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순심 대구대학교 교수

 

무작정 산책 나왔습니다.
고향 마을 해안가에 핀다는 갯봄맞이를 볼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하며 천천히 걸어봅니다. 하지만 만남은 그렇게 쉬이 이루어지지 않았지요. 둘째 날 다시 그 길을 따라 걸으며 공간지각능력 부족한 한 여인 때문에 웃습니다. 자신의 부족함에 관대하여 차마 비난하지 못하고 웃습니다.

해 질 무렵이 다 되어서야 그들과 마주하였지요. 만나고 보니 지나던 길옆에 바로 있었던 것을 어찌 보지 못하고 몇 번이나 그대로 지나쳤던 걸까요. 눈앞에 두고도 모르는 사랑이 있다더니, 너무 작아서 또 잘 보이지 않던 갯봄맞이 입니다.

그들은 바닷물이 드는 바위틈 작은 공간에 피어 있었지요. 바닷물에서도 육지생물이 살 수 있는 건가요? 당시는 염생식물이 있다는 것조차 모르던 터라 그 광경이 가히 믿기지가 않았습니다. 동해안의 거친 바닷바람과 소금물 습지에서 어찌 이토록 곱고 예쁘게 피어날 수 있었던 건지. ‘소금물이 다 날아간 땅이겠지…’ 하며 스스로 위로해 보아도 짠한 마음은 그대로입니다.

꽃을 만나면 먼저 향기와 마주하게 되는데, 이날은 어찌 된 일이었는지, 향기도 잊고 카메라 셔터만 눌러댔던 거 같아요. 사랑 앞에 침착하라 하였거늘, 모든 것을 잊게 했던 날. 그들은 그렇게 나에게로 온 꽃입니다.

갯봄맞이는 멸종위기 2급으로 지정되어 자생지 보호가 필요한 식물입니다. 그래서 크게 소문도 낼 수 없는 꽃이기도 하지요. 지난 겨울 그들이 피었던 이 길을 참 많이도 서성였습니다. 하지만 그들을 미리 만나러 오던 길임을 몰랐지요. 눈으로 보고 나서야 끄덕이는 사랑처럼, 미리 준비하고도 몰라 이리 헤매고서야 그들 앞에 섰던 것이지요.

그해 5월은 내게 첫봄인 양 새로웠습니다. 소리 없이 전하던 길벗의 노래, 그 무언의 마음으로 피어난 갯봄맞이를 만났지요. 어느 것 하나 우연인 것이 없었습니다. 겨울의 이른 걸음도, 그 묵언의 수행도 모두 겨울에 준비한 봄이었던 겁니다.

갯봄맞이 만나던 날을 추억하며

저작권자 © 대경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