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남쪽 성벽과 암문 터.

   
▲ 동남쪽 성벽 바깥 전경.

   
▲ 동문에서 남쪽으로 이어진 성벽.

   
▲ 남쪽 성벽위 전경.

   
▲ 동문에서 바라본 남쪽 성벽.

   
▲ 동문 관성루.

   
▲ 불망비와 선정비.

경북 성주는 4세기경 가야 6국 가운데 성산가야의 옛터다. 이웃 고령 대가야가 화랑 사다함에 의해 신라에 복속된 6세기 전후 신라에 병합됐다. 성주군 소재지에서 자동차로 20여분 거리 독용산성은 성산가야 건국 세력이 쌓은 산성이다. 성안에서 출토된 가야시대 토기파편이 이런 사실을 입증한다. 구조는 해발 800여m 독용산(禿用山) 능선을 따라 쌓은 포곡식 산성이다. 독용산은 ‘대머리 산’이란 뜻이다. 과거에는 정상부에 나무가 자라지 않았던 민둥산으로 추정된다. 성곽 둘레는 7.7km, 성벽 높이는 평균 2~3m에 이른다. 국내에선 비교적 규모가 큰 산성이다. 영남권에서 이보다 규모가 큰 산성도 드물다. 성벽은 주변에 흩어져 있는 화강암을 깨뜨려 쌓았다. 큰 돌을 깔고 위로 올라가며 작은 돌을 쌓고 빈틈은 파편으로 메웠다. 우리나라 전통적인 성벽 쌓기 방식이 엿보인다.

그러나 장구한 세월을 이기지 못해 성곽은 거의 붕괴돼 지금에 이른다. 다행히 1997년부터 시작된 복원작업으로 일부 구간이 복원돼 옛 모습을 되찾았다. 그중 아치형 동문은 누각 관성루가 완벽하게 복원돼 웅장한 위용을 자랑한다. 성곽을 따라가면 서, 남, 북에도 성문 자취가 역력하다. 일정 구간마다 대포를 설치하던 포루와 망루도 흔적이 잘 남아 있다. 동, 남쪽에는 암문 터 3개소가 있다. 계곡 쪽 성곽아래에는 수구문 터 1개소가 남아 있다. 객사 터, 군기고 터 , 창고 터, 안국사 터 등도 보인다. 무엇보다 식수를 공급하던 연못 4개소, 우물 2개소도 흔적을 찾아 볼 수 있다. 일제 강점기 성안 군기고 터에서는 말안장과 갑옷, 창과 화살 등 다양한 유물을 발굴했다고 한다. 독용산성은 가야시대 이후 비워져 있다가 임진왜란때 피난민들에 의해 발견됐다고 한다. 이 후 조선 숙종 1년(1675년) 순찰사 정중휘가 개축했다. 성산가야 이래 방치해오다가 전란을 맞고서야 필요성이 절실하게 대두됐던 것이다. 임진왜란 직후에는 산성에 경상도병마절도사 병영을 둘 정도였다고 한다. 방어시설로서 중요성이 어느 정도로 컸는지 충분히 짐작된다. 성안에는 해방 전후 묘목을 키우는 농가 40여 호가 있었지만 1960년대 모두 철거됐다. 이후 지금까지 빈 터로 남아 있다.

옛날에는 독용산성을 걸어서 오르려면 각오를 단단히 해야만 했다. 그러나 지금은 성주군에서 개설한 포장 임도 덕분에 성곽 바로 아래까지 자동차를 몰고 올라갈 수 있다. 일부 아직 포장이 덜 된 구간도 없지 않다. 2019년 5월 기준 동문 앞 300여m를 남겨 두고 있다. 산성 가는 길은 성주읍을 출발해 김천 방향 지방도(903호)를 따라 가천면 소재지까지 가야 한다. 이곳 창천삼거리에서 성주 댐으로 가지 말고 가천우체국 왼쪽으로 진행해야 한다. 그러면 1km 가량 앞에 ‘독용산성 7.5km’ 안내판이 눈에 띈다. 이 도로를 따라 달리다 보면 산성 입구를 알리는 입간판이 보인다. 구불구불하게 휘어져 산허리를 감싸고 뚫린 임도는 비록 포장되긴 했지만 초보운전자에게는 조금 위험하다. 이를 무릅쓰고 약 20분간 달리면 산성 동문 입구 주차장에 이른다. 여기서 내려 아직 포장 안 된 임도를 따라 걸으면 산성의 윤곽이 지척에 다가온다. 동문에 도착하기 전 오른쪽 산정과 뒤편에도 길게 성곽의 전경이 펼쳐진다. 산허리를 밟고 올라가는, 긴 성곽 전경은 볼수록 장엄하다. 주차장에서 임도 대신 산길을 택해도 성곽이 나온다. 새로 쌓은 성곽이다. 성벽을 타고 걷다 길이 갈라지는 곳에서 동문 또는 산정을 선택하면 각각 이어진다. 동문은 치성, 성곽과 함께 최근에 복원된 아치형 성문이다. 현판 ‘관성루(觀星樓)’는 별이 바라다 보이는 누각이란 뜻이다. 시원한 팔작지붕이 숲 사이 멀리서도 보인다. 성문은 옛 성 돌과 새로 깍은 돌이 뒤섞여 복원됐다. 동문 안쪽에는 조선 후기 세운 비석 4기가 단 위에 나란히 서 있다. 모두 지방관리의 치적을 기리려는 흔한 불망비, 선정비 등이다.

왼쪽으로 성벽안길을 따라 걸으면 아직 복원 안 된 옛 성곽이 눈에 띈다. 성벽 안쪽에서는 구간마다 독용산 정상으로 오르는 숲길이 나타난다. 모두가 정상으로 이어진 뒤 하산 시 다른 성문 터로 이어진다. 동문에서 정상을 지나 반대쪽으로 비포장 임도를 가면 복원된 암문을 만난다. 동문에서 오른쪽으로 곧장 가면 복원된 성벽이 능선을 따라 뻗쳐 있다. 동문에서 바깥 왼쪽 둘레 길로 가면 수구문지와 은광폭포, 시엇골, 공동묘지 등으로 이어진다. 동문에서 왼쪽 성곽안쪽으로 북문 터까지 걸으면 안국사 절 터와 암문 터, 남문 터, 서문 터, 북문 터 등을 방향에 맞게 만나볼 수 있다. 서문 터와 북문 터 안쪽은 분지 지형이다. 옛 관아가 있었던 자리인지 객사와 군기고 터 등이 보인다. 숲길 옆에는 벽진 이씨 시조 이총언(李悤言)을 기리는 벽진 장군 대첩비도 서 있다. 고려 태조 왕건(王建) 휘하에서 후백제 견훤의 장자 신검을 물리친 전승 기념비라고 한다. 신라 말 벽진 태수를 지낸 이총언은 61세에 고려 창업에 큰 공을 세워 삼중대광 개국원훈 벽진 장군에 올랐고, 벽진백(碧珍伯)에 봉해진 인물이다. 독용산성 답사코스는 성벽을 한 바퀴 돌고 되돌아와 서쪽 암문에서 가로 질러 동문으로 빠지는 코스가 수월하다. 동문을 나와 주차장에서 차를 타고 내려오다 보면 산 중턱에 성주 댐 전망대가 있다. 육각형 정자 전망대에 오르면 드넓은 성주 댐이 눈 아래 펼쳐지고 저 멀리 가야산과 대덕산이 눈앞에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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