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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조 때 독도 영토비 건립 건의한 신하가 있었다경북도 독도사료연구회, 승정원일기와 일성록 기사 발견
   
▲ 이복휴의 독도영토비 건립 건의 기사가 실린 승정원 일기
   
▲ 같은 내용이 실린 일성록
   
경북도 독도사료연구회가 연구회 과제 수행 중에 조선 정조 당시 예조정랑 이복휴(1729~1800)가 독도에 영토비를 세우자고 건의한 기사를 찾아냈다.

'승정원일기'와 '일성록' 정조 17년(1793년) 10월1일자 기사로, 우산도를 ‘울릉외도(蔚陵外島)’라 칭하면서 이복휴가 우산도에 영토비를 세워 우리 땅임을 증명하자고 건의한 내용이 실려있다.

이복휴는 "신이 본조(예조)의 등록을 살펴보니 울릉외도는 그 이름이 松島로 바로 옛날의 우산국입니다. 신라 지증왕 때 이사부가 나무사자로 섬사람들을 겁주어 항복을 받았습니다. 지금 만일 송도에 비를 세워 이사부의 옛 자취를 기술한다면 그 섬이 우리나라 땅 임을 증빙할 수 있을 것입니다”라고 건의했다.

연구회 소속 유미림 박사(한아문화연구소장)에 따르면 이복휴가 말한 울릉외도는 지금의 독도를 가리킨다.

기사의 우산국은 '동국문헌비고'(1770년)에서 울릉도와 우산도 모두 우산국 땅이라고 기록한 것을 근거로 작성한 것으로 봤다.

또 마쓰시마(松島)는 당시 일본인들이 우산도를 부르는 호칭이었으며 울릉외도가 바로 송도라고 했으므로 '울릉외도=송도=우산도'가 모두 같다는 공식이 성립한다고 말했다.

울릉외도라는 명칭은 이복휴가 처음 사용하는데, 이는 그가 독도를 우산도보다 울릉도의 속도임을 잘 드러낸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정조는 영토비 건립 제안을 수용하지 않았다.

이미 수토제가 정착돼 울릉도 및 속도에 대한 영유권이 확립돼 있어서 굳이 영토비를 재차 건립할 필요성을 못느낀 결과라고 유박사는 설명했다.

유 박사는 이 사료의 의의로 울릉외도하는 명칭을 통해 독도가 울릉도 부속 도서임을 분명히 드러내고 있으며, 일본의 독도침탈 야욕을 예상해 대응책을 강구하려 했다는 점, 조선의 관료가 영유권 확립을 구상한 것은 조선 정부의 독도 존재 인식을 증명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경북도 독도사료연구회는 지난 2010년 발족해 지난해까지 9년간 일본사료 21편을 번역 및 출판했고 올해부터 국내사료 번역을 시작했다.

올해 조선왕조실록과 승정원일기, 일성록, 비변사등록에서 울릉도와 독도 관련 기사를 발췌 번역하고 있으며 정리된 내용을 연말에 경북도에 제출할 예정이다.

서장환 도 독도정책과장은 "이번 사료는 조선의 왕(정조)과 관료가 우산 즉 독도의 존재를 분명히 인식하고 있었음을 보여 주는 것"이라며 "사료 분석을 통한 역사의 진실을 규명하는 연구 활동을 집중 지원하겠다"고 말했다.

이임태 기자 기자  sinam77@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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