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재일 수필가

우연히 동대구역 옆의 고가다리 교각에서 ‘노상방뇨금지구역’이라는 표지를 보았다. 이런 구역도 있나 싶어 살펴보니 적발되면 경범죄처벌법 제3조 1항 12호에 의해 과태료를 부과한다고 적혀있다.

왜 이런 표시를 하였을까 생각해보았다. 이곳에 노상방뇨를 하는 사람이 많이 있기 때문에 하는 경고로 보인다. 누군가 노상방뇨를 하려다가 이 경고를 보고 그만 둘 수도 있겠다.

그런데 노상방뇨를 해도 되는 구역은 없다. 다른 곳에서도 노상방뇨를 하면 경범죄로 처벌받는 것은 마찬가지다. 이곳이 법적으로 다른 지역과 구별되는 특별한 곳이 아니라는 의미다.

공공장소에서 노상방뇨는 당연히 금지된다. 노상방뇨 허가구역이 있을 리 없다. 그런데 노상방뇨금지구역 표시는 다른 곳에서는 하여도 된다는 착각을 유도할 수 있지 않을까? 노상방뇨금지구역이 따로 지정되어 있다면 반대로 허가구역도 있다고 유추할 수 있기 때문이다. 논리적으로 복잡해진다.

노상방뇨는 금지구역이 아니라는 이유로 함부로 할 수 있는 행위는 아니다. 상식적으로 아무데서나 하여서는 안 된다는 사실은 누구나 인식하고 있다. 그래서 경범죄로 처벌한다. 다만 인적이 없는 곳에 공중화장실이 없어 현실적으로 막지 못하고 단속이 안 되는 것은 별개의 문제다.

행정법학적으로 허가는 일반적으로 금지된 행위를 특별한 경우에 한해 허가하는 것이라고 한다. 금지되는 행위는 남에게 피해를 입히거나 공공질서를 문란하게 하는 경우다. 그리고 상대적으로 일정한 지역에만 허용하거나 금지할 때는 구역을 지정하게 된다.

법은 최소한의 도덕이라고 한다. 법에 죄로 정하지 않았다고 해서 모두 허용되는 것도 아니다. 법 이전에 양심상 하지 않아야 하는 행위는 많다. 예를 들어 살인이나 절도는 법으로 죄로 정하지 않더라도 누구나 죄라고 생각한다. 살인은 비록 형법에 처벌하는 조항이 있기는 하나 굳이 길거리에 ‘살인금지’ 같은 표시를 하지 않는다.

그런데 반드시 도덕과 관련이 없는 죄도 있다. 예를 들어 교통위반은 무조건 파렴치한 행위라고 볼 수 없기 때문에 금지하지 않으면 허용된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무단횡단은 옛날에는 죄로 여기지 않았다.

이런 행위는 필요에 의하여 법으로 금지하고 있다. 법치주의 국가에서 죄는 법률로 정해야만 죄가 된다는 죄형법정주의가 있다. 그리고 이는 누구에게나 알려져야 한다. 모르고 하는 행위가 죄가 되면 억울하다. 금지표시는 이런 행위는 죄가 된다는 것을 알려주는 것이다.

역 주위를 둘러보니 노상방뇨 뿐만 아니라 다른 금지표시가 많다. 주로 안전과 관련된 행위인데 특히 주차금지라는 표시는 다른 곳에서도 많이 볼 수 있다. 어쩌면 시내에서 가장 많이 읽을 수 있는 글자인 듯 하다.

노상방뇨에 대해 생각해 보면 어쩌면 남성들에게 추억이 있는 행위로 볼 수 있다. 평균적인 대한민국 남성들은 군대에서 야외훈련을 하면서 노상방뇨를 많이 하였다. 평상시 아주 젊잖은 신사들도 예비군복만 입으면 노상방뇨를 한다는 말도 있다. 굳이 군대와 관련이 없더라도 노상방뇨를 한번도 안해본 사람이 거의 없을 것이다.

길거리에서 노상방뇨를 하는 사람들은 화장실이 없기 때문이라고 항변한다. 누구나 외출하였다가 화장실이 없어서 고생한 경험은 있을 것이다. 공중화장실을 많이 설치하여야 하는데 아직 법적으로 의무화된 것은 아니다
특히 차로 장기간 운전을 하다가 화장실이 없어 어쩔 수 없이 노상방뇨를 하게 되는 경우가 있다. 휴게소에 갈 수 없으면 중간에 차를 세우고 노상방뇨를 한다. 얼마전 모 영화배우가 남편이 소변을 보려고 고속도로 한가운데서 차를 세우자 같이 차 밖으로 나왔다가 차에 치어 숨진 사건도 있었다. 과거 프랑스의 베르사이유 궁전에도 화장실이 따로 없어 귀족들이 정원에서 용변을 보았다는 기록도 있다.

노상방뇨금지구역이란 표시를 보니 한편으로는 우려되기도 한다. 굳이 이렇게 겁을 주어야 하나. 상식적으로 해서는 안 되는 행위라고 현실적으로 모두 금지할 수 있을까. 억지로 금지하는 것이 효과가 있는 것일까.

요즘 길거리에 금지표시가 하도 많아서 무감각해진다는 느낌이 들고 있다. 금지를 강조하면 오히려 부추기는 효과도 있다. 하지 말라고 하면 꼭 위반하는 사람이 있게 마련이다. 모르는 사람이 볼 때 이곳은 노상방뇨를 많이 하는 곳이라는 사실을 알려주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성숙한 시민이 되기 위한 준법정신과 생리적 현상간의 갈등을 한번 고민해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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