愛竹軒 칼럼 허경태 편집위원

포항시 북구에 소재한 두호동 주민센터에서 환여동 쪽으로 넘어가는 언덕아래 바닷가에는 3개의 자연부락이 나란히 붙어있다. 입구 마을 두무치, 중간 마을 이내리, 끝자락 마을을 썰머리라고 부른다. 지금 환호공원이 이 마을의 뒷산이다. 이곳에서 나는 한창 젊음이 끓어오르던 20대 후반을 주민들과 함께 웃고 웃으면서 시간을 보냈다.

이른 새벽이면 파도소리에 잠을 깨고, 늦은 밤이면 파도소리를 자장가 삼아 잠에 빠졌다. 당시에는 마을마다 제당(祭堂)이 있었고, 파도가 심한 날은 집 마당까지 바닷물이 차올랐다.

바람이 거세게 불면 파도도 함께 거세게 몰아쳤다. 그 몰아치던 파도를 보면서 깊은 생각에 잠기기도 했다. 30여 년이 지난 두호동 어촌 마을은 상전벽해가 되었고, 인심도 소박한 꿈도 너무 많이 변했다.

최근 지나온 삶을 정리하기 위해 무심코 일기장을 펼치다가 ‘84년 여름 태풍이 몰아치는 어느 날의 두호동 어부들의 소박한 생활 기록이 적혀있는 것을 찾아냈다. 그 당시의 일을 옮겨본다.

「눈바람과 파도의 높이가 거세면 거셀수록 가난한 어부의 마음은 더욱 더 걷잡을 수 없이 풍선과 같은 들뜸과 무한정의 망상에 사로잡힌다. 빨리 해일이 가라앉아 진정되기 보다는,해일과 눈바람이 끝난 후의 영일만 황금어장에서 잡아 올릴 만선의 풍어를 생각하며…….

해일이 뒤틀리어 용솟음치고 파도가 하늘 높이 치솟을 때는 물모래 바다의 뒤섞임과 때를 같이하여 갈매기는 영락없이 안식처를 잃고 바다 위가 아닌 모래 갯벌로 휴식처를 옮기게 된다. 우선 안락한 보금자리를 잃게 되지만 거센 파도와 해일이 잠드는 날, 더욱 더 풍성한 안식처로 되돌아 갈 수 있음을 생각하며, 잃었던 고향을 다시 찾는 기분으로.

썰머리의 어부들은 방문을 열어 광란의 해일을 바라본다. 파도는 사정없이 툇마루 아래까지 밀고 들어온다. 하지만 삼마댄마(꽁치잡이배)만 이상 없이 높은 지대로 옮겨 놓고 나면 상관하지 않는다. 풍성한 썰머리 어부의 마음은 황금어장으로 풍어잡이 나갈 설렘으로 오늘도 잠 못 이룬다.

이내리 어부들은 뱃머리에 걸터앉아 아리랑 담배 입에 물고 지그시 성냥을 그어댄다. 언제쯤이면 파도가 그치고 고기잡이 나갈 수 있을까를 생각하면서……. 파도가 유난히 치솟는 걸 보면, 한 이레 정도는 갈 것이라고 젊은 어부 김천부 씨는 힘주어 이야기하지만, 40년 어부의 경험에서 우러나오는 김태호 영감은 고개만 갸우뚱 거릴 뿐 묵묵히 바다만 응시한다.

고댕구리배(잡어배)만 고지대로 옮겨 놓으면 해일이야 언제 가라앉아도 상관없다는 표정으로……. 이내리 어부들은 오직 해일이 광란 속에서 깨어 가라앉는 날. 만선의 잡어를 싣고, 색색의 깃발을 달고 입항할 생각에 뛰는 심장을 누르며 잠을 설친다.

두무치의 선주들도 낚시배 손질 걱정에 마음은 바쁘고, 파도는 몰아 때리니 갈피를 잡기 힘든다. 하지만 만선의 행복을 떠올리며 벅찬 가슴을 조심스레 진정시킨다. 두무치의 오랜 어부 김풍수 씨는 오만(그물배)을 손질하며 '빨리 파도야 잠들어라' 하며 긴 한 숨을 내뱉는다.

내일 파도가 그치면 오후 너 대시 경에는 영락없이 삼저망을 싣고 출어하리라. 가자미도 잡고 고래치도 잡으면서 못다 푼 풍어의 만선을 만들리라. 그리고 웃으면서 소주잔을 기울이리라. 야심과 상상 속에서 오만만 파도에 휩쓸리지 않게 고지대로 끌어 놓으면 파도야 치든지 해일이야 일어나든지 관심 없다는 표정으로……. 두무치 선주들은 내일 벌어질 만선의 꿈으로 오늘밤도 잠을 설친다. 기백만 원 정도의 오만과 낚시배, 삼마댄마, 고댕구리 한 척으로 나날을 만선의 꿈을 키우며 살아가는 썰머리, 이내리, 두무치 어부들의 소박한 삶에 광란의 해일도 너그러이 만선의 인생 꿈을 이루어 주리라. 황금의 안식처를 잃었던, 보금자리 찾아 돌아올 갈매기 떼들을 아울러 생각하며…….」

여름철 비가 내리는 날이면 백사장에 나가 줄낚시를 던져놓고, 비에 흠뻑 젖는 목선을 처연히 바라보다 보면 어느새 낚시 끝이 휘청거리면서 팔뚝만한 황어가 잡히던 곳이 지금의 북부바닷가였다. 지금은 영일대해수욕장으로 이름이 바뀌었고, 영일대가 바다 가운데 들어서서 관광객들의 명소가 되었지만, 30여 년 전의 소박했던 어촌마을의 모습은 기억 속에 그대로 남아있다.

비가 내리는 오늘 지방선거 투표를 하고 모처럼 영일대해수욕장을 찾아 지난 시절의 추억을 반추해본다. 바다를 보며 지난 일을 새김질하는 순간 문득 ‘탄생은 죽음의 요람이고, 죽음은 생명의 잉태’라는 멕시코의 화가 프리다 칼로가 생각난다. 옛사람들은 말없이 스스로 깨닫는 것을 자득이라고 했던가.

북부바다는 청춘의 나에게 삶에 대한 확실한 답을 준 곳이다. 인생은 해답을 구하는 과정이 아니라 새로운 질문을 던지는 과정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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