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경데스크-문화특집부장 김재광

우리는 살면서 갑을관계라는 말을 자주 접한다. 사전을 찾아보면 이렇게 설명되어 있다. “갑과 을은 원래 계약서상에서 계약 당사자를 순서대로 지칭하는 법률 용어다. 보통 권력적 우위인 쪽을 「갑」, 그렇지 않은 쪽을 「을」이라 부르는데 여기서 「갑을관계를 맺는다」는 표현이 생겼으며, 지위의 높고 낮음을 의미하게 됐다. 지금은 대기업과 협력업체, 업주와 종업원, 상사와 직원, 고객과 서비스업체까지 이 표현이 폭넓게 사용되고 있다.”

갑을관계는 우리 삶 곳곳에서 깊숙하게 자리 잡고 있다. 특히, 비즈니스에서는 이를 극명히 따진다. 갑은 권력적 우위를 이용해 을에게 자신이 원하는 바를 요구할 수 있는 반면 을은 갑이 원하는 바를 계약한 바대로 이행하지 않으면 그에 상응하는 불이익을 받게 된다. 따라서 을은 계약이 끝나기 전까지 갑의 눈치를 보면서 살 수 밖에 없는 신세가 된다. 문제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간혹 갑은 자신이 가진 권력적 우위에 지나치게 탐닉한 나머지 안하무인격이 되기도 한다.

역사적으로는 갑의 권력적 우위를 폭압적으로 사용해 포악무도(暴惡無道)의 대명사가 된 중국 하(夏)나라의 걸왕(桀王)과 은(殷)나라의 주왕(紂王)이 대표적이다. 그래서 걸주같은 놈이라는 말이 생겼다. 걸왕은 화려한 궁전을 짓고 주지(酒池)를 만들어 배를 띄워 유흥에 빠진 나머지 정사를 돌보지 않아 백성의 원성이 극에 달했다. 도덕군자로 알려졌던 은나라(상나라)의 탕왕(湯王)을 하대(夏臺)에서 체포하는 등 폭정을 자행했다. 이에 이윤의 도움을 받은 탕왕의 혁명에 의해 비참한 말로를 맞이한다. 주왕(紂王)은 아버지 제을(帝乙)로부터 왕위를 물려받아 상(商)나라 왕이 된다. 주왕은 술로 가득 채운 연못[酒池] 주변의 나무를 비단으로 휘감은 뒤 고기를 매달아 놓고[肉林] 달기와 함께 배를 타고 노닐면서 손이 가는 대로 고기를 따서 먹었다고 한다. 주지육림이라는 고사성어가 여기서 유래했다. 충언을 고하는 신하를 불 위로 걷게 하는 등 폭정을 행하다가 강태공의 도움을 받은 무왕에 의해 죽음을 맞이한다.

근래에 신문지상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모 대기업의 라면상무 사건과 우유업체 하도급 사건이 사회적 이슈가 된 적이 있다. 라면상무의 철면피 엽기행각은 차마 말로 다 표현하기 힘들 정도다. 갑의 입장에서 도를 넘어 을을 지속적으로 괴롭히다 못해 하인 부리듯 막 대한다. 대리점에 강매하다가 거부하니 온갖 욕설을 서슴지 않고 내뱉어 무리를 일으킨 우유업체 하도급 사건도 마찬가지다.

정규직과 계약직 차별도 엇비슷하다. 계약직은 나름대로 더 열심히 일하고도 정규직만큼 보상을 못 받는다. 게다가 한번 상사의 눈 밖에 나면 어떻게 해 볼 도리 없이 어느날 갑자기 해고 통보를 받기도 한다. 만일 계약직이 정규직보다 더 나은 실적에 더 뛰어나기라도 하면 자신의 자리에 위협을 느낀 정규직은 계약직을 왕따시키고 비열한 음해로 회사 밖으로 내몰기도 한다. 일전에 방영된 TV 드라마 ‘직장의 신’에서 다룬 계약직의 비애는 더도 덜도 없는 우리 시대의 자화상이며 슬픈 현실이다. 사실 우리 주변에는 이런 일이 비일비재하다. 단지 TV나 신문 같은 매체에 보도가 되지 않을 뿐이다.

이렇듯 갑을관계는 인간관계를 정말 갑갑하게 만들며 종국에는 자신도 망하게 한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반면 윈스턴 처칠과 알렉산더 플레밍의 인연은 정반대다. 영국의 한 부자집 소년이 시골 어귀에서 수영을 하다가 발에 쥐가 나서 익사할 위기에 처한 것을 근처를 지나던 시골 소년이 구해준다. 이에 부자집 소년의 아버지는 아들을 살려준 시골 소년의 소원인 의학공부를 돕는다. 훗날 이 시골 소년은 페니실린을 발명하며 노벨의학상과 작위까지 받으니 그가 바로 알렉산더 플레밍이다. 그리고 부자집 소년은 영국의 명수상이 된 윈스턴 처칠이다. 윈스턴 처칠은 2차 세계대전 중에 스탈린과 회담하러 소련에 갔다가 폐렴으로 죽을 위기에 처한다. 그런데 다행히도 알레산더 플레밍이 발명한 페니실린 덕분에 살아난다. 은혜가 은혜를 낳은 아름다운 만남이다.

물론 힘을 어떤 식으로 사용할지는 각자의 몫이다. 하지만 폭압적으로 사용하는 힘은 절대로 지속가능하지 않으며, 순리에 따라 힘을 사용할 때만 그 힘이 지속가능하다는 것을 꼭 명심해야 한다.

이제 6·4 지방선거가 모두 끝이 났다. 혹자는 낙선의 고배를 마신 패자가 된 반면, 혹자는 승자의 컵을 들어 올렸다. 패자는 더욱 분발해 시민의 마음을 얻을 수 있도록 노력해야 후일을 기대할 수 있다. 승자는 선거운동 기간에 보여준 열과 성으로 언제나 시민의 머슴이라는 정신을 끝까지 이어 나갈 때 자신도 시민도 함께 진정으로 성공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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