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재일 수필가

벌판을 산책하다가 시냇가에 자라는 갈대를 보았다. 겨울에도 자라는가 싶어 살펴보니 푸른색은 사라졌지만 말라죽지 않고 당당하게 살아있다. 올겨울은 무난히 넘길 것 같다. 검색을 해보니 여러해살이라고 한다.
산에는 억새가 많다. 멀리서도 하얀 수염이 보인다. 역시 겨울이라고 죽지는 않는다. 우리에게는 억새가 더 익숙하다. 구분도 잘 안 된다.
그런데 주변의 가로수들은 잎이 모두 떨어져 가지만 앙상하다. 어떤 나무에는 말라서 비틀어진 잎이 그냥 붙어 있는데 오히려 추하게 보이기도 한다. 약한 갈대가 겨울에는 더 잘 어울리는 것 같다.
바람이 불어오니 갈대가 흔들린다. 갈대는 산들바람에도 흔들릴 정도로 약하다. 그러나 쉽게 꺾어지지 않는다. 일부러 손으로 꺾지만 않는다면 강풍에도 넘어질 것 같지 않다. 유연하기 때문이다.

주위에 산책하는 사람이 많은데 무엇인가 생각하며 걷는 듯하다. 이런 모습을 보니 갑자기‘인간은 생각하는 갈대다’라는 말이 생각났다. 프랑스의 파스칼이란 철학자가 지은 책 팡세에 나온 말이다.
사람과 갈대를 어떻게 생각이란 단어로 연결하게 되었을까? 주변의 지식을 유연하게 받아들인다는 말이 아닐까? 경직된 세상에 갈대와 같은 유연성이 필요하다는 의미로 받아들이면 될까? 생각에 생각이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 그러다가 이런 갈대의 성질과 인류의 문명을 연결하여 생각해보았다.

갈대는 불과 관련이 있다. 건조한 봄철이 되면 산불이 많이 난다. 이때 갈대나 억새가 불쏘시개 역할을 하는 것 같다. 여기에 불이 붙으면 그야말로 순식간 번진다. 고려의 장군 최영이 반란군을 진압하기 위해 갈대씨를 연에 묶어 날려보내 심은 후 몇 개월을 기다렸다가 그 갈대가 무성히 자라자 이를 이용해 화공법을 써서 토벌했다는 이야기도 전해진다.

산불이 나면 생태계가 파괴되어 회복에 몇십년이 걸린다는 이야기도 있다. 그러나 갈대밭은 산불이 나더라도 회복이 빠르다. 갈대밭이나 억새밭에 화전을 해서 농사를 짓기도 했다. 잡목이 타서 나오는 재가 거름이 되는 것이다.
그리고 갈대에 불이 잘 붙기 때문에 산불의 위험도 있었지만 한편으론 문명의 시작되는 계기가 된 것이라고 생각된다. 인류가 처음 불을 접할 때는 분명 갈대와 같은 불쏘시개를 이용하였을 것이다.

또한 갈대를 이용하여 기록을 하였다. 갈대는 종이를 만드는 재료였다. 서양의 파피루스는 갈대의 일종이었다. 종이는 생각을 기록하는 매체다. 인류는 종이로 만든 책으로 지식을 축적하였다.
종이가 경쟁력이 있는 것은 얇아서 유연하기 때문이다. 두꺼워 구부릴 수 없는 목판에는 간단한 기록은 가능하지만 많은 지식을 넣는 책을 만들 수는 없다.
유연하면 너그러워진다. 외부의 지식을 받아들일 수 있고 갖고 있는 지식을 수정할 수 있다. 또한 외부의 지식을 다른 것으로 발전시킬 수 있다. 보고 들은 것을 통하여 추론을 통해 볼 수 없거나 듣지 못한 것도 상상을 할 수 있다. 전문가는 상상력이 있어야 한다. 이런 상상을 받아줄 수 있는 것 또한 유연함이다.

그러나 경직된 사고는 타협이 불가능하다. 다른 것을 인정하기 어렵다. 모르는 것에 대한 배척으로 나오게 된다. 굽어지지 않기 때문에 부러질 수 밖에 없다. 어릴 때 학교에서 다루지 않는 책을 많이 읽었다. 책에는 친구들이 하는 말과 다른 내용도 많았다. 작가의 상상력에서 나온 공상과학도 있었다. 이런 내용을 이야기하면 엉뚱한 말이라는 반응이 나오곤 했다. 허황된 이야기를 한다며 ET라는 별명을 붙여준 친구도 있었던 기억이 있다.
그때는 떠도는 말이라도 힘센 친구가 인정을 하면 정설이 되는 분위기였다. 나는 싸움도 잘하지 못하고 공부도 별로 잘하지 못해 말에 힘이 없었다. 지금에 와서 생각하니 남의 생각을 인정하지 않는 문화가 아쉬웠다. 공상과학의 이야기 중 현실화된 것도 많았다.

요즘은 책뿐만 아니라 SNS나 유튜브와 처럼 책에 나오지 않는 정보를 얻을 방법이 과거에 비해 많아졌다. 그러나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듣고 싶은 것만 듣는 확증편향 때문에 오히려 사고를 경직되게 만드는 것 같다. 특히 가짜뉴스도 많아져서 인쇄물이나 웹에 나오는 말도 믿기 어려워졌다. 경직된 세상이 너무 혼란스럽다.

2019년이 가고 2020년이 왔다. 돼지띠에서 쥐띠해가 되었다. 12가지 동물을 12지로 연결하여 갑자기년법을 만든 것도 하나의 상상력이다. 그리고 상대적이지만 돼지보다 쥐가 훨씬 유연하다. 올해는 갈대나 억새처럼 보다 유연해졌으면 하는 바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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