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재일 수필가

지난주 하루는 재택근무를 했다. 사무실에서 사회적 거리두기를 위해 의무적으로 하라고 했다. 연초에 저녁이 있는 삶을 위한 재택근무 권장 계획이 나왔지만 그저 그러려니 했는데 코로나 사태가 터지자 강제로 하게 되었다.
평일 낮에 집에 있는게 영 어색하다. 익숙하지 않다. 그래도 확진 자와 접촉해서 자가 격리하는 사람보다는 사정이 낫다고 생각했다. 갇혀 있는 것이 아니라서 잠깐 외출을 해도 된다.

휴가는 아니라서 일을 해야 한다. 집안에 일할 여건이 되어 있지 않다. 전에도 종종 일거리를 집에 갖고 오긴 했지만 워드작업이지 공식적인 업무처리는 아니었다. 재택근무는 실제로 업무를 공식적으로 처리한 산출이 있어야 한다. 온라인으로 부하직원의 기안을 검토하거나 지출 승인을 해야 한다.

아내는 출근을 하고 집안에는 나와 두 딸만 남아 있다. 대학생인 큰 딸은 온라인 수업을 한다. 고등학생인 작은 딸도 4월 6일에 개학을 하지 않으면 온라인 수업을 하게 된다. 모든 일이 온라인이 될 판이다.

온라인 업무를 위해 컴퓨터 환경을 설정해야 한다. 전자결재시스템의 원격접속 프로그램을 설치해야 한다. 전날 퇴근 후 프로그램을 다운받아 깔았다. 인증서 승인, 휴대폰 본인 확인 등 절차가 복잡했지만 그럭저럭 마쳤다.

아침에 재택근무 출근을 찍을 때까지는 프로그램은 멀쩡했다. 그러나 시스템 과부하가 걱정되니 잠시 로그아웃한 뒤 10시쯤 다시 접속하라는 안내를 받고 빠져나오니 갑자기 먹통이 되었다. 컴퓨터 바이러스인가 싶어 파일을 찾으려 했지만 코로나 바이러스처럼 보이지 않는다.

할 수 없이 딸에게 노트북을 빌렸다. 프로그램을 다시 설치했다. 인증과 확인과정을 반복했다. 전산실에 전화를 걸어 도움도 받았다. 오후 3시가 넘어서 간신히 개통할 수 있었다. 시스템에 접속하니 20여개가 넘는 기안이 올라와 있다. 그럭저럭 처리하고 나니 하루가 그냥 다 지나가 버렸다.

데스크톱은 계속 먹통이다. 앞으로도 계속 재택근무가 이어질 것 같아 할 수 없이 전용노트북을 구입하기로 했다.

이래저래 재택근무 첫날은 출근하는 것보다 훨씬 힘들었다. 잠시도 쉴 틈이 없었다. 그래도 나는 업무처리는 제대로 했다. 나중에 들어보니 옆 부서의 모 팀장은 끝내 집안에서 업무처리가 불가능했다고 한다.

재택근무를 해보니 이제 변형된 형태의 근무를 피할 수 없음을 느껴진다. 사무실에서도 대면보다 온라인 접촉이 강조된다. 보고도 전산망으로 하라고 강조한다. 일상적인 업무는 이미 전자결재로 한다. 생존을 위해 디지털 테크닉이 필요해졌다.

나이가 들면서 가장 어려운 것은 계속 배우는 일이다. 시스템이 너무 자주 바뀐다. 처음에 한번만 배우면 되는 것이 아니다. 수시로 재교육을 받아야 한다. 버전이 업그레이드되면서 이전의 방법은 통하지 않는다. 처음으로 수기로 하던 일이 전산화될 때 과거의 기술을 버리고 새로운 환경에 맞추느라 고생을 했는데 어렵게 배운 기술이 금방 구 버전이 되니 환장할 노릇이다.

이 과정에서 세대 간 장벽이 존재한다. 몇 년 전 중국에서 디지털 디바이드라고 지역 간, 세대 간 단절이 있다는 기사를 읽은 기억이 나는데 우리나라도 같은 상황이다.

무엇보다 심리적 장벽이 너무 크다. 전산망에는 우리 세대에는 불필요한 기능도 많다. 직원들 간 전산망을 통한 대화기능이다. 젊은 직원들은 이런 기능을 이용하여 자기들끼리 즐기지만 익숙하지 않는 우리세대는 왕따가 된다. 그렇잖아도 사회적 거리두기로 온라인 대화를 강조하는데 과거처럼 전화나 직접 대면을 고수하는 방식은 민폐가 되는 것 같다.

그리고 시간은 우리 편이 아니다. 갈수록 젊은 세대들의 업무방식이 표준으로 자리 잡게 된다. 우리세대 중 적응하지 못하는 사람은 퇴출될 것이다.

어쨌든 힘들게 첫 재택근무를 마쳤는데 다음부터는 좀 수월해질 것 같다. 익숙해지면 훨씬 효율적이 될 것이다. 결국 앞으로 재택근무가 늘어날 것이다. 코로나 사태가 극복되더라도 재택근무는 그대로 남을 것 같다.

재택근무뿐 아니라 이외의 다른 방식에 의한 근무형태가 많이 등장할 것 같다. 전과는 다른 세상이 될 것이다. 벌써부터 많이 보인다. 예를 들어 우리세대가 처음 직장생활 할 때 상상도 할 수 없었던 남자의 육아휴직신청이 많아졌다. 이런 변화는 코로나 사태 이전으로 돌아가지 않는 비가역적인 추세가 될 것이다.

코로나가 세상을 어떻게 바꾸게 될지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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