜨이는 것이 광활하게 펼쳐진 나대지이다. 원래는 수목 우거진 구릉이고 논밭이었을 것이지만, 지금은 크게 펼쳐진 개발터이다. 지금까지 5년 이상 저렇게 있었는데, 언제나 제대로된 역세권으로 개발될 수 있을지 모르겠다. 또한, 산업도로를 타고 영일만항으로 가다 보면 산업단지 못 미쳐 꽤 울창하던 수목들이 제거되고 절토·성토 중 공사가 중단된 듯한 거대한 황무지가 나타난다. 이곳은 산업도로 및 대학교와 근접하여 경관상 문제가 더욱 큰 듯한데 언제나 사업이 재개될지 불투명하니 더욱 문제라고 본다.

포항시에 이러한 곳들이 적지 않은데, 장기간 도시의 흉물로 남아 평소에는 먼지의 발생원이 되고, 우기 시에는 토양유실 및 산사태의 위험원이 되니 문제인 것이다. 과거와 다르게 지자체에서도 압축도시 및 저성장정책을 시행하고 있으니, 이러한 문제들이 새로 생겨나지는 않을 것으로 보아지지만, 이렇게 중단된 사업지들의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야 할것인지 지혜를 모아야 할 것이다. 예정되었던 사업들이 경제불황 등으로 인해 사업성 저하로 진행되지 않으니 사업주체들도 어려움이 클 것이지만 도시를 이렇게 흉물스럽게, 헐벗은 채로 방치해 둘 수는 없는 것이니, 임시로라도 잘 자라고 아름다운 꽃을 피우는 일년생 유채 등을 심는 것도 고려해 보아야 할 것이다. 사업지 둘레는 담장을 치는 경우가 많으나 강우에 쉽게 무너지므로, 가는 대나무 등 속성수를 주변에 식목하는 등 방법을 찾아 흉한 경관을 임시로라도 가릴 수 있도록 하면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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