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장군봉과 급수대

 

   
▲ 장군봉 아래 무너진 성벽

 

   
▲ 대전사 보광전 뒤 기암 전경

 

   
▲ 동쪽 성문 터 추정지 부근 성벽

 

   
▲ 주왕굴

 

   
▲ 주왕산 기암

 

   
▲ 대전사에서 바라본 기암
     
 

 경북 청송군 주왕산면 상의리에 있는 주왕산은 1976년 지정된 국립공원이다. 해마다 늦가을 단풍이 아름답기로 유명하다. 계곡과 바위가 절경을 이뤄 볼거리가 많다. 높이는 해발 722m로 알려져 있다. 해발고도는 능선과 봉우리를 따라가면 약 600~900m사이다. 그리 높지 않지만 경사가 급하다. 산과 계곡의 기복도 심한 편이다. 계곡 양쪽에 장군봉, 기암, 망월대, 급수대, 학소대 등 기암절벽이 하늘높이 치솟아 있다. 그 사이로는 흐르는 용추폭포, 용연폭포 등은 절경을 이룬다.

주왕산은 형태가 병풍을 닮아 본래 석병산이라고 불리었다. 그런데 주왕산으로 이름이 바뀐 연유가 재미 있다. 지금도 전해지는 주왕 의 전설이다. 당나라 덕종 12년의 일이다. 진나라 왕손 주도가 군사 1만 명을 이끌고 반란을 일으킨다. 주도는 자신을 후주천왕이라 칭하고 수도 장안을 공격하다가 실패한다. 그는 남은 군사를 이끌고 요동과 강원도를 거쳐 험하고 깊은 신라의 석병산으로 숨어든다. 이에 당에서는 신라 조정에 토벌을 요청한다. 신라는 마일성 장군의 다섯 형제를 주왕산으로 보낸다. 주도의 군대는 신라군과 맞서 싸웠으나 크게 패한다. 그는 산속 깊은 동굴로 피신해 있다가 마일성 장군의 화살에 맞아 비참한 최후를 마친다.

이와 다른 전설도 있다. 신라 왕족 김주원에 대한 전설이다. 김주원은 신라 무열왕 7세손이다. 신라 37대 선덕여왕이 후사 없이 죽자 그는 신하들에 의해 임금으로 추대된다. 이 소식을 듣고 그는 궁궐로 향한다. 그런데 도중에 큰 홍수를 만나 입궐을 못한다. 그러자 그와 왕위를 다툰 김경신이 화백회의를 장악해 왕위에 오른다. 신라 제38대 원성왕이다. 김주원은 하늘의 뜻이라며 외가인 명주(오늘날 강릉)로 향한다. 도중에 기묘한 바위로 둘러싸인 산에서 독자적인 나라 ‘명주군국’을 세운다. 그는 사후 ‘주원왕’으로 불리게 된다. 그리고 석병산은 ‘주방산’으로 이름이 바뀌게 된다. 김주원의 무리는 조정의 토벌을 피해 주방산 높은 절벽위에 대궐을 지었다고 한다. 그러나 모두가 전설일 뿐이다.

그런데 주왕산에는 이러한 전설을 마치 역사적 사실처럼 뒷받침해주는 옛 성터가 남아 관심을 끈다. ‘자하성’ 또는 ‘주방산성’이라고도 불리는 ‘주왕산성’이다. 축성양식만 보면 초기 축성은 고려 시대로 추정된다. 그러나 김주원의 전설로 삼국시대 축조로 보기도 한다. 그런데 주왕산 입구 사찰 대전사 발굴결과 삼국시대 기와가 출토됐다. 대전사는 신라 문무왕 12년(672년) 창건된 절로 알려져 있다. 이에 따라 주왕산성 축성 연대가 삼국시대로 거슬러 올라갈 가능성도 없지 않다. 후대 기록된 ‘신증동국여지승람’에 따르면 주왕산성은 석성이며 둘레 1,450척이며 삼면이 매우 험하고 두 개의 계곡을 끼고 있다. 오늘날 주왕산 일대 계곡까지 확대해 추정해보면 둘레는 약 12㎞가 넘는다. 현재 초기 석축은 훼손이 너무 심하다. 옛 성벽의 전체 형태는 사실상 알아보기 너무 힘들다. 그러나 절벽을 성벽 개념으로 보면 규모는 예상보다 컸을 것으로 판단된다.

체성의 흔적은 장군봉 아래 8부 능선과 계곡 입구에 희미하게 남아 있다. 장군봉 체성은 주왕굴을 중심에 두고 감싸 안고 있다. 굴은 대전사에서 동쪽으로 계곡 따라 약 1km 떨어져 있다. 체성은 이 굴 바로 앞 주왕암에서 나한봉을 거쳐 700m 가량 이어진다. 형태는 장군봉을 휘감고 일부 계곡을 포함한다. 그러므로 테뫼식과 포곡식 두 갈래로 분류할 수 있다. 주왕산성은 산성치고는 경사가 비교적 완만하다. 장군봉에 올라서면 사방이 트여 외적 동태를 살피기 쉽다. 주왕산성은 일명 자하성이라고 부른다. 계곡에 걸쳐 놓은 자하교 다리와 관련성이 짚어진다. 또 다른 체성은 완만한 서, 북쪽 경사지에서 확인된다. 단순한 너덜지대로 보이지만 위치상 성문터로 추정된다. 외적을 계곡 입구에서 방어한 것이다.

주왕산에는 지금도 주왕의 얘기가 곳곳에 남아 있다. 주왕이 숨어 있었다는 주왕굴, 주왕을 찾아내 화살로 쏘아죽인 신라 마 장군이 깃발을 꽂았다는 바위 기암, 주왕의 군대가 무기를 숨겨두었다는 무장굴, 주왕의 시신을 화장했다는 범굴, 주왕의 부하 장군이 군사를 지휘했다는 장군암, 주왕의 아들과 딸이 달구경을 했다는 망월대 등이다. 한편 신라시대 수도 서라벌을 떠나 주왕산에 나라를 세웠다는 신라 출신 김주원의 전설이 깃든 곳도 있다. 그중 식수를 얻기 위해 긴 두레박으로 계곡물을 퍼 올렸다는 높이 솟은 바위 급수대가 대표적이다. 이 바위는 물을 길어 올린 봉우리라고 해서 급수봉, 격수암, 길고암 등으로도 불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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