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렬 포항지진트라우마센터장·정신과 전문의

요새 대구·경북 시민들이 느끼는 공통적 감정은 불안일 것이다. 갑작스레 닥친 코로나 확산으로 인해 엄마는 엄마대로, 아빠는 아빠대로, 아이들이나 어르신들은 또 그들대로 다 각자의 상황에 따른 불안에 떨고 있다.

“나도 걸리면 어떡하지?”, “내 가족이 걸리면?”은 다반사로 느끼는 불안일 것이고, 코로나로 인해 직장과 사업이 흔들려 오는 불안, 입시나 취업 계획이 틀어져 오는 불안, 심지어 오랫동안 준비해 온 결혼식과 신혼여행이 엉망이 되어 오는 불안 등 각자 상황에 따른 불안들로 인해 우리 모두가 힘들다.

확진자와 그 가족의 경우는 불안 정도가 아니라 공포 수준일 것이다. 다른 사람은 걸릴 것을 걱정하지만, 확진자는 이미 걸린 병으로 혹 잘못되면 어쩌나 하는 걱정에 떨어야 하니 불안의 급이 다를 것이다. 거기다 본의 아니게 바이러스 전파통로가 된 것에 대한 충격도 클 것이다. 나에게 바이러스를 옮긴 사람, 내가 바이러스를 옮겨준 사람에 대한 복잡한 감정은 혼자 감당하기 힘들 것인데, 감염으로 인해 모든 사회적 관계까지 차단되어 있으니 얼마나 힘들 것인가. 정말 모두가 힘든 시기, 힘든 ‘감염트라우마’의 한가운데를 통과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 힘든 시기를 잘 이겨내는 비결은 무얼까?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겠지만, 필자는 딱 두 가지를 우선 권하고 싶다.

첫째, 불안해 할 것 이상으로 불안해하지 말자. 불안 자체는 우리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방어반응이다. 그래서 감염에 대한 불안으로 인해 우리는 열심히 마스크를 챙겨 쓰고 부지런히 손을 씻게 된다. 그러나 그 불안이 근거 없는 억측으로부터 나오거나 그 정도가 너무 심해 자기 자신을 지키기 위한 불안이 오히려 자기를 파괴한다면 이는 병(病)적인 것이다.

얼마 전 한 지인이 심각하게 하는 말이 “아무래도 나는 이번 코로나 무사히 못 넘길 것 같은데, 차라리 지금 걸리는 게 낫지 않을까? 나중에는 병상이 없어 입원도 못 할 텐데…” 이러는 거다. 바로 이런 식의 인지왜곡(認知歪曲)에 근거한 안절부절은 하지 말아야 한다. 이게 왜 인지왜곡인지 모르겠다고? 코로나 환자랑 계속 접촉해야 하는 사람이 아니라면, 일반적으로 코로나에 감염될 확률은 1/5000 이하다. 그것도 우리나라 확진자 수가 1만명까지 간다 했을 때 그렇다.

그런데 이 양반은 뭘 근거로 자기가 코로나 예약자라고 믿는 건가. 또 하나 향후 병상 부족이 더 심해질 거라는 가정도 근거가 없다. 사실 초기에 우리 정부가 많이 우왕좌왕했던 건 사실이고 지금도 일부 그러고 있지만, 이제 정부는 그동안 신천지 뒤지기에만 몰아넣었던 의료자원을 앞으로는 고위험군 중심으로 배분하겠다고 발표하며 병상확충에 적극 나서는 노력을 보이고 있다.

반면 감염자 증가세는 조금 둔화되는 것 같으니 오히려 나중에 치료받는 사람이 더 적절한 입원치료를 받을 가능성이 높다. 이렇게 논리적으로 따져보면 전혀 근거가 없는 것을 가지고 불안해하는 것만이라도 줄여나가도록 노력해보자.

둘째, 코로나 감염으로 못하는 것 빼고 할 수 있는 것은 다 해보자. 어제 대구 모 병원에서 코로나로 입원한 어떤 환자가 자꾸 병실을 나오려 해 그걸 제지하니 그러지 않아도 고생하는 간호사에게 심한 말을 했다는 기사를 보았다. 그런데 그 환자가 왜 병실에서 나오려 했을까? 기사에 의하면 일반 입원환자처럼 휴게실 소파에 앉아 텔레비전을 보고 싶어서였단다.

그 기사 아래 이 철없는 분에 대한 질타가 줄줄이 댓글로 달렸던데, 사실 그 댓글 다는 사람들도 하지 말라 하면 꼭 더하고 싶었던 기억 한 두 가지는 있을 것이다. 그게 사람이다. 그러나 아무리 우리 속성이 그렇다 해도 지금은 그럴 때가 아니다. 코로나 감염을 피하기 위해 하지 말라는 것은 무조건 하지 말아야 한다. 이건 생명에 관한 문제다.

대신 코로나로 숨죽이고 살아야 하는 세상에서도 아직 할 수 있는 것들을 찾아서 해보자. 텔레비전 안 보면 죽나? 병실에서 혼자 할 수 있는 것 중에 텔레비전 보는 것 못지않게, 아니 그 이상 재미있는 게 정말 없을까? 그런 걸 찾는 재미, 그리고 그렇게 찾은 걸 해보는 재미, 그것도 괜찮지 않을까 싶다. 어디 병실에서의 소일거리뿐이겠는가. 코로나를 피해 할 수 있는 유익한 일, 보람있는 일, 심지어 돈 되는 일, 한번 열심히 찾아서 하다 보면 그것이 스트레스도 견디고 불안도 다스리는 가장 좋은 방법이 될 수 있다. 그렇게 하루하루를 징검다리처럼 디디고 나가다 보면 결국 언젠가 이 코로나 시국도 끝나지 않겠는가.
저작권자 © 대경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