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렬 포항지진트라우마센터장·정신과 전문의

생활방역, 이제는 생활방역으로 갈 수밖에 없는 모양이다. 조금만 더, 조금만 더 하던 ‘사회적 거리 두기’ 기간이 점점 길어지더니, 결국 우리는 당분간 어느 정도 제한과 불편은 일상으로 감수하며 살아야 한다는 이야기다.

방역(防疫), 둑(防)을 세워 전염병(疫)이 퍼지는 것을 막는다는 뜻의 방역이라는 말이 이렇게 우리 일상으로 깊숙이 들어와 자리 잡게 될 줄은 몰랐다. 불과 몇 달 전까지도 상상치 못했던 일이다. 그러나 어찌하랴. 상황이 이렇게 된 이상, 이제는 한 동안 이 ‘방역’이란 낯선 아이와 손잡고 다닐 수 밖에 없다. 회사 갈 때나 시장갈 때는 말할 것도 없고 집안에서조차도 이 ‘방역이’를 데리고 살아야 한다. 어색하고 불편해도 별도리가 없다. 지금은 얘가 삐쳐서 쌩하고 가버리면 코로나라고 하는 진짜 고약한 놈이 대신 찾아오기 때문이다. 꼼짝없이 방역이랑 엮인 것이다.

필자의 경우도 그렇다. 어느 날 아침 일어나 보니 거실 소파에 웬 낯선 아이가 앉아 있었다. 하얀 옷으로 전신을 감싸고 고글과 마스크를 쓴 생경스런 모습의 조그만 아이가 오늘부터 나랑 동행하게 된 ‘방역이’라고 자기소개를 했다. 며칠 전부터 이런 일이 있을 거라는 언론 보도가 있었기에 크게 놀라지는 않았지만, 당황스러운 것은 어찌할 수 없었다. 부담과 걱정도 만만치 않았다. 다행히 자기 일은 자기가 알아서 하고 달리 챙겨줄 것도 없는 아이라 하니 조금은 안심이 되지만 늘 데리고 다녀야 한다는 것이 큰 문제였다. 얼마 전 길에서 마주친 새끼 고양이 한 마리가 앵앵거리며 다가왔을 때도 데리고 살 자신은 없어 인근 편의점에서 참치 캔 하나 사다주고 도망쳐 왔는데, 이건 뭐 반려동물도 아니고 ‘반려방역’이라니.

어쨌거나 이왕 이리 되었으니 일단 이 방역이랑 잘 지내보기로 하고, 유투브에 들어가 방역이 관련 영상부터 찾아보기로 했다. 방역이 친해지기, 방역이 놀아주기, 방역이 체험담 등등… 의외로 다양한 컨텐츠들이 많이 있었다. 그런데 그 중 어떤 것은 게시자의 신뢰성이 의심스러운 것들도 있어 주로 아이디 ‘질본’ 님이 올린 것만 추려서 보았다. 그렇게 쭉 살펴보니 방역이랑 같이 사는 것이 적어도 길고양이 입양보다는 훠~얼씬 쉽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매우 안심이 되었다.

무엇보다 맘에 드는 것은 방역이의 요구나 반응이 매우 상식적이고 일관성 있는 것들이라 그에 대응하기가 그렇게 난해하지 않다는 것이었다. 그에 비해 고양이는? 귀여울 때는 한 없이 귀엽지만 한 번 애태우기 시작하면 꼼짝없이 설설 기는 집사 노릇을 해야만 한다.

대신 방역이는 고양이처럼 매력적이지는 않다. 전혀 예쁘지도 않고, 꾹꾹이나 골골송도 할 줄 모른다. 한마디로 정(情)이 가기 어려운 캐릭터다. 대신 원하는 것도 단순한 것이다. 항상 옆에 있게 해달라는 것, 일을 할 때도, 누구를 만날 때도, 집에 돌아왔을 때도, 아침에 출근할 때도, 항상 자기를 옆에 두어달라는 것, 단지 그뿐이다. 늘 자기를 의식하며 살아 달라는 뭐 그런 말이다. 나도 정이 안 가지만 자기도 내 정(情)까지는 원하지 않는단다. 최소한의 성의만 보여달라는 것이다.
그래서 어쩌면 나중에 헤어지기도 훨씬 쉬울 것이다. 어차피 조만간 헤어질 인연이니 이건 어찌 보면 큰 장점이다. 필자의 경우 몇 년 전 잠시 돌봤던 길고양이 한 마리와 헤어진 후 지금까지도 핸드폰에 저장된 사진을 찾아보며 녀석을 그리워할 때가 있는데 적어도 이 방역이랑은 그렇게 정들 일은 아예 없을 것 같다. 매뉴얼대로 놀아주다가 매뉴얼대로 떠나보내면 되는 것이다. 쿨하고 깔끔하게.

앞일을 모르고 살아가야 하는 것이 우리 인생이다. 더구나 그렇게 닥치는 일들이 좋은 일들만 있는 것이 아니다. 때론 엄청난 풍파와 시련이 닥치기도 하고, 재난이 쓰나미처럼 몰려오기도 한다. 그러면 우리는 누군가의 희생을 지켜보아야 하고 살아남은 자들도 트라우마라는 것을 안고 살아가야 한다. 그래도 살아남은 자들에게 희망이 있는 것은 대부분 세상만사는 마음먹기에 달렸다는 것이다.

살아있으면 선택할 수 있고, 결단할 수 있고, 신념으로 밀고 나갈 수 있다. 그럴 수 있는 사람을 우리는 용기 있는 사람이라 부른다. 코로나 사태가 우리 예상보다 길어지고 그 직·간접 피해가 점점 커지는 상황에서도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역시 그것이다. 우리가 선택한 대로 마음먹을 수 있는 용기! 그래서 우리는 불편도 유희처럼 대하며 여전히 행복한 오늘을 뺏기지 않을 것이다. 방역아, 어디 있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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