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야의 합의를 기다리다 지친 중앙선거관리위원회 독립기관인 선거구획정위원회(획정위)가 지난 3일 '선거구획정안'을 마침내 국회에 제출했다. 앞서 더불어민주당과 미래통합당 등 여야는 4·15 총선 국회의원 선거구 획정 기준을 마련하기 위해 최근까지 협상을 시도했지만 합의에 이르지 못했다. 각 당의 이해가 첨예하게 얽혀져 있고, 자기 당의 이익을 위해 주장해 지금까지 처리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획정위는 2019년 1월 기준 '표준인구'에 따른 인구 하한 13만6천565명을 기준으로 선거구를 획정했다. 이에 따라 국회의원 수는 대구 12개, 경북 13개를 그대로 유지하게 됐다. 하지만 선거구의 경우 대구는 현재 그대로 획정됐지만 경북은 4개가 조정된다. 조정되는 경북의 4개 선거구는 △안동이 안동예천 △영주문경예천은 영주영양봉화울진 △상주군위의성청송은 상주문경 △영양영덕봉화울진은 군위의성청송영덕이다. 영양영덕봉화울진이 산산이 쪼개졌다.

이를 두고 영양영덕봉화울진을 지역구로 두고 있는 강석호 의원의 반발이 거세다. 자칫 공천을 받지 못할 것이라는 우려에서다. 여야도 뒤늦게 부산을 떨고 있다. 여야 원내대표단은 4일 획정위가 국회에 제출한 선거구획정안의 재의를 요구하기로 합의한 데 이어 국회 행정안전위원회는 전체회의를 열어 재의 요구를 의결했다. 이에 따라 획정위는 열흘 안에 국회의장에게 새로운 획정안을 다시 내야 한다. 획정위가 여야 합의 실패에 따라 처음으로 자체 기준을 적용한 획정안을 만들어 냈지만 거부당한 꼴이 됐다. 여야는 자기들이 합의한 선거구 최소 조정 원칙을 획정안이 반영하지 않았다고 재의 사유를 댔다. 분리 선거구 4곳에 통폐합 선거구 4곳이니 너무 많다는 거다. 특히 속초·철원·화천·양구·인제·고성 등 6개 시·군을 하나로 묶은 것을 문제 삼았다. 농산어촌의 지역 대표성을 강조한 선거법 취지에 어긋난다는 지적이다. 제시된 근거는 일리가 있다. 하지만 일찌감치 예견된 선거구획정안을 두고 부랴부랴 반발하는 모습이 씁쓸하다. 한국정치의 구태를 보는 듯하다.

여야는 역대 총선에서도 선거일에 임박해서야 겨우 선거구 획정을 합의했었다. 17대 총선은 선거를 37일, 18대 47일, 19대 44일, 20대 42일을 각각 앞두고 선거구 획정을 마무리지었다. 이제 선거구 획정은 정말 발등에 떨어진 불이 됐다. 여야가 획정안 본회의 처리 D-데이로 못 박은 날이 5일이어서다. 재외선거인명부 작성 시한이 6일인 점을 고려한 합의로 이해된다. 문제는 지금 논란이 되고 있는 사안이 그렇게 짧은 시간에 해소될 수 있느냐는 의문이다. 국민대표를 뽑는 전국 단위 선거가 국회의 직무유기 탓에 재외선거인명부 작성 일정부터 삐걱댄다면 민주주의 국가의 수치다. 여야는 이미, 총선 1년 전으로 법이 정한 선거구획정안 확정 시한을 어긴 '범법'을 저질렀다. 전투에 나서는 장수가 싸워야 할 장소가 모른다는 것은 말이 안된다. 선거구를 획정을 서둘러야 한다.
저작권자 © 대경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