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만 있는 조선시대 오랜 전통 이제는 탈피해야... 명절 제사 중후군 이혼 원인 제공도

▲ 남보수 경북 중부본부장
설과 추석은 우리나라 최대명절이다.

그러나 즐거워야 명절이 남자들과 달리 여성들은 시집 명절 제사에 엄청난 스트레스로 작용한다.

주부들은 제사 비용을 떠나 제사 음식상 마련과 장보기 등에 스트레스를 받는 것은 물론 나이 들어 지병이라도 있으면 더할 나위 없다.

구미의 경우 설 전날부터 매일 100명 이상 확진자가 발생하더니 설 이튼날 에는 153명에 달헤 코로나 발생 후 최대치를 기록했다.

이처럼 코로나 감염시대를 맞아 제사 참석차 가족 간 감염이라도 된다면 괜히 설쇠러 갔다가 감염만 돼 왔다며 조상을 원망할지 모른다.

이런 사유로 기성세대와 달리 신세대들은 출생 후 한 번도 뵌 적 없는 2~3대 조상 명절 제사를 언제까지 지내야 하냐며 불만도 터져 나온다.

무엇보다 친족보다 시집온 사람들의 마음은 더할 나위 없다. 이런 연유로 시대가 달라져 제례 의식이 많이 바뀌었다.

◇생전 벼슬에 따른 제사 원칙

경국대전에는△6품 이상의 벼슬은 증조 대(3대)까지△7품 이하는 조부모(2대)까지 지내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벼슬을 못 한 평민은 부모 제사만 지내라고 나와 있다.

그런데 주자가례(朱子家禮)가 도입되고 나서 벼슬이 없는 백성도 4대 봉사를 하도록 해 현재까지 답습하고 있다.

주자가례란 송의 주자가 만든 의례서 로, 가정에서 지켜야 할 예의범절과 관혼상제에 대해 왕과 평민들까지 지켜야 덕목에 대한 서술서다.

그러나 주자가례 도입 500여 년 전에는 윤회봉사라고 해 형제들도 차례로 돌아가며 제사를 지내는 일이 많았고, 장남과 차남이 나눠 지내는 분할 봉사와 아들이 없으면 딸과 사위가 지내는 외손 봉사도 존재했다.

이처럼 윤회봉사(輪廻奉祀)나 분할봉사(分割奉祀)는 장남에게만 집중되는 제사의 임무를 형제자매가 서로 나눈다는 점과 아들이 없을경우 외손도 제사를 지낼수 있어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그러나 조선 명종 때부턴가 이런 관행은 금지되고 동종(同宗)의 적장자에게만 그 자격이 주어져 오늘에 이르렀다.

그러나 시대가 바뀌다 보니 제례문화도 변천됐다.

기존 지내던 명절 제사는 생략하고 기제사도 자시(子時, 밤 12시경) 이후에 지내던 것을 현대는 초저녁에 지내는것이 대세가 됐다.

제사도 옛날 예법대로 4대(고조)까지 지낼 것을 고집하면 고리타분한 소리도 듣는다.

내외 두 분의 제사를 한날로 옮기고, 그것도 귀찮다며 모든 제사를 한날 한시에 몰아 지내는 경우는 물론 아예 제사 자체를 없애기도 한다.

제사 지내기 싫어 갑자기 교회에 다닌다는 말도 나와 제사 탈피 문화는 계속되는 추세다.

이처럼 제사는 누가 지내느냐를 두고 다툼이 벌어지기도 하고, 제사 참여와 제수 비용, 음식 장만 등으로 갈등을 겪기도 한다.

지금은 돈만 주면 제삿날에 완벽한 제례음식을 배달해 주는 업종도 생겨 여행지에 배달받아 제사를 지낸다는 말도 나온다.

찾아온 조상신이 당황할 수 있어도 그나마 지내는 게 다행 일수 있다.

산 자와 죽은 자의 교감과 존경심의 발로가 제사의 뜻이라면 사실 4대 봉사는 그 뜻에 맞지 않지 싶다.

얼굴도 모르고 뵌 적도 없는 조상을 기리는 것이 과연 옳은가 하는 논쟁이 있을 수 있다.

역사를 보면 관혼상례의 예법도 자주 바뀌었다.

제사의 덕목이 조상에 대한 발복이 아닌 생존의 감사의 마음의 표시라면 얼굴도 모르는 증,고조부 제사와 묘사는 없어지거나 더욱 간소화될 것이 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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