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여백
HOME 오피니언 기고
[기고]주민등록증 없이 선거를 하는 영국 이야기오병규 의성군선거관리위원회 사무과장
   
올해 영국은 지방선거를 치렀는데, 우연한 기회에 선거를 참관하게 되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캠브리지 시를 비롯하여 248개 지역에서 지방의원과 시장을 선출했다. 주로 정당이 주도하여 선거운동을 하는데, 지방의회의석과 시장의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서 치열하기는 우리와 마찬가지였다. 언론에서 상대방을 맹렬히 공격하는 것이나 후보자들의 선거캠프 활동이나 투표와 개표 등 선거의 절차는 우리와 매우 흡사했다.

그러나 거리에서 선거운동의 모습은 우리와 많이 달랐다. 고성능의 앰프를 틀고 다니는 홍보차량은 없었으며, 운동원들이 도열하여 인사하는 모습도 찾아보기 어려웠다. 심지어 선거운동을 위한 현수막도 잘 보이지 않았다. 혹시, 캠브리지 시에서 시가지의 미관을 해치므로 이를 금지한 것이 아닐까하는 의구심도 들었다. 대체 선거운동을 어떻게 하지?

후보자들의 선거운동은 주로 호별방문이라고 한다. 후보자들의 자원봉사자들이 집집마다 방문하며 유권자들에게 후보자에 대해 자세한 설명하고, 투표에 동의를 구하는 방식으로 주로 선거운동을 한다. 대신에 거리에서의 연설이나 홍보는 시민들에게 피해를 주기 때문에 자발적으로 자제한다고 한다. 곰곰이 생각해보면 사람을 직접 만나서 후보자에 대한 설명을 구체적으로 주고받을 수 있는 이런 선거운동 방식이 진정 효과적이고, 유권자에게도 정확한 정보를 얻을 수 있는 것은 분명해 보였다.

반면, 우리나라에서는 호별방문 자체가 위법이다. 과거의 잘못된 선거관행으로 금품을 줄 수 있는 여지를 없애기 위하여 아예, 선거운동과 관련하여 유권자의 집에 들어가지 못하도록 한 것이다. 그래서 선거 때만 되면 유권자의 집에 들어갔느냐 아니냐를 두고 서로 신고를 하고, 유권자는 깜깜이 선거라고 불평을 한다.
우리와 다른 영국의 선거문화는 그 외에도 많이 보인다. 영국에서는 선거운동기간이 있긴 하지만, 그 기간 외에 선거운동을 한다고 해서 제지하지는 않는다. 자신이 지지 하는 사람이 있다면 자신의 집에 지지 현수막이나 벽보를 붙일 수도 있다. 운동을 하기 위하여 별도로 신고하거나, 방법을 일일이 점검하는 사람도 없다

이와 달리, 우리나라에서는 거리에 사람들이 나와서 방송을 하고, 특이한 복장으로 시선을 끌고, 운동원과 후보자들은 목소리 높여 인사까지도 한다. 우리나라의 선거제도는 과거의 부정선거 경험 때문에 공정성을 매우 중시하는 형태로 발전하였기에 영국과 같은 정치선진국에 비해 상대적으로 선거운동의 자유가 상당히 제한되어 있다고 볼 수 있다. 이런 법으로 제한된 틀 내에서 선거운동을 허용하는 업무를 해온 나로서는 영국의 선거운동은 너무나 자유로워 보였다.

선거절차도 다소 간편하였다. 영국에는 주민등록증이 없다. 그래서 지역에 누가 살고 있는지 모른다. 선거 때가 되면 투표를 하고자 하는 사람들이 선거인 명부 작성자에게 등재 신고를 하여야 투표를 할 수 있다. 투표할 때도 투표소에 가서 주소와 자신의 이름을 말하기만 하면 투표용지를 준다. 신분확인이 별도로 없다. 너무나 신기한 장면이어서, 투표관리 종사원에게 물어봤다.

“혹시 여기 살고 있지 않은 사람이 투표하거나, 다른 사람이 대신해서 거짓 투표하는 경우가 없나요?” 그 종사원은 오히려 나를 이상하게 봤다. “왜 그런 짓을 해요?” 민망했다. 그런 것은 아예 상상도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영국에서는 정치인을 봉사자로 본다. 정치인 대부분이 자신의 직업을 가지고 있고, 국회의원이라고 해도 상당수가 대중교통이나 자전거를 타고 국회의사당을 다닌다. 기사를 두고 다니는 정치인은 정말 손에 꼽을 정도다.

이들의 정치 신뢰는 선거문화를 개선시키는 작용도 한다. 봉사를 하려는 사람이 괜히 고생을 하기 위하여 돈을 쓰거나, 위법을 하거나, 거짓말을 하지는 않는다는 굳은 믿음을 그들은 가지고 있었다. 후보자의 홍보물을 집으로 배달받지 않아도 유권자들은 자발적으로 언론과 인터넷을 통해 선거정보를 찾아본다. 그럼에도 45퍼센트 이상의 투표율을 기록하는 모습을 보면서 ‘선거의 참여가 시민의 권리와 의무다.’ 라는 시민의식이 오랜 세월동안 다져졌다는 것을 엿볼 수 있었다.

우리의 선거와 정치는 이렇게 될 수는 없을까? 국내에 오자마자 신문 속에 어느 지방자치단체장이 뇌물수수로 당선무효되었다는 보도를 마주하고는 다시 기분이 씁쓸해졌다. 결국 정치인의 신뢰는 선거에서부터 시작되는 것인데, 금품선거를 한 정치인이 금품정치를 할 가능성이 높으며, 이는 유권자의 정치 신뢰에 커다란 상서를 주는 게 아닌가.

이제 국회의원 선거가 4개월 남았다. 곧 예비후보자 등록을 하고 꿈을 품은 출마자들은 각자 선거운동을 시작하게 된다. 우리 유권자는 이제 신뢰하는 정치와 바른 선거를 위하여 무엇을 해야 할지 생각해 보아야 한다. 가장 중요한 주체인 유권자가 어떻게 행동하느냐에 따라 후보자가 바뀌고, 우리의 선거와 정치는 달라질 것이다.

이미 다른 나라에서는 누리고 있는 자유로운 선거, 신뢰하는 정치는 단순히 국회에서 제도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과거의 잘못된 관행에 타협하지 않는 유권자의 행동이 시간을 들여 쌓여가는 동안 만들어지는 것이라 생각된다. 이번 국회의원선거에서 현명한 유권자의 모습을 기대해본다.

대경일보   webmaster@dkilbo.com

<저작권자 © 대경일보,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대경일보 의 다른기사 보기
icon인기기사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여백
여백
여백
여백
여백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