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순심 대구대학교 교수

봄이 무르익는 오월, 독도교육실천연구회 회원들과 울릉도 탐사를 나섰습니다. 새벽 6시 후포로 출발하여 7시 30분 울릉도를 향하는 배에 승선. 3시간 만에 섬나라 울릉도에 도착하였지요. 계획이 있어도 자연이 허락해야만 들어올 수 있는 곳. 그래서 이곳을 한국의 갈라파고스라 불렀던가 봅니다.

나리분지는 울릉도에서 유일한 평지로 성인봉(984m) 북쪽의 칼데라 화구가 함몰하여 마을이 형성된 곳입니다. 하지만 백두산과 한라산 분화구와 달리 못이 형성되지 않아 우리나라에서는 유일하게 사람이 마을을 형성하고 사는 분화구라고 할 수 있지요. 우리는 여기서부터 성인봉에 이르는 숲길을 탐사합니다. 나리분지에서 성인봉에 이르는 숲길은 천연기념물 제189로 지정된 원시림 보호구역으로, 독특한 생태와 자연환경을 만날 수 있는 곳입니다.

나리분지에서 숲으로 들어서는 길에 만난 첫 번째 꽃은 섬남성입니다.
울릉도 특산식물인 섬남성은 불염포라는 커다랗고 변형된 잎이 꽃을 완전히 감싸며 피어납니다. 마치 꽃인냥 화려한 줄무늬 변형 잎은 상단에서 살짝 꺽이며 꽃대를 덮는데, 무심한 듯 아름다운 선을 만드는 자연입니다. 불염포 속의 숨겨진 긴 꽃대 하단에서 섬남성의 꽃은 피어납니다. 그래서 누구도 꽃을 볼 수가 없었던 것이지요. 그들은 화려한 줄무늬를 이용하여 꽃대 안으로 곤충을 유인합니다. 불염포 속으로 들어간 곤충은 수분의 매개체 역할을 하지요. 하지만 그 함정이 얼마나 깊은지 밖으로 다시 빠져나오지 못하고 죽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불염포 속 긴 꽃대 깊숙이 꽃을 숨기고 피어나는 섬남성. 씩씩하고 건강한 남성미로 피어도 조심성 많고 비밀스런 속내를 품은 식물이지요. 화산섬 울릉도에서만 피는 우리 고유종이면서 보호종으로 지정된 그들은 잎에 독특한 연초록의 줄무늬가 인상적인 꽃입니다.

일러주지 않고 경험해 보지 않아도 저절로 알게 되는 자연의 생존 전략들. 숨죽이면 재미난 그들의 이야기가 들릴 것만 같습니다. 이웃 중매쟁이를 함정에 빠뜨려 놓고도 아무렇지도 않은 듯 화사하게 빛나는 그들. 알아도 모르는 척, 힘들어도 아닌 척, 잎에 승리의 문신 세기고, 이기고 돌아온 속내 고운 섬남성 입니다.

우리는 그들을 담으며 숲속으로 더 깊이 들어갑니다.

2020년 5월 2일 울릉도 꽃나들이 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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